나도밤나무 - 율곡의 탄생에 얽힌 전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
"혼인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큰 인물이 될 때까지
부부관계를 잠시 접고 나는 친정에 가서 그림 공부나 하며 서방님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기다릴 테니 서방님은 한양에 올라가서 공부나 하시도록 하세요"라는 아내의 청을
받아들여 한양으로 공부하러간 이공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아내와 떨어져 공부에 전념하던 선비는 꽃같이 예쁜 아내가
보고 싶어 아내와의 10년 약속을 어기고 처가 집을 찾아가는 길,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뻥뻥 뚫려 서울에서 한나절도 못되는 두어 시간 거리이지만
그때 그 시절 강릉을 오가는 선비들은 대화나 진부의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흔 아홉 구비 대관령을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매달고 걸어서 넘어야 했다.
선비는 강원도 대화(평창)의 한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한양에서부터 몇날 며칠을 걸어 양주 땅 두물머리, 양평, 횡성을 거쳐 대화까지 왔으니
노독이 쌓인 선비가 곤한 잠에 떨어진 야심한 밤, 주안상을 받쳐들고 장지문을 여는 여인이 있었다.
"게 누구냐?"
"주막집 아낙이옵니다."
달빛에 비치는 여인을 바라보니 틀림없는 주막집 여인이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주막을 찾아들었을 때 곱상한 인물에 여염집 여인 같은 단아한 자태가
이런 시골구석 주막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구나 하고 눈여겨 봤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인고?"
"선비님의 인품이 하도 고고하여 약주 한 잔 올리려고 하옵니다."
"허허허, 네 뜻이 그러하다면 술을 따르거라."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웃고 있지만 선비의 얼굴은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되고 있었다.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 잔 받으시오/
공자님을 어제 뵌 듯/ 맹자님을 오늘 뵌 듯/
고금이치 통달하신/ 도학군자 선비님께/ 정을 담아 바치오니/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잔을 잡으시오."
권주가를 부르는 여인의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송화주를 마시자
선비의 온몸으로 짜르르~ 술기운이 전해진다.
야심한 밤에 술과 여자라. 회가 동하지만 신분이 뚜렷하지 않은 여인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선비의 도리이거늘 경계할 수밖에.
"그래, 무슨 사연이라도 있느냐?"
"선비님과 하룻밤 가연 맺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가연 , 요샛말로 속되게 표현하면 같이 자자는 것이니 그 시절 아녀자가
그것도 야심한 밤에 처음 보는 남정네의 방에 들어와 그러한 말을 하니 듣는 사람,
선비가 놀라 자빠질 일이었으나 아무리 선비의 체통이 군자의 뜻을 좇는다 해도 갈등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여자를 품에 안아본 것이 언제였던가?
7년 전 한양으로 공부하러 떠나올 때 어른들과 아랫것들 시선 때문에 문 밖까지 배웅도 못하고
사랑채 문간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던 아내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아서라, 선비의 도리가 아니느니라."
"선비님 너무 하시옵니다. 흑~흑~흑~."
여인은 풀어헤쳤던 저고리 고름을 여미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도 난감할 수밖에….
"주안상을 물리고 지필묵을 들여라."
다 마시지 못한 주안상을 치우고 붓과 벼루를 들고 들어온 여인은 화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의아한 눈길로 선비가 바라보자 갑사 치마끈을 풀어 선비 앞에 펼쳐놓는다.
벼루에 먹을 가는 여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니만 벼루에 떨어진다.
선비는 붓을 들어 먹물을 찍자 치마폭 위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다.
이튿날 동창이 밝을 무렵 주막집을 나선 선비는 장평, 진부를 지나 아흔 아홉 구비
대관령을 넘어 해질 무렵에 처갓집에 도착하였다.
얼마만에 찾은 처갓집인가?
7년 전 떠나올 때 마당에 심은 배롱나무가 몰라보게 자랐지만 아내의 모습은 새색시 그대로
고운 모습이었다.
1삭(한달)을 처갓집에 머무르며 쌓였던 회포도 풀고 아내와의 운우의 정을 푼 선비는
과거시험 때문에 다시 처갓집을 떠나 한양 길을 나섰다.
대관령 굽이굽이 휘돌아 고갯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면서 주막집 그 여인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다.
다른 주막에서 묵을 수도 있지만 대화 그 주막에서 다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주안상을 마주 놓고 그 여인에게 선비가 물었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당돌하게도 그러한 청을 들인 게 무슨 연유이더냐?"
"비록 배운 것은 없어 주막을 열어 먹고사는 천한 계집이오나 사람을 많이 보아온 탓에
지나는 과객의 기색을 살필 줄 아옵니다."
"기색이라... 그래, 내 기색이 어떠하더냐?"
"그날 선비님의 안색에 서기가 서린 것을 보고 귀한 자식 하나 얻어 볼까 하는 마음에 아녀자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리하였습니다."
"오호,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오늘밤에 이루지 못한 운우의 정을 풀어보자꾸나."
"지금은 아니돼옵니다. 그때는 선비님의 안색에 그러한 서기가 넘쳐났으나 지금은 그 서기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오라 이미 부인의 몸에 귀한 아드님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미천한 계집이
몸만 더럽힐까 하옵니다."
여인의 말은 당차고 서릿발처럼 싸늘했다.
잠시 방심했던 선비도 정신이 바짝 들며 싸하게 퍼지던 술기운도 싹 깨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사내아이로서 인시에 태어날 것이며 일곱 살 되는 해에 호환을
입을까 두렵사옵니다."
다소곳이 치마폭으로 무릎을 감싼 여인의 입에서 예사롭지 않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게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무기(誣欺)인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천기누설(天氣漏泄)인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선비는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하고 호환(虎患)을 막을 방도를 물었다.
호환(虎患)이란 가장 무서운 맹수인 호랑이에게 물려가 잡아먹히는 것으로 애, 어른을
막론하고 호환을 당하는 것은 더 없이 두려운 일이며 선비 집안에서는 치욕으로 생각했다.
조상 모시는 것을 소홀히 하는 불효한 사람을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속설(俗說) 때문이다.
오죽하면 "호랑이가 물어갈 놈"이라는 욕설이 있겠는가.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으면 그 화(禍)를 면할 것이외다. 또한 아이가 일곱 살 되는 해
낯 모르는 스님이 찾아와 아이를 보자 하거든 절대 보여주지 말고 밤나무를 보여 주소서."
한양에 도착한 선비는 밤나무를 심으라는 그 여인의 말이 머리를 맴돌아 과거공부가 되지 않았다.
밤나무가 무엇인가? 밤나무는 죽어서 신주가 되어 가문의 영광을 이끌어주며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신성한 나무이기에 밤나무를 심는 것은
덕을 쌓는 것이다.
선비는 고향 파주로 내려가 그때 마침 친정(강릉)에서 사내아이를 낳아 3살까지 기른 후
파주 시댁에 와 있던 아내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고향집에 천 그루의 밤나무를 정성들여 심었다.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 대화 주막집 여인의 말대로 어느 날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노스님이 갈포 장삼에 굴갓을 쓰고 찾아 왔다.
"이 고을에 나라의 재목이 될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노라"
며 아이를 보자 하기에,
"우리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며 호통치고 천 그루가 심겨진 밤나무 숲을 가리키니 ,
노스님은 밤나무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닌가.
하나, 둘, 셋....., 이렇게 세어가던 밤나무 숫자가 999에서 멈췄다.
밤나무 한 그루가 말라 죽어 천 그루에서 딱 한 나무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천명을 거역하려느냐?"
진노한 노스님이 하얗게 흘러내린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통을 치자,
"나도 밤나무…."
소리 치며 나서는 나무가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노스님은 호랑이로 변해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호환을 면한 아이가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 이며
선비는 율곡의 아버지 감찰공 이원수이고 임신한 여인은 우리의 영원한 현모양처의 표상
신사임당이시다.
율곡이 자란 파주에는 '나도 밤나무'가 있었다는데 율곡을 살려냈다 하여
활인수라 하고 그 나무가 있던 고개를 율목치 또는 밤나무 재라 부르며
마을 이름도 율목리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
출처-불교신문
사진1:대관령에 있는 주막터 표지
사진2:대관령 고갯길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옛길
사진3:나도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