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유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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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KBS 정당연설방송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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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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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는 사람의 진실이 담겨있다. 우리가 타인의 눈물을 보면 일단 숙연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눈물의 의미에 대한 동의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텔레비전 연설 녹화 도중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버지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면서였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하며 자식이 눈물 흘리는 모습 자체가 이상할 리는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효심(孝心)을 간직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리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가족모임 같은 사적인 자리도 아니요, 전국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선거연설이라는 공적인 자리였다. 그러나 박 대표의 아버지 기억은 사적인 연민으로만 이어졌다.
박 대표는 60년대 지방순시를 다녀온 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앉아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만난 아이들 얼굴에 온통 버짐이 피어 있었고, 빡빡 깎은 머리마다 기계충이 옮아 있었다면서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굶주림에 찌든 아이들의 슬픈 눈동자를 아마도 돌아가실 때까지 외면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이 말을 끝내고서야 박 대표는 눈물을 거두었다.
''박정희 향수'' 자극해 한나라당 재건 발판 삼으려나그러나 그 시절, 나라 걱정에 가슴이 아파 식사를 못했던 것이 어찌 박 대통령 한 사람 뿐이었을까. 우리에게도 기억은 있다.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이 유신철폐를 외치며 할복자결했던 날, 1979년 YH여공 김경숙이 박정희 독재정권의 살인적인 노동탄압에 항의하다 숨져갔던 날, 우리들도 밥을 입에 대지못한 채 통음(痛飮)을 해야했다.
아버지가 한 끼 식사를 못한 기억은 평생 가슴에 담아둔 박 대표가, 그 시절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수많은 학생·지식인·노동자·농민들이 겪어야 했던 희생에 대해서는 정녕 아무런 기억조차 없는지 묻고 싶다.
박 대표에게는 ''굶주림에 찌든 아이들의 슬픈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하셨을'' 아버지였을지 모르지만, 박정희는 이미 어린 대학생이나 여공(女工)들의 절규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독재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박 대표가 아버지 얘기를 꺼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던 날에도 "나는 부모가 없어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처지"라고 말해, ''박정희 향수''를 자극했다.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한나라당을 다시 일으키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 청춘을 불살라야했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다. 그 시대의 상처를 아직도 안고서 말이다. 그런데도 텔레비전 연설에 나와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게되는 것은 정말 거북한 일이다.
3월 12일, 탄핵안이 의결되던 국회 본회의장에서 투표를 마친 박근혜 대표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분노하고 있을 때 그는 활짝 웃었고, 우리는 울 수 없는 대목에서 그는 눈물 흘리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지금 박 대표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를 위한 눈물은 국민들은 보지 않는 곳에서 흘렸으면 한다. 박정희 시대를 떠올릴 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사람들은 정작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눈물은 박 대표가 흘리는 연민의 눈물이 아니라, 암흑의 기억 속에서 흐르는 회한의 눈물일 것이다.
장기집권과 독재, 인권탄압과 생존권 유린, 정보정치와 학원·언론·야당·노조탄압…. 박정희 시대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묻는다. 누가 독재자 박정희를 복권시키려하는가.
/유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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