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난 그 어두컴컴한 지하 속에서 채 이틀도 버티지 못했던 것 같다. 내 딴에는 그곳에서 최대한 오래도록 몸을 숨겨 조금이나마 내가 저지른 끔찍한 죄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실로 어이없는 과오였다. 당시 나는 단순히 죄를 저지른 시점에서 보다 멀리 달아나기만 하면 조금이나마 죄의 농도를 희석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어리석을 정도로 애 다운 생각이었다.
그 홀(hole)은 안에서 문을 닫아두면 미세한 빛 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때 나에겐 손목시계도 없었고 심적으로도 상당히 불안한 상태여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언뜻 생각하기엔 이제 겨우 열 세 살짜리 어린이가 이틀 씩이나 그런 곳에 숨어 지냈다는 사실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열 세 살이었기에 그런 선택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열 살도 안되는 코흘리게 철부지였거나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춘기 이상의 나이만 되었더래도 그러한 무모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
우리 집안은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5대 독자셨고 늦둥이로 태어난 나의 남동생은 6대 독자가 되었다. 동생이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이미 48세였고 그로부터 1년 후 겨울, 아버지는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임종을 거두시기 직전 아버지는 당신의 어린 아들을 품에 꼭 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가문의 대를 이어줄 유일한 혈육을 죽기전에 탄생시켰다는 사실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시며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동생의 이름은 대진이었다. 큰 대(大) 자에 나아갈 진(進) 자를 쓴 것이다. 크게 나아가서 집안의 대들보가 되라는 뜻이다. 누나들이 모두 흔하디 흔한 '희'자 돌림(첫째 언니부터, 숙희, 경희, 진희, 다희 그리고 나, 소희)인것에 비한다면, 대진은 딸 다섯 끝에 귀하게 태어난 아들답게 그 이름부터 뜻 깊고 웅장했다.
그러한 차별은 비단 이름 뿐만이 아니었다. 동생은 모든 면에서 누나들이 감히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대우 속에서 자랐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정신적인 측면까지, 동생에게는 특별함과 풍요함이 넘쳤다. 어떤 선택에 있어서 최우선 권 역시 항상 동생의 차지였다.
하지만 그러한 차별 대우 속에서도 동생은 언제나 누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도 그럴것이 동생은 동물이나 벌레, 그리고 사소한 물건들에게까지 깊은 애정을 보이는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귀하게 자란 자식 답지않게 투정이나 이유없는 생떼를 부리는 일도 없었으며 언제나 윗사람들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지극히 유순한 아이였다. 그래서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들,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사랑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생은 나를 잘 따랐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하루 중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나이상의 격차로 보더라도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동생이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 내 나이는 열 세 살이었고 넷째 언니의 나이는 열 여섯이었으며 첫째 언니는 무려 스물 다섯 살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유일하게 동생의 수준이 되어서 놀아줄만한 상대는 어릴 적부터 나 밖에 없었다.
동생이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동생을 보는 일은 언제나 나의 소관이었다. 중,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다니느라 바쁜 언니들이나 직장생활을 해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나는 집안의 기둥인 동생의 안위를 살펴야 했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계시긴 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관계로 늘 자리에 누워 계셔야 했다.
언제나 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올때까지 동생은 할머니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얌전히 놀았다. 하지만 나의 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곧장 마루로 달려나와 반겼다. 그때부터 나는 식구들이 돌아오는 저녁 때까지 동생의 단짝 친구 겸, 보모가 되어 주어야 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주변에서 보냈다. 담벼락을 돌며 근처에 핀 꽃들을 관찰하거나 오다 가다 마주치는 짐승들을 어루만지며. 가끔씩은 들이나 산으로 나가 여러가지 곤충들을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동생은 대체로 처음 보는 뭔가에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풀을 뜯는 젖소와 처음 대면했을 때 그 거대한 몸집과 얼룩덜룩한 바둑 무늬가 풍기는 낯선 두려움을 다분히 느끼면서도 끝내 가까이 다가가 등을 한번 어루만져보는 대담함을 보였다.
어쨌던 착하고 말 잘듣는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을 시기라도 하듯 비극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미처 손 써 볼 틈도 없이…….
<2>
동생이 일곱 살 되던 해 여름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나른한 오후가 계속되었다. 어디선가 매미소리가 한가로이 울려퍼지는 아주 평온한 오후였다.
할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동생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혼자 놀고 있었다. 나는 마루에 누운 채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나른함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 날 있을 시험에 대비하느라 국어책을 펼쳐놓고는 있었지만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귀찮은 듯이 그림만 찾아 뒤적거리다가 문득 동생을 바라보니 마당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처음엔 동생이 개미 떼 같은 작은 벌레들을 관찰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동생의 시선이 머문 곳을 그대로 따라가보니 그곳엔 동생으로선 꽤나 낯설게 여길 만한 어떤 물건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상추와 호박을 심어놓은 화단가 뒤쪽, 그늘진 구석에 던져진 듯 놓여 있었다.
"누나 이게 뭐야?"
동생은 나와 시선을 맞추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 그거~? 제초기야."
"제초기……? 그게 뭐 하는 건데?"
"풀 깎는 기계."
"풀 깎는 기계……?"
동생은 시선을 다시 제초기가 있는 곳으로 돌렸다. 한 발자국 다가가서 그 기괴한 모양새를 더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 눈빛에서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마루에서 내려와 동생 곁으로 다가갔다. 별안간 제초기가 어째서 마당에 떡하니 나와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솔직히 나로서도 제초기를 가까이서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긴 처음이었다. 워낙 위험성을 띄고 있어서, 엄마와 큰언니 외엔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도록 단단히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언제나 우리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깊이 보관되어 졌었다. 벌초를 하거나 집 주변 잡초를 제거할 때만 잠시 내어질 뿐 그 외엔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왜 여기다 뒀지? 벌초하는 날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당 전체를 찬찬히 살펴본 후, 그제서야 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울타리 아래로 촘촘히 들어차 있던 이름 모를 잡초들이 웬일인지 깨끗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아마도 오전 중에 엄마가 마당과 집 주변을 중심으로 제초 작업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출근 시간에 쫓겨 급히 집을 나서느라 미처 제초기를 제자리에 갖다 두지 못했던 것이리라.
"누나,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동생이 나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내려다보니 동생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자세로 제초기에 더욱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물론 궁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장미 가시에 찔리는 위험성을 앞서 계산하기보다는 그저 그것을 꺾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더 강렬한 열 세 살짜리 꼬마애에 불과했으니. 제초기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흉기가 될 수도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해내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응? 누나!"
동생이 다시 재촉해왔다. 어느새 동생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궁금해서 못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동생의 기대에 부응하듯 나는 살며시 쪼그리고 앉아 제초기를 어루만져 보았다.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손 끝에 감지 되었다. 낯선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함이 동시에 물결쳤다.
나는 마치 전문가라도 되는 듯한 손놀림으로 기계의 이 곳 저 곳을 살피고 매만졌다. 그런 내 모습을 따라서 동생도 길게 뻗은 기계의 몸통을 살짝 살짝 만져가며 분위기를 맞췄다.
예전에 몇 번 인가 엄마와 큰언니가 제초기를 다루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멀찌감치서 지켜봐야 했지만 그 광경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져서인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되어졌다.
섬광처럼 터지는 어떤 기억의 실마리를 좇아 나는 무의식 중에 기계의 어느 부위를 힘껏 잡아 당겼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여름의 태양 열이 우리들의 머리 위로 작렬하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었다. 그 아찔한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크르렁거리는 엔진 소리가 먼저 귀청을 울렸다. 언뜻 지옥에서 잠자고 있던 악마가 소리내어 껄껄껄 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악마는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나 있었다는 것처럼 야비하게 웃고 있었다.
위잉, 하는 날카로운 회전음과, 뭔가를 파고드는 듯한 끔찍한 마찰음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잔해들이 흙먼지와 함께 내 얼굴을 덮쳤다. 비명소리 같은 것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 꿈을 꾼 듯한 몽롱한 전율이 전신을 짜릿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없이 나른하고 평온했던 오후의 풍경은…….
<3>
내가 정신을 온전히 차렸을 때는 어쩐일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초기의 날이 돌아가는 위잉, 하는 회전음도 털털거리는 엔진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만이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얼굴에 묻은 무언가를 손바닥으로 훔쳤다. 끈적거리는 붉은 피였다. 시선을 조금 돌려보니 제초기 위로 동생이 부자연스럽게 엎어져 있었다. 얼음같은 냉기가 엄습해왔다. 나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동생은 이미 산 자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여기 저기 뿌려진 죽음의 흔적들을 절감할 수 있었다. 목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는 담벼락과 화단위로 아무렇게나 뿌려져 있었다. 아마도 날은 동생의 목을 파고든 것이리라. 그 충격으로 제초기의 시동이 꺼져버린 모양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피 묻은 상추잎과 호박들이 나의 무게에 짓눌려졌다. 뭔가에 단단히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괴리감에 두려움의 감정마저 상실해 버렸다.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는 강박증만이 구름처럼 밀려왔다.
다시한번 찬찬히 동생을 살폈다. 정말로 죽음의 모습이란 저런 것일까? 손을 뻗어 동생의 몸을 흔들어보았다. 언뜻 보기엔 엎드린 채 그저 깊은 잠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대진아 그만 일어나야지 이런데서 자면 못 써, 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영혼까지 팔 수 있으리라…….
팔뚝을 힘껏 꼬집어 보았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픔이 느껴졌다. 현실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생은 차갑게 죽어있다! 제초기에 목이 베어 숨진 것이다. 머릿속에 거대한 혼돈이 해일처럼 소용돌이쳤다.
내가 죽인 것인가?
과연 내가 제초기로 동생은 죽인 것인가?
극심한 이질감이 나의 뇌를 마비시키며 정상적인 사고의 고리들을 끊어놓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이 죽었으니 의사를 불러야 하나? 아니면, 사람을 죽였으니 경찰을 불러야 하나?
아무런 판단도 서지 않았다. 잠시 바보가 되어버렸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불어왔다. 바람은 죽은 동생의 기운을 낱낱이 훑으며 조롱하듯 내게 보내왔다. 죽음의 냄새가 알싸하게 코끝을 찔렀다. 금방이라도 시큼한 죽음의 손길이 덥썩, 내 손목을 움켜 잡을 것만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문득 내가 시체와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도록 저주스러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뒤로 물러났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마당을 뛰쳐나와 골목길로 내달렸다.
햇빛이 강렬한 여름날의 오후, 거리는 온통 텅 비어 있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 모두 증발이라도 해 버린 듯.
정신없이 논둑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진한 황토내음이 물씬 풍겼다. 그제서야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임을 알았다. 멍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니 천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혼란스런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해보니 별안간 모든 것이 꿈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동생은 여전히 마루와 마당을 천천히 거닐며 평화로이 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웃으며 나를 반길 것이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듯, 그저 행복하게 동생의 손을 잡아주면 된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악몽같은 현실 속에 던져진 나의 상황들을 부정하고만 있었다. 기회만 되면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현실속에 안주하려 했다. 설명 가능한 인과 관계나 논리적인 해석을 그저 묵살한 채 끊임없이 환상의 도피만을 꿈꾸었다.
별안간 뭔가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돌아보니 저 멀리서부터 굉장히 커다란 누런 개 한마리가 나를 향해 손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개 뒤로 보이는 거대한 공장의 굴뚝에선 시커먼 매연들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일부를 장악한 상태였다. 검은 연기들은 사악한 마귀처럼 무리를 지어 부유하며 발빠르게 세력 확장을 하려 했다. 그 모습이 달려오는 개의 잔상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웅장한 지옥도를 연상시켰다.
그런쪽으로 생각을 해서인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 커다란 개에게서 난폭한 공격성이 느껴졌다. 마치 나를 벌하기 위하여 준비되어진 지옥견, 켈베로스 같았다. 그 큰 입으로 내 몸을 단번에 삼켜버릴 기세였다.
나는 방향을 틀어 다시 집쪽으로 달아났다. 대문 앞까지 한달음에 도착했다. 그 때까지 사람이라곤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대문 앞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의 공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동생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망상이 빚어낸 혹시나 했던 기대들은 한 순간에 분해되어 사라졌다. 또다시 차가운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안방에서 할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 거리는 작은 소음들도 감지되었다. 잠에서 깨어나신 것일까? 이 맘때 쯤이면 꼭 한 번 일어나시곤 했다. 이웃 집 할머니가 항상 놀러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언니들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도 가까워 진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과연 그들이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들을 할까? 6대 독자의 죽음, 끊어져버린 가문의 맥…….
그리고 나의 운명은……!
그 혼란의 정점에서 나는 그 때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요,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공포로의 출발점이었다.
<4>
우리 집은 대략 150년 전에 지어진 고가(古家)이다. 처음 지었을 당시엔 상당히 으리으리하고 화려했을 터이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부서지고 증축되고 또 낡고 닳아져 지금은 그저 그런 평범한 기와집의 모양새만 하고 있다. 하지만 본디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가의 집안이라 ㄷ자 모양의 집터만은 지금 보아도 크고 웅장했다.
우리 문중은 예로부터 형부판서의 자리까지 오른 바가 있는 명망있는 가문으로 항시 국가의 정사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때문에 원치않게 대세에 떠밀려 당파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서 집안 곳곳엔 붕당대립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마련된 비밀 통로들이 많았다.
비밀 통로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저절로 막히기도 했고, 일부는 파손되기도 했다. 또 일부는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 채 영영 잊혀지거나 묻혀지기도 했다.
자객들의 급습으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피신하기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지하 통로…….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해낸 최후의 돌파구였다.
열 한 살 때 나는 정말 우연히도 잊혀진 통로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 후 그 곳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가 되었으며 아무도 모르게 가끔씩 드나들곤 하였다. 어째서 그런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숨겼는지 뚜렷한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마도 혼자만의 비밀 같은 것을 하나 쯤은은 간직 하고 싶었던 심리가 작용했으리라.
비밀 장소는 마루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루 아래는 수많은 자갈들로 빽빽했고, 그 안 쪽 깊숙한 어느 지점을 파헤치면 돌로 된 넓적한 출입문이 나타난다. 그 돌을 들추어내면 작은 구멍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지하로 통하는 입구인 셈이다.
구멍이 워낙 좁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어른이 들어오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좁지는 않았을 터이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지반이 변형되고 뒤틀려서 좁아 진 듯했다.
그 지하 홀은 가로 세로 높이가 약 1미터에 지나치 않는 굉장히 작은 공간이었다. 말이 좋아 비밀 통로지 김장독이나 묻으면 딱 좋을만큼 협소한 구덩이였다. 하지만 내가 워낙 왜소한 체격을 지닌 탓에 그렇게 좁은 장소에서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일단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기만 하면 비좁다라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내가 그 지하에 몸을 완전히 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렴풋이 마루를 내려오는 할머니의 느낌이 감지되었다. 심장이 조막만하게 오그라들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가 장손을 보기 위해 마당으로 나온다. 하지만 장손은 없다. 장손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시체 한 구가 마당 한 귀퉁이에서 죽음의 냄새를 피울 뿐이다.
나는 눈과 귀를 막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처절한 상황들이 저절로 그려졌다. 이루 감당할 수 없을 슬픔과 고통! 비명과 오열! 피를 토하는 울부짖음! 아비규환을 연상케 하는 영상들이 자꾸만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리고 있었다. 제법 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잔 것인진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이 저녁인지 밤인지 조차도 짐작할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목과 어깨와 허리를 주무르며 경직된 근육을 풀어보았다.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머리 위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머리 위, 그곳에선 지금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동생의 시신은 거두어 졌을까?
어쩐지 통곡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사라진 나의 존재에 대해선 모두들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까? 사태를 어떤 식으로 해석했을까? 동생의 죽음이 나로 인해 빚어진 과실임을 알고들 있을까? 내가 이런 곳에 숨어서 잘못을 회피하려 함을 조금이라도 눈치 챘을까? 어쩌면 이미 경찰에 신고되어져 동생을 죽인 패륜아로 낙인 찍혀 긴급수배 중인지도 모른다!
길게 한숨을 내쉬려 했으나 오히려 가슴이 뭔가에 짖눌리 듯 막혀왔다. 폐쇄 공간이라 그런지 공기가 엄청 탁했던 탓이다. 그 때문에 숨을 깊게 들이쉴때마다 목구멍이 뜨끔거리고 기침이 터져 나왔다.
혹시라도 소리가 새어 날까봐 속으로 삭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을 감으니 온갖 일그러진 영상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왔다.
나른한 오후, 동생은 마당에서 강아지와 뛰어 놀고 있었다. 나는 마루에 누워서 느긋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동생의 행복한 웃음과 몸의 움직임에서 생동감 흘러 넘쳤다.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는 강아지의 털 하나 하나까지 뚜렷하게 포착되어 졌다. 살아 꿈틀대는 생명의 힘이 마당 한가득 강렬하게 뿜어졌다.
그렇다. 모든 것은 다 꿈이었던 것이다. 동생의 죽음도, 그 컴컴한 지하로 몸을 숨긴 것도 한낱 꿈에 불과했던 것이다. 끔찍한 악몽이었으리라.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저 평화로운 영상, 저것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나는 잠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아니면 어떤 충격으로 지독한 환각에 빠졌던 것이리라. 현실의 눈을 뜨자. 지금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다 평상시대로 되돌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마루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고, 동생은 여유로이 마당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여름날의 백일몽에 불과하다. 이제 그만 괴로운 악몽에서 벗어나자……!
<5>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깜깜했다. 과연 눈을 뜬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어디인가? 꿈인가 현실인가?
몸을 움직여 좁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손을 더듬어 벽을 만지니 차가운 흙의 느낌이 전달되는 것도 같았다. 그것으로 아직 나는 지하 구덩이 한 가운데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원인도 명백해졌다. 그 참극은 역시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은 분명하리라. 그 이유로 아까부터 뭔가 텅빈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필시 공복감 때문이었다. 지독한 허전함으로 미루어 보건데 벌써 몇 끼는 거른 듯했다.
하루? 이틀? 사흘? 얼마나 지난 것일까……?
별안간 정상적인 사람이 몇 끼를 굶으면 죽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두려워졌다. 아무도 모르는 어두 컴컴한 땅 속에 홀로 내동댕이 쳐졌다는 사실이 무섭고 서글펐다. 비록 나의 잘못으로 빚어진 엄청난 비극이지만 그런 사실따윈 모두 묵살해버리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이 비좁은 곳에서 뛰쳐나가 엄마 품에 와락 안기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워낙 또래 애들에 비해 이성적 사고의 골이 깊었던지라 감정이 복받치는 데로 단순하게 행동해 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대략 하루 정도만 더 숨어있기로 했다. 이제까지 버틴 시간이 약 삼일 정도는 되었으리라고 멋대로 판단해버린 후 지금부터 하루 정도의 시간만 더 기다렸다가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 진 듯했다. 배고픔도 잊은 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잠만 잤으니 곧바로 다시 잠이 올리가 만무했다.
하는 수 없이 옛날 방식을 써 보기로 했다. 양을 백 마리 정도 세어 보기로 했다. 먼저 푸른 초원위에 아름다운 집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목장과 양떼들.
그러나 정작 내가 양의 수효를 헤아려 보기도 전에 전혀 엉뚱한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갓을 쓴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골목마다 들어 선 집들은 모두 기와 아니면 초가였다. 여기 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자객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칼을 휘둘렀다. 피가 사방으로 뿌려지고 관리인 듯한 사람들은 자객들을 피해 급히 달아나고 있었다.
아직 내가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미 꿈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조선 시대 당파 싸움의 한 장면이 묘사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는 있었다.
나의 선조로 보이는 긴 수염의 사내가 급히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주위를 살피다가 곧 마루 밑으로 기어들었다. 자갈들을 파헤치고 지하 통로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좁은 구덩이 속으로 몸을 숨겼다. 조심스레 입구를 닫자 빛은 어둠속에 잠겨버렸다. 밑도 끝도 없는 암흑만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암흑 세계에 홀로 던져진 나의 선조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이어서 긴 어둠의 터널이 서서히 걷히고 뭔가 묘한 이미지들이 새록 새록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가 빨간 가방을 메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을로 접어들자 누군가의 수근대는 소리가 중저음의 합창처럼 들려왔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이 상당히 거슬렸다. 논둑 저 너머론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개미떼같이 우글거리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것이 동생의 장례 행렬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동네 개들이 모두 모여 나를 향해 짖고 있었다. 개들의 입가엔 허연 거품이 일고 있었으며 두 눈은 벌겋게 뒤집혀져 있었다. 미친 개들임에 틀림 없었다.
개들을 피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간신히 달아났다. 그러나 웬일인지 모두들 나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골목 골목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나에게 뒤통수와 등을 보였다. 그것은 예상 외로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그 때 저 멀리 산발을 한 어떤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천천히 사방을 살피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깨림칙한 기운이 물씬 느껴짐과 동시에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온 몸이 감전된 듯 굳어버렸다.
귀신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그 여자는 다름아닌 나의 엄마였다. 틀림없이 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6대 독자를 끔찍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을!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그 눈빛엔 원망과 노여움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나의 존재를 분명하게 확인했는지, 이내 엄마는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엄청 빠른 속도였다. 쭉 내민 두 손이 금방이라도 나의 목덜미를 파고들 것만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왔으나 사력을 다해서 뛰었다. 짐이라도 지고 뛰는 것마냥 몸이 무거웠다.
가까스로 집에 도달한 나는 대문을 잠그고 서둘러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황급히 지하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둠 속에서 몸을 움츠린 채 떨고 있었다. 지금 쯤 엄마는 마당 어딘가에서 내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을 뒤지고 있을 테다. 스윽, 입구 문이 열리기라도 한다면 내 육신은 그자리서 얼어 붙을 것이다.
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문득 귀를 기울여 보니 사각, 사각 하는 괴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 소린 분명 자갈들을 파헤칠 때 나는 소리였다.
자갈들……!
바로 나의 머리 위에서 자갈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드디어 모든 것이 다 들통나 버린 것이다. 나는 이대로 발각될 것인가?
<6>
꿈에서 깨어 났을때 나는 얼마 간 정말로 내가 꿈에서 깨어 난 것인지를 쉽사리 인식할 수 없었다. 어둠과 하나로 동화되어 버린 듯한 내 자신에서 참으로 현실의 조각을 인지해 내기란 힘들었다.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으나 딱히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여지껏 계속 쪼그리고만 있었던 탓에 두 다리의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 듯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4일? 5일? 6일?
얼마가 되었건 도저히 더 이상은 버틸 자신이 없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어둠과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악몽속을 허우적거리는 것도 이젠 지쳤다. 어떤 죄값이라도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이제 그만 그곳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렇게 지하에서의 은폐 생활에 염증과 한계를 느낀 내가 마침내 지상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돌로 된 출입문을 열기 위해 손을 막 뻗었을 때였다.
느닷없이 오싹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단지 느낌이었을 뿐일까?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주 미세해서 육감까지 동원해야만 간신히 감지할 수 있을.
자박, 자박…….
분명히 발자국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자박, 자박…….
소리는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팔뚝 위로 소름이 돋았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공포라는 감정이 나의 의식을 꿰뚫고 들어왔다. 아주 어렸을 때나 느꼈던 귀신에 대한 공포…….
차박, 차박……!
소리가 좀 더 크게 감지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소리가 맨발로 마루 바닥을 밟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발바닥과 나무가 서로 부딪혀 내는 마찰음.
차박, 차박…….
소리는 정확히 나의 머리 위에서 멈춘 듯 하더니 다시 어딘가를 향해 멀어져 갔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허둥대는, 갈 곳 잃은 방랑자가 발걸음 같았다.
나는 머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을 조심스레 예측해 보았다.
누굴까?
누가 마루 위를 정처없이 배회하고 있을까?
엄마? 할머니? 언니들?
발자국 간의 보폭과 지면에 닿을때의 무게감으로 유추하건데 분명 어린 아이의 발걸음이었다.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어린 아이의 발걸음.
참혹한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미루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났다. 극도의 공포감에 신체 기관이 정지해 버린 것만 같았다. 암담한 긴장감이 속에서 부터 끓어올라 세포 하나 하나를 허공속에 분해 시켜버렸다.
그 애가 찾아온 것이다……!
위잉, 하는 환청이 귀를 자극했다. 눈 앞에서 피 묻은 날이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나른한 오후, 작열하는 햇살 아래에 동생이 죽어 있다. 다음 순간, 피 투성이의 동생이 눈을 뜬다. 그 부릅 뜬 눈이 거대하게 확대되어 나를 덮쳤다.
공포에 대한 저항력이 점점 무실해져 갔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최대한 안간힘을 섰다. 이대로 정신을 잃게 되면 질척거리는 어둠속에 영영 묻혀 버릴 것만 같았기에.
언제부턴가 마루를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걸음을 멈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 버린 것일까?
숨소리마저 죽이고 지상의 작은 움직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모호한 불안감이 드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견디기 힘든 전율이 전신을 휘감았다.
피로 물든 동생의 환영이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터졌다.
"누나아……."
또 다시 들려왔다.
나를 부르는 나직한 음성.
마루 위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찾고 있을 그 애…….
"누나…… 어디 있어……?"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쏟아 오르는 듯했다. 마지막에 '어디 있어?'라고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바로 등뒤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와닿는 느낌이 각별했다.
최면에 빠져버린 듯 스스로의 의식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나는 힘없이 꼬꾸라졌다. 짙은 암흑 속으로 의식의 고리들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졌다. 쓰러진 내 몸 위론 불균형하게 흐트러져 있던 어둠의 세력들이 다시금 새록 새록 몽우리졌다.
<7>
더 이상 나에게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 해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수도 없이 어긋나버려 과연 내가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길이 없었다.
확실한 현실이 아닌 모든 것들은 꿈이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죽은 동생이 어떻게 나를 찾아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유령인가?
만약 유령이라고 가정한다면, 도대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보아도 결국 한 가지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을 해친 것에 대한 응징!
그렇다, 동생은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심장 박동이 멈춰 버린 듯했다. 얼음 폭풍 같은 한기가 내 전신을 관통했다.
제초기 칼날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버린 동생. 그 애가 저승에서 되돌아온 것이다. 나를 만나기 위해.
지상에서 나를 찾고 있을 동생의 유령!
무시무시한 환영들이 계속해서 번쩍였다.
그 애는 마당 곳 곳을 누비며 나를 찾고 있다.
"누나…… 어디 있어……?"
그리고 얼마 못 가 마루 밑도 뒤질 것이다.
"누나…… 어디 있어? 나야, 대진이……."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소리가 들려온다. 자갈을 파헤치는 그 소리.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들려온다.
사각… 사각…
"거기서 뭐해, 누나? 어서 나와……."
그 애가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드디어 나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지하 통로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 암회색의 옅은 빛이 새어든다. 마침내 문은 완전히 열려지고 푸른 달빛이 지하 속으로 스며든다.
달빛의 기운과 함께 드러난 창백한 얼굴 하나!
동생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누나, 혼자 가려니 무서워. 같이 가!"
동생의 손이 길게 늘어난다. 그리고 나의 머리카락을 화악, 움켜쥔다.
"이제 그만 나와……!"
이미 내가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공포는 그 위험수위를 훨씬 넘겨 버렸다.
아주 오래 전 나의 선조는 당파 싸움의 위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지하 통로에 몸을 피신했다. 지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끝없이 어둠 속에 자신을 묻어버리고만 있었다. 한차례 거센 세파가 휩쓸고 지나가고, 어느 정도 안정이 내리면 누군가가 지하 통로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일이 잘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며…….
그러나 파벌 간의 감정 다툼이 더욱 격해지고 피를 부르는 혼란이 지속될 시엔 문제가 심각해진다.
살기위해 들어갔던 지하 통로는 그대로 자신의 무덤이 되어 버린다. 지독한 어둠과 허기짐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결국 시체는 썩고 뼈는 저절로 흙과 동화되어 버린다.
어둠은 완전히 선조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 죽음의 흔적은 지하의 어둠속에 고스란히 남아서 떠돌고 있으리라.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좁고 어두웠다. 나는 아직도 그 지하 속에 숨어 있었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은 마루 모습이 선명히 들어왔다.
누군가가 통로를 열여 놓은 것이다.
과연 누가?
"누나, 거기서 뭐해……?"
동생의 목소리가 메아리 치며 울렸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보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의 동작 하나 하나가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몸이 부양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상당히 불쾌한 공포가 꾸역 꾸역 밀려왔다.
누군가가 있었다.
이 좁은 지하 속에 나 외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
불안한 마음에 앉은 자세로 사방을 살폈다.
설마 동생의 유령이 이 곳까지 내려 온 것인가?
그러나 동생은 아니였다. 만약 동생이었다면 그 애의 존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을테다.
동생이 아니라면, 오래 전 이 곳에서 죽어간 어느 선조의 유령인가?
이제 껏 나는 선조의 시체 위에서 그의 혼령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인가?
바로 그 때, 희미하게 스며 든 달빛에 어둠이 점점 희석되어 갈 무렵, 비로소 나는 그것이 나의 시신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좁고 어두운 지하 속에서 나는 나의 시체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충격과 혼돈이 급작스럽게 반응하며 내 안에서 폭발했다. 시공간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 여파로 내 몸이 거짓말처럼 붕 떠오름을 느꼈다. 지하 통로로 부터 점점 멀어지며, 높이 치솟아 올랐다.
이제는 밖이었다. 더 이상 컴컴한 지하 세계가 아닌 확 트인 지상의 공간이었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보았다. 발 아래로 기와 지붕이 보였다. 나는 지붕 위까지 올라와 버린 것이다.
그렇게 허공에 둥 둥 뜬 상태로 마당을 내려다 보았다. 마당에는 장례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누구의 장례식인가?
동생……?
나는 흐느적거리며 지상으로의 낙하를 시도했다. 지붕을 그대로 통과해서 천정에서 내려와 안방으로 곧장 직행했다.
안방에는 상복을 입은 언니들이 울고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의 초췌한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영정 사진 속의 동생의 모습도 보였다.
동생의 사진 옆에는 나의 사진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에필로그>
내가 그윽한 향 냄새를 뒤로 하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에 이르렀을 때 문 밖에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동생의 손을 잡아 주었다.
동생은 여지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극이 일어난 후 나는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도 모르는 지하 속으로 몸을 숨겼고 그 속에서 채 이틀도 못 버티고 어이없게도 산소부족으로 죽은 것이다.
내가 그렇게 지하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사이 지상에서는 나를 찾기 위해 온 마을이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동생의 장례는 미루어지고 실종되어 버린 나를 찾기 위해 거대한 수색 작업이 펼쳐졌다. 경찰과 인근 군부대까지 동원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 버렸다.
내가 죽은 지 하루가 지났을 무렵부터 밤마다 동생의 혼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생은 내가 숨진 장소를 귀신같이 찾아낸 후 엄마의 꿈 속으로 나타나 지하 통로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결국 내가 죽은 지 이틀 째 되는 날 밤, 엄마에 의해서 나의 시체는 발견되어 졌다.
그리고 며칠 후 동생과 나의 합동 장례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홀로 지하에서 있었던 기억들을 되짚어 보았다. 어디까지가 살아있는 나였으며 어디서부터가 죽은 나였는지, 그 경계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다만 수없이 꾸었던 악몽과 환상들은 모두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스스로의 질책과 회유였음을 알 수 있었다.
두려움에 못이겨 지하 속으로 숨어 들었지만 사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찾아 주기만을 끊임없이 갈망했던 것이다.
<<지하로 간 소녀의 고백>>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죽은 동생이 혼령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by - 제이슨 친구^^
루리웹에서 보고 재밌어서 퍼왔어요 ㅎㅎ
물론 동생을 좋아하지만 컵라면보단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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