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Cutie
▽오늘의 Q.T.
에스라 9:1~6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10:1~4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솔로몬 이후 유대나라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쪽 유다는 BC 538년에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적은 수의 사람들을 끝까지 남겨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을 일컬어서 ‘경건한 자’, ‘남은 자’. 유대 나라의 ‘뿌리’라고 합니다. 70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을 통하여 해방을 선언하시고,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신축하고 평화로운 삶을 시작한지 불과 40~50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돌아온 자들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세속화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가장 심각한 죄는 통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통혼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통혼이 일어났는데 그것도 제사장과 레위인, 방백들이 이런 일들을 공공연히 행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세속화 되어버린 시기입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지 불과 50년도 안된 사람들로 그들이 당하던 수모와 고통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이 그들은 자유가 주어지고, 풍요로워지자 옛날 조상들이 범하던 죄의 길로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죄의식이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감이 무디어졌습니다. 이처럼 속은 썩어가면서도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속화된 이스라엘의 모든 형편은 오늘 한국 사회와 유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36년 간의 일제치하의 비극과 34년 전의 6.25전쟁을 통한 비극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남은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자유와 생활의 안정과 번영이 조금씩 우리 손에 쥐어지자 이기주의, 쾌락주의, 배금사상의 말세징조가 구석구석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서워 해야 할 것은 정신적인 타락과 도덕적 부패입니다. 이 무서운 전병을 잡지 못하면 사회는 스스로 무너져 버립니다.
둘째, 이 저항 인자가 에스라 당시의 통곡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스라가 그와 같은 범죄의 소식을 듣자마자 옷을 찢으며 머리털과 수염을 잡아 뜯었습니다. 저녁 때까지 일어날 줄 모르고 통곡했는데 나중에는 에스라와 같이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통곡하는 놀라운 울음바다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전염병을 죽이는 항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의 이런 상황을 오늘 교회에 적용하여 생각해 봅시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자는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가지고 통곡할 수 있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성경 학자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는 성경 학자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기능과 증인의 기능을 가지고 무엇인가 해야 될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라로 부 터 몇 가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죄를 짓는 현실을 보고 기가막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스9:3~4). 범죄하는 자들을 볼 때 부끄러운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스9:6). 우리 모두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해야 합니다(스10:1). 멸시하는 태도와 복음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제사장이요 복음의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가정, 직장, 사회로 나가 거국적인 회개 운동을 일으키는 힘있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님의 주일설교(1984.6.03)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마음에 애통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죄를 짓는 현실을 보고 아파하며, 범죄하는 자를 볼 때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처럼, 성경학자처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