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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13&newsid=20101007174410079&p=kukminilbo 여유자금을 맡기러 은행에 들른 40대 주부 A씨. 창구의 상담원이 상냥하게 맞는다. "어머님, 이게 신상품이세요. 이자율 높으시고 굉장히 안정적이세요. 언제든 증액 가능하십니다." 너무 친절해 거절할 수가 없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대형마트로 향했다. 제빵코너 판매원이 소매를 잡는다. "이쪽 테이블 빵은 모두 할인되십니다. 지금 막 나오신 것들이어서 신선하십니다." 빵을 집어 드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택배회사 직원. "○○아파트, ○호, ○호이신가요? 1시간 후 물품 도착하십니다." 이런, 마음이 바빠졌다.
백화점으로 뛰었다. 구두매장 직원이 반갑게 맞는다. "주문하신 상품 나오셨습니다. (물건을 내밀며) 여기 있으세요. 사이즈는 꼭 맞으시네요. 결제는 할부가 가능하십니다."
'높으신 이자율의 정기적금을 계약한 뒤, 막 나오셔서 신선하신 빵을 사들고, 할부 가능하신데다 사이즈도 꼭 맞으시는 구두를 찾아든' A씨.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해보니, 택배원의 장담대로 주문하신 물품이 막 도착하셨다.
경어법이 사라지는 과잉존대의 시대?
지난 3월 롯데백화점에 고객불만 한 건이 접수됐다. 내용은 이랬다. "판매원이 '이 지갑은 사이즈가 크시다'고 하더라. 지갑이 크시다니 지갑이 윗사람인가? 고객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사물에 존칭을 쓰는 건 되레 불쾌감을 일으킨다."
백화점은 즉시 손님 응대, 계산, 주차 등 10가지 상황별로 매장에서 흔히 쓰는 '귀에 거슬리는' 존대법을 조사했다.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이 색깔은 하나 남으셨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으세요' '포인트 적립이 가능하십니다' '환불이 안 되십니다' '그 매장은 2층에 있으십니다' '철수하신 브랜드세요' '저희 매장은 세일 안 들어가세요' '수선비는 ○○원 나오셨습니다' '만차이십니다'….
수집된 사례들은 엇비슷했다. 우선 무조건 '시'가 붙었다. '시'가 높이는 대상, 즉 사이즈 색깔 매장 등은 다 물건이거나 개념이다. 국어학자들은 "한국어에서 물건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건 높일 수 없는 걸 무조건 높인, 문법적으로 죄다 틀린 문장들이다. '사이즈가 없으십니다'는 '사이즈가 없습니다'로 고쳐야 맞다. '이 색깔이 하나 남으셨습니다'는 '하나 남았습니다'로, '환불이 안 되십니다'는 '환불이 안 됩니다'로 바꿔야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이다.
귀에 낯설고, 심지어 웃기기까지 한 과잉존대가 만연한 이유를 이준석 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은 이렇게 진단했다.
"사회적 변화에 가장 민감한 게 경어법이다. 과거에는 높일 대상이 분명했는데 그게 불분명한 사회가 되고 있다. 수평적 평등사회가 되고, 존대법 형식파괴가 이뤄지면서 모두를 다 높이는 게 낫겠다, 뒤탈 없이 이것저것 다 높이자, 이렇게 됐다. 그러다가 물건까지 높이게 된 거다." 높임법 위상이 약해지고 규범이 흔들리면서 역설적으로 일단 높이고 보는 과잉존대가 만연한다는 얘기다.
물론 어렵지 않다면 헷갈릴 일도 없다. 난해한 한국어 경어법이 근본 원인이다. 김형배 학예연구사는 "우리말 높임법은 단순하지 않아 높임체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높이긴 해야겠는데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조건 '시'를 붙인다. '시'는 여러 높임법 중 하나일 뿐인데 '시' 하나로 손쉽고 편하게 해결하려다가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잘못 쓰고 있는 건 바로잡아야 한다. 결론은 계도와 교육. 국어연구원은 이달 말 백화점 할인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체 판매원 교육담당자들을 모아놓고 올바른 존대법을 교육할 계획이다.
세상에 틀린 말이 어딨어!
'그 상품은 환불이 안 되십니다.' 한국인이 받은 보통교육에 비춰보면, 이건 확실히 이상한 문장이다. 환불은 안 되시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제품 하자 때문에 화가 잔뜩 난 고객을 상대하는 백화점 판매원이라고 해보자. 회사 정책상 환불은 불가능한데 손님은 자꾸 물러달란다. 그때 당신의 선택은 '환불이 안 됩니다' 대신 '안 되십니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환불이 안 됩니다'보다는 '안 되십니다'에, '만차입니다'보다는 '만차이십니다'에 화를 누그러뜨릴 확률이 높다. 문법적으로 맞는가 여부와는 별개로, '시'가 실은 공손의 정도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경어법이 말하고 듣는 이의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해준다면, '시'의 오남용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물론 과잉존대를 어색하다거나, 불쾌하게 느끼는 이도 있다. 하지만 소수다. 기왕이면 다수를 기분 좋게 할 과잉경어가, 부족한 경어보다 안전하다. 다들 틀렸다는데 '품절입니다' 대신 '품절되셨습니다'를 선택하는 쇼호스트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다.
한국어 질서를 지키자는 입장과 경어법의 사회적 기능을 포용하자는 시각. 양자의 화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회언어학을 연구하는 이정복 대구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시'의 남용을 문법오류가 아니라 용법의 확장이라고 이해했다.
"('시'를 많이 쓰라고) 누가 강요한 것도, 가르친 것도 아니다. 서비스산업 중심 사회에서는 고객을 잘 접대하면 이득이 생기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경어법을 더 활발하게 쓴다. 그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시'가 많이 사용되는 거다. 중요한 건 화자의 높이려는 의지다. 과용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많이 쓰이면서 '시'의 용법은 청자를 높이는 기능으로까지 차츰 확장되고 있다. 이제 '값이 만원이세요'라고 할 때 높이는 건 값이 아니라 청자이다."
용법이 확장되는 사례는 '시'만이 아니다. '드리다'는 객체를 높이는 보조동사로 폭넓게 활용된다. '축하합니다' 대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감사드립니다'가 훨씬 공손한 말로 통용된다.
이 교수는 경어법이 단순화된다는 견해에도 반론을 편다. 이 교수는 "격식이 파괴된다지만 그렇지 않다.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경어법 사용질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환불이 안 되십니다'를 옳은 문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환불이 안 됩니다'를 알리는 것도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10년 뒤 '시'의 운명은 교육보다 더 큰 힘에 달려 있다. '시'의 영토. 한국사회를 읽는 흥미로운 도구로 지켜봐도 좋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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