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달려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나는 선빵을 치자마자 불 같이 달려 들었고 김민석은 그런 나를 가볍게 제압 하는 소방관이었다.
그런 말이 있다. 진짜 무서운 놈들은 한 번도 싸움을 해 보지 않은 이들이라고,
얼마나 강한지 자기도 모르니까. 근데, 난 몰라도 너무 몰랐다. 싸움을...
뒤지게 맞다가 갑자기 참가한 동식이 덕분에 싸움은 이대 일.
물론 둘다 다시 뒤지게 맞다가 달려온 선생님 덕분에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이대 일로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코피가 나고 동식이는 눈이 보라색이 됨).
양호실로 가서 코를 지혈 한 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고
일종의 진술서를 쓰고 있던 중 학교로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고개 숙여 말썽피워서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려는데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덜컥 겁이났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모든것을 숨기고 피했다.
다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난 무서웠다.
아버지 생각이 자꾸 피어날 무렵, 곧 바로 너그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고개 들어, 괜찮아. 윤호야.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어머니께서 이번엔 웃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안도하고 죄송하고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났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안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운 나머지 이번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웃음.. 그건 따듯하고 힘이 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이대일로 싸우고도 그 모양이냐며 나를 나무래셨다.
여러가지 말을 나눈 뒤 어머니와 나는 김민석의 어머니에게 사과를 드렸다(물론 김민석을 사과 한 것은 아니다).
서로 사과를 나눈 뒤 자기 아들에 대하여 얘기를 하시는데 나는 처음 듣는
다른 민석이의 모습들... 꼭 과학 선생님의 에어컨 바람 타령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지루해 할때
어머니 께서도 내가 지루 하단걸 느끼셨는지 내 어깨에 손을 올린 뒤 의미없이 고개를 계속 끄덕이셨다.
많은 것들을 정리 하고 난 뒤에 담임 선생님께 양호실에서 쉬라는 이야기를 듣고 양호실에 찾아갔다.
양호실은 늘 기분 좋게 선선해서 나 같은 패자에겐 더 할 나위 없는 쉼터였다.
양호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눈 인사를 받은 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여~ 파이터! 주먹 좀 쓰던데?
- 언제부터 있었어, 괜찮아?
- 나도 방금, 내가 아까부터 괜찮다고 했잖아! 난 늘 괜찮지. 어머니랑은 얘기 잘 나눴어?
- 응.
- 나도 뒤지게 혼났다. 집가면 잔소리 쩔겠다.
- 아니 난 안혼났어.
- 진짜? 어떻게? 야부리 비법 좀...
터무니없는 동식이의 요청에 피식 웃음이 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양호 선생님께서 주의를 주기 전까지
크게 한바탕 웃고 난 뒤 다시 작게 이야기를 나눴다.
- 야 이거봐라. 내가 과장님 만화 보여줄게.
- 너 휴대폰 아까 안냈어?
- 아까, 엄마한테 전화하고 몰래 넣었지.
- 대단하다.
- 이따 병원 가는데 그 전 까지 같이 보고 있자.
- 그래. 처음 보는데 여긴 뭐야?
- X대도 좋은데 여기도 좋아, 웃긴거 많아.
- 뭔데?
- "오늘의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