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54·사진) 전 대법관이 애초 자신의 약속대로 변호사 개업을 포기했다. 김 전 대법관은 내년 1학기부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매 학기 한 강좌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고 3일 밝혔다. 김 전 대법관은 < 한겨레 > 와의 통화에서 "강의가 처음이라 부담스러워 우선 한 학기에 한 강좌만 자유로운 주제로 강의를 해보고 싶었다"며 "서강대 쪽에서 제 이런 뜻을 잘 이해해줘서 강의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1학기엔 중요한 판례 10여 개를 선정해 이를 법의 일반원칙과 관련해 설명하는 강의를 해볼 생각으로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포기가 법조계의 전관예우 풍토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퇴임 뒤 짧은 기간에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게 변호사계의 '정설'이기 때문에 김 전 대법관의 약속 이행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찬종 변호사는 지난달 자신의 트위터에서 "큰 박수 보낸다. 대법관 지낸 변호사는 3년 안에 100억을 버는 법조재벌이 되는데, 이를 마다한 김 대법관의 결단, 전관예우 풍토개혁에 계기가 되기를 기원"이라고 썼다. 변호사인 최재천 전 의원도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 사회 법조문화의 가장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전관예우 금지에 대한 또 하나의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가시는 것 같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최 전 의원은 "부끄럽지만 우리나라는 대법원장을 마치고 나가서도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대형 로펌에 고문으로 취업하는 나라"라며 김 전 대법관의 결단에 갈채를 보냈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시절부터 진보적인 판결과 의견 개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상대적으로 보수 색채가 짙은 대법원에서 진보적인 의견을 자주 냈고, 여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소수자의 대법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새만금간척사업 판결에서 국책사업이더라도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며 사업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고, 삼성에버랜드 회사채 헐값 발행 사건에서도 이건희 회장 등 삼성 경영진의 유죄를 주장했다. 

　그는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등의 소수의견을 밝혔고 제사 주재권'에 대한 사건에서도 "제사 주재의 우선권은 장남에게 있다"는 다수 의견에 맞서 "장남 우선권 인정은 남녀평등 원리에 위배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그런 판결로 인해 그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로부터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email protected], e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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