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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30168
    작성자 : 달러멘디
    추천 : 10
    조회수 : 787
    IP : 125.133.***.180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3/09/11 17:04:27
    http://todayhumor.com/?military_30168 모바일
    맥피스.txt
     
     
    맥심...? 원한다면 주지.
     
    찾아봐라! 부대의 모든 맥심을 그곳에 두고 왔다!
     
      - 김일병 저『병장들은 왜 저러는걸까』中 이XX병장 회고록 발췌 -
     
     
     
     
    때는 2009년 가을이라 불리던 계절.
     
    군부대에서는 여름과 겨울을 구분하기 위해 일주일간 지속되는 환경을 말한다.
     
    이 더운지 추운지 분간이 잘 되지 않던 나날 중, 무슨 연유에선지 대청소 명령이 떨어졌다. 일이등병은 말 할 것도 없고, 상병장마저 분주하던 시절.
     
    무슨 이유에선지 인가받지 않은 기타 서적들 처리를 내가 맡게 되었다.
     
    탄피가 몇 개 발견되는 자잘한 사건이 있었지만, 모두의 관심은 맥심들의 행보였다.
     
    다행히 완벽히 19금 서적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부대 전체에서 약 20개 가량의 맥심들이 발견되었고
     
    병사들의 눈물섞인 탄원이 있었지만, 맥심은 결국 폐기처분을 당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대대 전체 휴가제한이 걸렸을 때 보다 더한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였다.
     
     
    누군가에게는 떠나간 그녀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누군가에게는 상상속의 여자친구와 함께 손장난을 치게 해주는
     
    내 선임의 선임들 부터 내려온 땀과 눈물과 단백질이 아우러진 그 추억들은
     
    호국이만큼, 아니 그 보다 더 군 생활 여운이 남으며 오랫동안 사귀던 친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대대 투고이며, 행정병중 왕고였던 나 역시 잘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병사 전체의 고민을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분명 2~3개월만 지나면 좀 수그러드리라, 군대에서 하는게 다 그렇지 뭐 라는 생각에 치밀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폐지 처리장 작은 박스 하나에 맥심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구석 깊은 곳에 안보이게 묻어놓았다.
     
     
    그 날 저녁, 야간작업을 핑계로 당직사관에게 허가를 받은 후, 1층으로 내려왔다.
     
    사관은 상황실에 있는 상황. 조용히 폐지처리장으로 향했다. 왕복하던 5분이 그 10배로 느껴 질 만큼 긴장되었다.
     
    다행히 폐지 수거할 때 땅까지 파지는 않았었나보다. 생각하며 부대원 눈물의 무게만큼 나가는 그 박스들을 처부로 옮겨놓았다.
     
    '나무를 숨길 땐 숲 속에 숨겨라' 라는 말이 있다.
     
    내 처부 바로 옆은 도서실. 중간 공사로 막아놓은건지, 문 또한 달려 있었기에 복도를 거치지 않고 쉽게 드나 들 수 있었다.
     
    처부에서 가져온 가위로 한자 자격증 및, 워드 자격증 책자를 몇페이지씩 오려내었다.
     
    그 안에 한권...또 한권을 붙여넣으며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싶었지만, 우울해진 병사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다시 작업에 집중하길 반복했다.
     
    다행히 학습지들 및 참고서들은 두꺼웠으며 또한 잡지와 사이즈가 같았다.
     
    -어차피 같은 책들이 많았고, 또한 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각 책자 표지에 발행년도, 개월을 표시해 두며 작업을 끝마쳤다.
     
    잘려진 남은 페이지들은 세절기로 향해서 증거인멸.
     
    완벽하게 작전수행을 끝마치고, 사관에게 보고 한 후 생활관으로 올라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후임들의 말이 그날따라 왠지 더 뿌듯하게 들렸다.
     
     
    며칠 후,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 힘들어하고 있던 막내가 있었다.
     
    조촐한 행사로 술을 조금 마셨던 탓일까, 그 녀석 얼굴은 외로움에 찌들어 있었다.
     
    그 녀석에게 조용히 다가가, 도서실 열쇠를 쥐어주며 말했다.
     
    "맨 왼쪽 책장 맨 아랫칸. '나도 이제 한자 마스터! 2급'을 찾아보렴."
     
    몇분 후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무아의 경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을 생각하는 표정으로 생활관에 들어온 녀석.
     
    난 그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어땟어?"
     
    "이XX병장님...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 미소로 화답했으며 중대원들은 이게 무슨 일이다냐 했을 것이다.
     
    얼마 안가 그 소문들은 삽시간에 퍼졌고
     
    생전 보지도 않던 자격증, 자기계발서적들이 불티나게 대여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대장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군 생활 수많은 나의 별명 중에 두 가지가 추가되었다.
     
     
    맥심왕, 구세주
     
     
     
     
    대여받은 책을 들고 밤에 화장실로 향해
     
    불침번들은 그에 작게 미소로 답하며, 군번줄 딸랑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다 뼈 삭는다."등으로 장래까지 걱정해주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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