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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마, 오빠. 줄곧..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소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져 근 1주일, 정확히는 일주일 하고 하루 사이에 가장 진지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미안해, 오늘은 친구들이랑 놀고 싶..”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지마, 오빠.” 소라는 단단히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얘가 왜 이러는 걸까. 혹시 내가 현진이랑 있는 게 신경쓰이는 거야? 아니면 자기가 버려진 것 같은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있다. 소중한 가족이자 어려운 일을 함께 이겨내는 동료로써. 소라는, 그럴 리가 없다.
“무슨 고집이야. 미안해. 가끔은 나도 놀고 싶어.” 하지만 나도 단호했다.
“오빠도 고집 많이 부리잖아.” 이거랑 그거랑은 전혀 상관없거든요?
“소라야, 오늘은 일단..” 나는 황급히 자리를 뜨고 있었다.
“아 가지 말라고!” 소라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소라는 발악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전원은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어, 그럼 하늘아. 우리 그냥... 놀지 말자.” 친구 하나가 내 눈치를 본다.
“오늘 즐거웠어.”
“소라가 무슨 사정이 있나보네. 미..미안해.”
그렇게 그들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래서, 지금은 소라와 나, 둘이다. 더 놀지 못한 것보다도, 소라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더 신경쓰였다. 질투인가? 혹시 소라랑 나는 다른 걸까?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다. 어쨋든 방금만 해도 소라는 명랑했잖아? 너무나도 순식간에 변했다. 소설로 치면 복선이 충분치 않았다. 노을이 마치 용광로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회색빛 구름이 그 노을을 덮어, 하늘은 탁한 주황빛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소라를 본다고 해서 우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소라에게 물었다.
“너, 왜 이러는 거야!”
“오빠, 가지마.”
“말도 안돼. 이유라도 말해줘.”
정말로, 그것이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라가 합당한 이유를 대기만 한다면 나는 어쩌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게 시스콤이라고 생각하면 비난해도 좋다. 그것이 진짜 ‘나’이니까. 그리고 소라도 내가 그러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막무가내로 가지 말라고 하는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가지 말라면 가지 말라고!”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알았어. 그럼 집에 가자.” 나는 지하철 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아무 곳에도 가지마. 나와 같이 있어줘.” 소라는 내 팔을 붙잡으며, 다시 한번 눈물을 터뜨렸다. 설마 얀데레 루트? 이럴 리가 없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뭔데!” 나도 드디어 고함을 지르며, 내 팔을 붙들고 있던 소라의 팔을 내쳤다.
“미안해, 오빠.” 소라는 그 이상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를 향해 쐈다. 하치쿠치 마요이 패러디가 아니었어?
바늘이 몸에 꽂혔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소라가 왜 이러는 것인지, 소라의 능력의 원인은 무엇인 것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발생했는지, 이런 생각이 마치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빠르게 넘어가는 그 필름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더 깊이 생각하기 싫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몸에서 슬슬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어나지지 않았다. 눈앞이 서서히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소라가 나를 붙잡고, 누가 보든지 말든지 하늘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흐려지고, 나는 깊은 어둠의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나는 어느 공원 벤치에 누워있었다. 저기 한화 이글스 구장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먼 곳은 아닐 것이다. 도통 무슨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운 내 마음, 그리고 어제 저녁과 대조적으로, 공원 잔디밭 비둘기는 평화롭게 먹이를 쪼고 있었다. 햇살은 오늘도 여전히 모든 것들을 밝게 빛내고 있었다. 공원 소나무 어딘가에 둥지를 튼 참새의 짹짹거리는 소리도, 우리 집 근처 공원과 같이 여전히 내 귀를 때리고 있었다. 외로웠다. 다만 어딘가에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나왔다.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나는 소라를 찾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소라는 보이지 않았다. 소라를 찾지 못하면 나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 소라는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단순히 현진이를 질투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애니에서 나오는 얀데레같은, 그런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라면 지금 소라는 나와 같이 있어야 한다. 내가 깨어나는 것을 보며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깨어났어?’ 하고 물어야했다. 더군다나 어제 소라는 울고 있었다. 그건 아마 진심이었으랴. 소라가 그런 행동을 취한 것에는, 필시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소라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켰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휴대폰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눌러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방전된 모양이다. 나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정교하게 깎아진 알루미늄 덩어리가 그 모습을 잃어버렸는지, ‘똑딱’하는 경쾌한 소리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그 고집불통이던 차가운 녀석이 말이다. 왠지 그것이 싫었다. 하지만 역시 몇 분이고 기다려도 전원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단념하고 일어나려고 하던 찰나,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나는 그제서야 주머니에 있던 하얀 봉투와 휴대폰 하나를 발견했다.
[오빠에게]
봉투 겉에는 소라의 글씨로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꾹꾹 눌려 쓴 흔적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글씨 한 모퉁이에 번진 자국이 있었다. 서둘러 봉투를 꺼냈다.
[오빠,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어.] 소라는 확실히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서둘러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줘. 그리고 믿어줘. 15년 동안 같이 살았던 오빠로써 늘 그래왔듯이, 최근에는 이상한 초능력마저 믿어줬듯이 내 말을 믿어줘.] 나보고 고집 부리지 말라던 그거 말이군. 확실히 나는 소라를 믿어줬다. 그리고, 여전히 믿는다.
[이건 절대로 내 망상이 아니야.]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나는 재빠르게 글을 읽어내려갔다. 쪽지에는 휴대폰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지시가 내려져있었다.
[다X이나 네X버 실시간 검색어를 봐.]
하라는대로 했다. 대전 지하철 사고? 이게 뭐지?
[지하철 사고에 대해서 나와있지 않아?]
확실히 그랬다. 아 그럼 저 사이렌 소리는 그것 때문인가. 나는 흥분한 채로 계속 글을 읽어내렸다.
5분 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은 편지 위로 떨어져 마치 건반을 때리듯이 비극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고, 편지는 흐물흐물해져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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