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한창인 5월의 캠퍼스. 교내에선 술자리가 한창이다.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한 노천 주점에 그가 있었다. 그에게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겉으로 보기에 험상궂고, 가진 것을 다 약탈할 산적같이 생긴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었다. 성실하고 속이 여린 그는 어른들의 학대와 후배들의 홀대를 웃는 얼굴로 받아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던 옛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뱉어진 침마저 달게 삼켰다. 겉으로 보는 그는 그랬다. 그는 소문난 주당이었다. 아니, 주당이어야 했다. 내가 본 그는 오히려 술로 스트레스를 받는듯했지만, 찰나의 쾌락을 위해 술잔을 놓지 않는 그였다. 나이답지 않게 덥수룩한 수염에는 늘상 술방울이 맺혔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와 마시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만은 그가 왕 중의 왕이요. 사자의 탈을 쓴 진리였다.
"잔을 채워라. 후배 놈아.", "잔을 들어라. 후배 놈아." 후배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술을 마시면 변하는 성격 탓이 아니었다. 술을 마신 뒤 그가 부리는 주사를 두려워했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관자놀이에 힘줄을 붉히며 꾸역꾸역 부어 넣는 안주와 술들. 곧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캠퍼스를 아름답게 수놓을 선홍색의 채색들.
후배 하나가 그를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는다. 염을 하듯 그의 저지를 벗겨 머리를 받쳐주고 이불 대신 학회지를 덮어준다. 코알라들로 붐벼 협소한 학회실이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서지 않는다. 취해서 비벼대는 턱수염이 두려워서일까. 아니다, 그건 그의 수채화를 경험하지 못해서이다. 그 날도 그는 다섯 번이나 학회실을 채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