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그는 다리가 불편한 중년의 남성이다. 집에서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자신만을 기다린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사들고올 빵조각을 기다리는 아이들.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아내는 식당에 다니며 그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갔다. 잠을 줄여가며 허드렛일로 가족을 먹여 살리던 그녀. 그리고 청천벽력 같던 그녀의 대장암 선고.
조나단은 두 뺨을 닦고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그리고 애써 강해 보이고 엄격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본다. 한 대기업 신사옥에서 보안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자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개성 없는 지원자들, 그리고 옷장 속에 박혀있던 빛바랜 양복을 입은 자신...... 장애가 있는 그를 선뜻 뽑아줄 기업이 있으리 만무하지만, 자신을 다잡는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내 처자식이 며칠째 굶고 있다. .
초조함을 깨는 휴대폰의 나지막한 진동소리. 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한다.
"조나단 씨 서류 전형을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면접 일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됐다. 됐어.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서류상으로 장애 유무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문을 열고 면접장에 들어선다. 비에 홀딱 젖은 정장을 걸친 그를 바라보는 면접관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다리까지 저는 모습을 확인하자 굳어지는 얼굴을 애써 태연한 미소로 덮는 그들. 이윽고 한 면접관이 말문을 연다.
"조나단 씨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만, 서류상으로는 장애가 없으신 것으로 제출하셨군요."
당황한 조나단, 애써 침착하게 대답한다.
"육체적 장애는 정신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며칠째 피죽도 먹지 못한 처자식이 집에서...."
다른 면접관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당신 가정사는 지금 우리 기업에 중요하지 않아요! 조나단 씨는 지금, 우리를 속이고서는 변명을 하고 계시군요! 우리가 필요로 한 사람은 조나단 씨 같은 나약한이 아니라 사지 멀쩡하고 믿음직한 요원입니다!"
눈을 질끈 감은 조나단의 두 뺨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아이들과 투병 중인 아내, 그리고 그녀의 병원비만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서서히 입을 뗀다.
"저는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인내력을 가졌습니다. 이것만큼은 지금 밖에서 이 면접을 기다리는, 그리고 이 회사의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밖에는 지금 건장한 성인 남성도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폭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저 폭우 속에서 넘어지고 또 다시 넘어지며 이곳까지 왔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다시금 보여드리겠습니다." .
유리창에 몰려든 사람들, 그리고 조나단에게 몰린 눈동자들. 잔인한 폭우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지만 조나단은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달렸다.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렸다.
그나마 성했던 오른쪽 다리마저 비명을 질러온다. 이와중에 두 눈에 선명히 고이는 나의 아버지. 당신의 따뜻한 미소 뒤에 가려져 있었을 고된 역경들이 떠올랐다. 차가운 빗물 속에서도 뜨거운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묵묵히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박수를 친다. 이에 연이어 곧곧에서 터져나오는 박수와 응원의 외침들. 모두가 하나 되어 조나단을 응원했다.
그리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면접관들.
이제 조나단의 아이들은 더는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