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써보자!
그 네번째 시간입니다.
애니게에 어울리지 않게 텍스트만 좌라락
나열해 놓았을 뿐인 글들을 정독해주시는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번 시간에는 특별히 제가 즉흥적으로 그린 러프 만화 이미지들을
예로 들어가며 '에피소드'라는 것, 그리고 독자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실질적인 팁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가면 갈수록 서론에 써야 되는 말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의 예시가 되어줄 주인공들입니다.
- 도시 외곽에 위치한 한 일식집.
장녀인 은아가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굳이 이 러프 만화에 제목을 붙인다면 '승아네 가게에 어서 오세요' 정도랄까요.
역시 급조한 것이기에 제목을 붙이는 것 자체가 민망하네요.
위에 "어? 변태아저씨 또 왔네?"라는 대사를 하는 큰 딸이 은아,
밑에 걸쭉한 욕을 하는 작은 딸이 승아, 초밥 만드는 아빠. 그리고 아빠의 친구.
요 네 사람이 예시가 될 에피소드의 중심인물들입니다.
에피소드란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서 어떤 인물의 절정(선택의 순간)을 지나 끝맺음을 하는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단편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바로 이 에피소드 하나,
그리고 장편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여러개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피소드는 통상적으로 인물 하나를 중심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루면 이야기를 진행하기 힘들 뿐더러
이 인물 저 인물로 감정선 포커스가 자꾸 이동하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시키기 어렵다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실례로 저 또한 한 에피소드에 다수의 인물들을 감정이입시키려다 실패한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에피소드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였겠죠.
VOL 3에서 나온 왕자와 공주의 에피소드에서 왕자라는 한 인물의 처음모습이,
몇개의 위기와 절정을 지나 나중모습으로 바뀌었죠?
네. 에피소드는 사실 그거면 되는겁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독자들에게 캐릭터를 구분할 수 있게
개성을 부여할 필요는 있겠죠.
예시입니다.
-은아
아버지와 친구
-승아
승아네 가게에 어서 오세요(이하 승가어)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처럼
판타지가 아닌 현실 베이스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 첫 단계에 속하는 WORLD에 대한 정보는 거의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다음 단계인 CHARACTER와 그들의 관계를 빨리 보여주는 것이 효율적이죠.
단 저 몇 컷으로도 각자의 개성.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관계를 유추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인물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외모와 반대되는 특성을 불어넣어라.
일례로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완전 애인데 속은 영락없는 변태아저씨입니다.
승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은 작고 귀여운 어린 아이인데 속은 완전 욕쟁이 할머니인거죠.
둘째, 강박증적인 특성을 불어넣어라.
원피스의 상디나 루피를 연상하시면 쉽습니다.
루피는 고기를 엄청 좋아하지 않던가요?
상디는 여자를 거의 신격화하지 않던가요?
이것과 마찬가지로 은아 또한 늘 상대방에 대해 쌀쌀맞고 냉정해야 된다는 타입입니다.
만화같이 약간 과장해서 내용을 전개하는 매체에서
인물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크게 요 두개입니다.
그리고 CHARACTER 단계에서는 인물에 대한 호감을 높이기 위해
바보스러움을 강조해주는 것도 좋은 방식입니다.
유머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탁월한 방식이거든요.
동생이 칼로 손가락 베였을 때는 쌀쌀맞게 굴더니
이런 일에는 은아도 내심 신경은 쓰이나 보군요.
여기까지 제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이번 에피소드에서 다뤄야 할 중심인물은 아빠친구인
대머리 아저씨, 그리고 은아 이 두명으로 정해졌습니다.
원래 1화에서는 주인공들중 하나만을 다루는 게
좋지만 아무래도 연재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까진 제 즉흥대로, 제가 내키는 데로 하고 싶거든요.
자... 이제 world, character까지 나왔으니 motivating incident로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동기부여사건이라고는 해도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사가 없어도 사소한 걸로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죠.
이것처럼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친구인 대머리 아저씨가
친구 딸래미 레벨을 넘어서 승아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군요.
여기서, 갈등을 가시화시키기 위해 갈등을 심화시켜볼까요?
갈등을 심화시킬 때는 적어도 3단계는 거쳐야 됩니다.
이를테면 두 인물이 싸울 때 처음에는 비아냥 -> 욕하기 -> 주먹다짐으로 가야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없습니다. 단번에 주먹다짐으로 가버리면 갈등의
폭이 갑자기 급상승해버려서 보는 사람이 멍믜?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대머리 아저씨로 포커스를 돌려보죠.
저런, 하필이면 승아가 옷을 갈아입을 때
엄한 곳에 들어가버렸군요.
이후 대머리 아저씨는 승아에게 더 접근하게 되는데.....
어익후. 이런이런. 이 전환점에서 우리는 은아가 사실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츤데레
아가씨란 걸 알게 됐군요. 여기서 여러분들은 하나의 큰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물은 기본적으로 평상시와 위급한 시점에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서로 다른 행동양상을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은아가 평소에 '난 승아 네가 내 동생이라 너무 소중해.
그러니까 네가 위급하면 난 언제든지 널 구해줄거야.'라고 말한다면
승아가 위험에 빠질 때 은아가 구해줄 거라는 걸 예측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죠.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가 반감됩니다.
이걸 응용하면 반대로 이렇게도 할 수 있죠.
평상시에 '네가 위험에 빠지면 널 구해줄게' 라고 한 인물이 말합니다.
그리곤 막상 그 대상에게 위험이 닥치자 무서워서 자기 혼자 홀랑 도망가버립니다.
이 대비되는 두 모습을 일컬어 '인물이 입체감이 있다' 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양면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죠.
이쯤 되면 은아의 모습에 독자들은 사고변화가 일어납니다.
'뭐야, 저 은아라는 애는 지 동생 다쳤는데 눈 하나 깜빡 안하네? 독한 년.'에서
'뭐야~ 속으로는 동생 되게 아끼잖아~ 좋은 녀석이네!' 하며
인물에게 호감을 품게 되는 것이죠.
자, 이제는 다시 대머리 아저씨에게 포커스를 이동시켜볼까요?
은아에게 된 소리를 들은 대머리 아저씨.
아버지와 함께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게 되는데...
대머리 아저씨의 슬픔이 조금 느껴지십니까?
느껴지셨다면, 바로 그걸 페이소스(비애)라고 합니다.
제가 만화를 이어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가
많이 반감된 느낌은 있지만 조금만 느끼실 수 있으면 됩니다.
대머리 아저씨가 승아에게 추근덕댔던 건
죽은 자신의 딸이 가슴에 아른거려서이죠.
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냥저냥 넘어갔던 아버지 또한
30년지기 친구니 친구의 속마음을 모를리가 없어서였구요.
인물을 변태로 만드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1차원적인 변태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아픔과 고통을 가슴속에
지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바보같은 모습을 하고 변태같아서 우리와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속, 즉 본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와는 다르지만, 우리와는 다르지 않은, 입니다.
그리고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이야기 순서를 조금 꼬아놨습니다.
motivative incident 이후에는 분명 test인데 revealatin(숨겨진 비밀)이 먼저 나와버렸죠.
따라서, 승아와 은아가 대머리아저씨의 사연을
알게 된 이후에 나올 장면은 아직은 서로 어색해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머리 아저씨의 test입니다.
대머리 아저씨가 친구의 딸을 자기의 딸처럼 정말 소중히 여긴다면,
그 애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자기가 다쳐서라도 그 아이들을 구하겠죠.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내는 것.
이 것이 '개성'과 '유머'를 거쳐 인물이 가져야 되는 '희생'의 덕목 입니다.
간단한 처리방식으로 이후 장면을 그린다면 가게 안에 있는 무거운 박스가 승아 머리 위로
떨어지자, 대머리 아저씨가 승아를 구하고 대신 맞고 기절한다....정도면은 무난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승아, 은아와 대머리 아저씨의 관계가 처음모습'나쁨'에서 나중모습'우호'로,
관계가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drama(극)'입니다.
vol 4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나리오를 써보자 vol 1
시나리오를 써보자 vol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