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왔습니다. 베스트 갈줄 몰랐는데 갔네요 감사합니다. 이어서 씁니다.
처음 읽는 분들은 전편 도서관 애기 무당을 보고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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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리가 호통을 치니까 등 뒤에서 들리던 가가각 소리가 갑자기 뚝 끊기는 거다. 창 밖에서
애들 떠드는 소리에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데 이상하게 우리 있는 복도는 조용해서
복도 밖이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애기 목소리로 호통을 친 나리가 갑자기 다가와서는 품에서 이상한
천 같은 것을 꺼내더니 복도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날 보지도 않고 그대로 휙 가로질러서는
나리를 찾아 왔던 그 창백한 선배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건 못먹어 이년아. 누가 먹게 할거 같으니? 사지가 찢겨야 정신을 차리지!!'
어린 애들이 재롱피운다고 막 목소리 높여서 애교 피우는 그런 목소리로 말하는데 소름이 쫙 돋았다.
그래도 이상한건 나리가 날 지나가니까 꼼짝도 못할 것 같던 몸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거다. 대신
심장이 막 터질것처럼 뛰고 진짜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이상하게 피부는 꽁꽁 언 것처럼 차갑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꼭 목덜미에 얼음 하나 얹은 것처럼 싸한데 주제에 남자라고 호기심이 앞서서
나는 멍청하게 뒤를 돌아봤다.
나리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데 그 너머로 주저 앉아서 선배가 울고 있었다. 무서워서 그런건지 펑펑 우는 선배를
선배 친구들이 붙잡고 있었다. 선배 친구들도 이 상황이 기가막히고 무서운지 울지는 않았지만 덜덜 떨고
방언 터진것처럼 이게 뭐야 아 뭐야 짜증나 이거 뭐야 이 소리만 반복할 뿐 나리한테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것 같았다.
꽤 오랫동안 선배를 노려보던 나리가 꺼냈던 흰 천으로 갑자기 선배 왼쪽 손목을 감기 시작했다.
선배는 울면서도 이게 뭐야 이게 뭐야 하고 저항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찢어지게 비명을 질렀다.
놀라서 바라보니 분명 희던 천이 선배 손목을 감자마자 갑자기 누렇게 색이 변하는거 아닌가. 무슨 먹물
떨어진 것처럼 점점 변하는걸 보고는 나리가 뜬금없이
'독한년. 또 죽어야 정신을 차리지?'
이러고는 누렇게 물든 천을 열심히 선배 팔에 휘감았다. 선배는 엉엉 울고 선배 친구들과 나는 영문도 모르고
아 미치겠다. 이거 뭐냐. 무서워서 죽겠다 이러고 떨고 있으려니 나리가 고개를 획 돌리고 나를 바라봤다.
'너도 들었지?'
'뭘들어?'
'귀신오는 소리 들었잖아. 이년 죽고 나면 너 데리고 가겠네'
무슨 말인지 뜻은 몰랐는데 무서운 건 알았다. 아까 그 가가각 거리는 소리를 말하는 건가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나리가 울고 있던 선배에게 말했다.
'그러길래 그걸 왜 건들여. 미친년아. 죽은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사당을 망가트리면 어쩌니. 이제 너 다 죽었다.'
선배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엎드려서 엉엉 울더니 두살이나 어린 나리 발을 잡고 살려달라고 몇번이고 말했다. 그 동안 선배 팔에 휘감겨 있던 천은 점점 더 누렇게 말라 가더니 거의 갈색에 가까워졌다. 나도 그 소리만 듣지 않았다면 그냥 미신이겠거니 하고 나리가 했던 말을 무시 하겠는데, 소리를 듣고 나니 언제 그 이상한 소리가 또 들릴지 몰라서 미칠 것 같았다.
'해 지면 또 올거야. 오늘 밤에 상치루기 싫으면 너 우리 할머니좀 만나야 겠다.'
그 말을 끝으로 나리는 뒤도 안돌아 보고 다시 독서실로 갔다. 나는 거의 실신할 것처럼 우는 선배를 부축해서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점심 시간이 끝났지만 하교할 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수업도 듣는둥 마는 둥 그냥 교실 내 자리에 앉아서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나리와 같은 반이라서 그런건지 뭔지 이상하게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지만 점심시간 이후로 이상하게 인상을 구기고 가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나리 모습을 보니 착각이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일단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 당시 휴대폰이 좀 대중화 되긴 했었지만 난 아직 폰이 없었다. 교무실 옆에 있는 공중 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늦게 간다고 말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받고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엄하게 말했다.
'일단 거기 가서 할머님 말씀대로 다 해. 일 다 끝나면 아버지가 데리러 갈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거기서 시키는대로 해.'
엄마도 이 상황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신기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봤지만 엄마 대답은 시키는대로 하라는 것 하나 뿐이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자 선배가 다시 우리 교실로 왔다. 이번에는 선배 혼자 뿐이었다. 그 친구들은 무서워서 같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가 이따 온다고 말 들으래서'
선배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미 부모님이 상황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점심 시간 끝나고 수업 내내 울었는지 선배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제는 거의 검게 변한 천이 무서워서 나는 되도록 천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하교 시간이 되자 나리가 나와 선배를 불러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할머니에게 다 말해놨다고 하는 목소리가 평소랑 똑같아서 안심이 됐다.
나리 집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걸어서 10분도 안될것 같은 곳이었다. 다만 학교 뒤쪽으로 난 처음 가본 골목이었다. 골목마다 크고 작은 집이 이어져 있었는데 집마다 대나무에 비치볼이나 색색의 천이 매달려 있었다. 어떤 곳은 먼지가 잔뜩낀 부처님오신날이 적힌 불꺼진 연등이 쌍으로 달려 있었는데 거기가 나리 집이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나리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우리를 집 안으로 부르지 않았다. 나리가 없이 선배와 나만 서 있으려니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다. 어디서 다시 가가각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었다. 그러나 나리는 바로 돌아왔다.
작은 플라스틱 대야 같은 것을 가지고 온 나리가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선배와 나는 부모님에게 들은 것도 있고 해서 우물쭈물 양발까지 다 벗고 맨발이 되었다. 우리가 맨발이 된 것을 확인한 나리가 대야에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을 꺼냈다.
식칼이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 두개를 꺼내더니 나리가 칼등쪽을 향해서 입에 물라고 했다. 무는 동안에는 아무 말도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데 눈에 불길이 이는 것처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선배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하라는 대로 칼을 입에 물었다. 쇠맛인지 피맛인지 이상한 맛이 났다.
'이제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 따라서 와.'
선배가 앞서서 걸어갔다. 겁에 질린 듯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는데 나리가 대야에 담겨 있던 흰 모래 같은 것을 한줌 쥐고 나와 선배 발에 뿌렸다. 따갑고 아픈 것이 굵은 소금이었다. 맨 발에 닿는 소금 알갱이가 굵었지만 무서워서 그런지 아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가가가가가가각'
등 뒤에서 였다. 그 뿐만 아니었다. 우리가 넘어간 대문에서 철컹철컹 하고 뭔가가 쥐고 대문을 흔드는 소리가 났다. 쇳소리가 무서워서 등줄기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누가 머리채를 잡아 챌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나리의 얼굴이 마치 미친 것처럼 급격하게 일그러지더니 예의 또 그 이상한 애기 목소리를 내며 소금을 바닥에 뿌려댔다.
'너 먹을거 없다 이 년!! 당장 물러나라!! 이 년!! 또 죽을 년!!!!'
그에 맞춰서 철컹거리는 소리가 더 심하게 들렸다. 도무지 잘못 들은 것 같지가 않아서 뒤를 돌아보려니 나리가 획 하니 다가와 째진 목소리로 돌아보지마!! 하고 고함을 질렀다. 붉게 충혈된 눈이 일그러진데다, 흰자도 충혈되어 온 눈이 다 새빨갛게 보였다. 이상하게 나리 목소리를 듣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돌아가던 고개가 다시 바로 돌아갔다.
열 발자국도 안될 것 같던 마당을 간신히 가로 질러서 나와 선배는 나리를 따라 나리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희미하게 향 냄새가 나는 집 안은 들어오자마자 작은 황금색 부처님이 있는 큰 방이 보였다. 부처님 주변에는 꽃과 초로 꾸며져 있었다. 작은 부처님 옆에는 더 작은 부처님도 있었는데 그 뒤로 현란한 색의 부처님 그림도 벽을 도배하다시피 그려져 있었다.
방에 들어간 후에야 나리가 입에 물고 있던 칼을 뱉으라고 했다. 선배는 얼마나 억세게 물고 있었는지 입 주변이 온통 뻘겋게 문들어져 있었다.
그 사이 울었는지 눈이 시뻘건 선배와 내 앞에 곱게 한복을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이마위로 넘긴 쪽진 머리에 눈썹문신을 했는지 눈썹이 치켜올라간 할머니였다. 다리가 후들거려 엉거주춤 선 우리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나와 선배를 끌고는 부처님 모신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지금부터 내 말 잘들어라. 너희 둘은 이제 연화대 아래 숨어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나오면 안되고 누가 너희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면 안된다.'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다. 할머니 말은 내가 혼자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너희를 부를 때는 직접 문을 열고 너희를 꺼낼 거니 너희는 걱정말고 안에 있거라. 그리고 너!'
나리 할머니는 나리 보다 무서웠다. 눈을 획 치켜 뜬 할머니가 덜덜 떠는 선배를 가리켰다.
'너는 그 안에서 네가 지은 잘못을 빌고 귀신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어라. 진심으로 빌지 않으면 쫓아내도 다시 돌아올 것이야. 네 목숨이 달렸으니 너 하는 대로 목숨을 보전해'
내게 말 할 때보다 훨씬 무서운 목소리였다. 간신히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문 활짝 열고 소변을 본 직후 나와 선배는 각자 다른, 나리 할머니가 법당 아래 연화대라고 말한 길고 낮은 수납식 창고에 각각 들어가게 되었다.
창고 안은 좁고 컴컴했다. 네모난 상자 안 같은데다가 5월인데도 부산은 여름처럼 더웠다. 발치에 닿는 물건들은 대부분 북이나 장구 혹은 초가 들어있는 상자들 같았다. 다행히 구석에 방석 같은 것이 쌓여 있어서 나는 그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덥긴 했지만 이상하게 공기가 부족한 것 같지는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문 너머로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때는 분명히 할머니와 나리 뿐이었는데 아저씨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아줌마 목소리가 하나 둘씩 늘었다. 무슨 굿을 준비하는 것처럼 여기에 상을 놔둘까요. 여기에 방석을 놓을까요. 떡은 바로 찔게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십분이 지나고 한시간이 지나도 대화는 계속 될 뿐 도무지 뭐가 시작하는 것은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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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좀 긴것 같아서 부득불하게 자릅니다. 저녁에 마지막 이야기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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