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2000년대 초중반에 입대를 한 청년입니다.
군대 가기전 이런저런 알바를 하루에 9시간 ~ 12시간씩 반년 넘게 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사회성을 키우고,
나름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터라 사실 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신병 교육대에서도 화생방을 제외한 모든 훈련이 '뭐 알바하는 거하고 비슷하네' 싶었고
무도 단증도 있겠다, 조교들의 추천으로 수색대에 차출될 뻔도 하였구요.
(다만 동반 입대한 친구가 극구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
앞으로의 군생활이 순조로울거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자대배치 첫 날만에 우르르 무너졌습니다.
신병에 대한 짖궃은 선임들의 여러 장난도 나름 잘 대처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첫 날 밤부터 무지막지하게 깨졌습니다.
(제목에 써놨듯이) 바로 제가 코를 정말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골은 것.
당연히 아무리 악마같은 선임들도 왠만하면 갓 자대배치 받은 신병은 터치하지 않지만
한 개 소대가 한 내무실에서 서식하는 당시로서는 나 하나 때문에 20명이 넘는 소대원들의 취침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참다참은 선임들도 결국엔 자대배치 당일부터 본인을 무지하게 괴롭히더군요.
그 다음날, 일어나자 마자 본인 분대의 분대장이 갈구기 시작합디다.
분대장 : 야 이 XX야, 너 코 하도 심하게 골아서 불침번이나 다른 애들이 너 하루밤에 몇 번이나 깨웠는지 아냐?!
본인 : 이! 병! 꽃미남!!! 20번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분대장 : .......애새퀴들 말 종합해 보니까 대충 70번 정도거든?!
본인 : 이! 병! 꽃미남!!! 죄송합니다!!!
분대장 : 이 짬 먹고 신병 갈구기도 웃긴데 이 XXX야, 코 골아서 깨우고 죄송합니다 이야기 듣고
자라고 해서 눕자마자 바로 코를 골더라? 미쳤냐? 쳐 돌았냐? 니네 아빠 장군이라도 되냐?!
.......
간단히 종합 하자면 본인은 엄청 코를 골았고, 불침번을 포함한 여러 소대원들이 하도 시끄러우니
깨워서 주의를 주고 욕하고 몇 번은 물리적 충격을 가해도
본인은 눕자마자 엿 먹으라는 듯 우렁차게 코를 골았고,
심지어 몇 번은 저를 무릎 꿇게 하고 갈구는 와중에도 잠들고 코를 엄청 골더라......
는 내용이었습니다.
보통은 적응 기간이라 해서 신병은 한 일주일 정도 별 터치를 안하고 일도 안 시키지만
첫 날부터 하도 우렁차게 코를 골아서 본인은 이미 폐급으로 찍힌 뒤였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아침 구보, 군가를 부르며 2km를 뛰는데
벌써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나 하나 때문에 - 구보 낙오하면 졸 갈구려고 -
중대원 전체가 평상시보다 훨씬 군가를 많이 부르고, 빨리 뛰더군요.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본인은 대열에서 단 한 발자국도 쳐지지 않고 무사히 완주를 했고,
전술 훈련이 워낙 많아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대 특성상 본인은 단숨에 폐급에서 준 A급 병사로 평가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쫘르륵 이어진 여러 전술 훈련에서 본인의 동기 반 이상이 낙오한 것과는 달리
대열에서 단 한 발자국도 뒤쳐지지 않으며 잘 따라 붙었고 선임들은 '어 이놈 의외로 체력 좋은데?!'
라며 좋아라 했습니다.
거기에 외울 것도 가르쳐 주는 대로 대부분 암기하고 목소리도 크게 내고
나름 샤바샤바도 잘 할줄 알고 여기까지만 보면 '와 내가 봐도 A급이네' 싶었지만
그 놈의 코골이 하나 때문에 본인은 날마다 고통 받아야만 했죠.
옆으로 돌아 누워도, 베개를 높이거나 없이 자도, 엎드려 자도,
날이면 날마다 코 골때마다 깨워서 졸 갈궈도, 게다가 방독면을 써도
저는 정말 미친 듯이 내무실이 떠나가라 코를 골아 댔으며
그 덕분에 선임들에게 벌어놓은 점수도 다 까먹고 날이면 날마다 대차게 까였습니다.
날마다 전국 팔도의 욕과 협박, 비속어, 때로는 범죄 예고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다 보니 서울 토박이인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올 정도
오죽하면 너무나 심한 코골이 때문에 소대원 전체가 합심해
'제발 이 XX 군병원에서 코골이 수술좀 해주십쇼!!!'
라며 소원 수리를 썼는데, 기각.
이유인즉슨 알고보니 본인 지인의 지인중에 꽤나 높으신 분이 계셨고 그 분께서 이 일을 우연히 알게 되셨는데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미친거 아니냐?!!!!'
......라는 요지의 말을 직접 전화를 걸어서 격하게 하셨다고 함.
물론 본인도 매우 미안하게 생각했고, 일병 정기 휴가때 코골이 수술을 받으려고 이비인후과에 갔지만 의사 왈,
'군인이세요? 코골이 수술 받으면 최소 3주는 경과를 지켜보고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절대 안됨요,
군병원에선 그거 후속 조치 해주기 힘들걸요, 님하도 아직 일병 찌그레기라 눈치 보일거고.
대신 비염 완화 수술은 어때요? 그건 레이져 시술이 가능해서 2, 3일이면 아물거고
코골이 수술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나 코골이 소리 줄어 들거임'
이래서 했지만, 효과 전무.
결국 힘 없이 부대 복귀 했고, 다른건 다 잘해도 그놈의 코골이 하나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생활이 계속 되었습니다.
한 번은 중대 회식때 술에 꼴은 같은 소대의 모 선임들이 저를 보더니
'야 이 XX야, 너 오늘도 미친 듯이 코 골거지?!!
나 오늘 너 존나 패고 니 코골이 소리 안 들리는 영창에서 잘란다 시부럴놈아!!!'
이러며 죽일 듯이 양손에 소주병을 파지하고 달려 들어서
그나마 덜 취한 소대원들이 뜯어 말리는 일도 있었고 뭐 그랬습니다.
혹시 나 때문에 저 선임들 영창 가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다른 소대 선임과 간부들도 '오죽 시달렸으면 저럴까' 하며 그러려니 넘어 가더군요.
이유인즉슨 가끔씩은 지네들도 제 코고는 소리 때문에 깬다고......
덧붙여 전술 훈련시에도 눈만 붙였다 하면 우렁차게 코를 골아대서 대항군에게 들킬뻔한 적도 꽤 되었죠.
그래서 중대에서 나만 유일하게 훈련 끝나고 짬순으로 받는 포상 휴가를 못 받았어 제기랄
한 번은 산속에서 1km를 쫓아가 수색대 특작조 잡은 적도 있엇는데
아무튼 세월은 게리롱 후리롱, 막 완공한 신형 막사로 옮겨서 분대별로 생활하게 되자
제가 속한 분대원들을 제외한 소대원들이 만세 삼창을 하더군요.
제 코골이 소리 안 들어도 된다고......
얼마 후 본인이 병장을 달고 부분대장 맡을 짬이 되고 소대 개편을 했는데
짬이 안 되어서 제 분대장을 맡은 모 병장은 '말년에 이게 뭔 XX이야?!'라며 막 나가기 시작 했습니다.
잠시나마 저의 크고 우렁찬 코골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 났지만 다시 원상 복귀 되자 삐뚤어진 거죠.
급격한 상황의 변화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덧붙여 본인은 후임들에게 단 한번도 구타를 한적이 없습니다.
그런 악습은 폐지 되어야 마땅 하다고 생각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 코골이 때문에 날마다 고통 받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니 미안해서요.
제가 봐도 제 자신은 체력 좋아서 온갖 훈련에서 단 한 번도 낙오 안하고 아는 것도 많고
다른 부대에 팔려 다닐 정도의 특등 사수에 센스도 꽤 있고
무엇보다 가위 바위보를 워낙 잘해서 대부분의 작업도 피해가고 부식도 더 챙겨오고 등등
정말 제가 봐도 난 A급 병사구나 싶었지만 - 행보관이 부사관으로의 전직을 권유하기도 했고 -
코골이 하나 때문에 여러모로 평가 절하 당하니 포상휴가 좀 줘 젭라 서로에게 좋잖아 슬슬 왠지 열이 뻗치더군요.
게다가 후임들에게 사격장이나 훈련중 아니고서야 왠만하면 싫은 소리 안하고
단 한 번도 손을 안대니 점점 저를 우습게 보더군요.
- 게다가 제 코골이 때문에 제 분대에 소위 말하는 '폐급' 애들을 몰아 주고 -
이래저래 중대 쓰리고가 되어도 오히려 여러모로 불만이 생겼습니다.
중대 쓰리고를 달고도 제 분대장에게 날마다 코 곤다고 갈굼 받는것도 짜증 났구요.
그러다가 드디어 중대 왕고가 되고 분대장을 단 그날밤,
저는 '이제 더 이상 나를 갈굴자 그 누구냐!!!' 누구긴 누구야 우리의 주적 간부지 하는 생각에 긴장이 완전히 풀렸고,
지금까지의 만행이 우스울 정도로 말 그대로 대대가 떠나가라 코를 골았습니다.
대대 당직 사령을 서던 윗 중대 중대장이 야심한 밤에 갑자기 계속 울리는 큰 소리에
무슨 사고가 터진줄 알고 급히 내려 왔다가 제가 코고는 소리라는 것을 알자 허탈해서 그자리에서 담배를 물었더래요.
그리고 제 코골이는 전역하는 그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