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객님~ 어서오세요.
처음 보는 어머니뻘의 여자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녀의 양 손에 밀려 좁은 매장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카트에 우리 가게의 물건이 실리길 바라면서. 나는 싱긋싱긋 웃는다. 이 대형 마트의 스포츠 브랜드 단기사원(말이 사원이지 아르바이트 생이다)으로 들어오는 날, 긴 시간의 교육을 받으며 배웠던 웃음이다. 스물 한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자존심을 쉽게 접을 줄 알았다. 사장님은 나의 그런점을 마음에 들어했다. 처음엔 휴무 대처로 일주일에 두 번 나오기로 했던 내가 한번을 쉬기 힘들어진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찾으시는 용도가 있으세요?
여자는 아무말도 없이 그저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툭 튀어나온 입이 귀찮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나의 물음엔 대꾸 하나 없이 여자는 진열된 신발들을 한번 휙 둘러본다. 그리고 다른 매장과 이어지는 좁은 사이틈으로 천천히 카트를 끌었다. 카트의 앞바퀴는 정신사납게 좌우로 흔들린다. 그러다 결국 틈 옆에 쌓여진 신발 박스들의 아랫쪽을 툭, 건드렸다. 빈 박스들은 작은 충격에 휘청거리다 결국 여자와 카트를 향해 와르르 쏟아진다.
아~뭐야 진짜 짜증나게.
그제서야 여자가 입을 연다. 나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얼른 그녀 주변에 쏟아진 신발 박스들을 가지런히 모아 멀찍이 떨어진곳에 두었다.
아 사람 지나다니는 틈에 쓰레기를 쌓아두면 어떡해요? 아 진짜 기본이 안되있네 여기?
죄송합니다 고객님. 오늘 손님이 많으셔서 제가 미처 폐지 처리를 못했습니다. 앞으론 이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나는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린다. 여자는 됐어요-퉁명스럽게 말하며 천천히 카트를 끌며 다른 매장으로 향한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즐거운 쇼핑되세요~ 나는 교육하며 받은 전송인사를 빼먹지 않는다. 나는 훌륭한 직원이다. 멋쩍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브랜드의 사원분들도 항상 나를 칭찬했다. 내가 하는 일터 안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짜릿한 일이다. 신발박스를 천천히 눌러 꾸기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여기요~!
네 고객님. 안녕하세요?
나를 부른건 정말 동네에서 흔하게 볼법한 파마머리의 통통한 아주머니였다. 오른쪽에 검품라벨이 붙어있는 검은 봉지를 들고 있는걸 보니 수선을 맡기러 온 모양이었다. 이내 아주머니는 봉지안에서 심하게 낡은 신발 한짝을 꺼냈다. 살짝 눈대중으로 봐도 수선실 구경만 하고 다시 반송될 물건이었다. 나는 최대한 죄송한 표정으로 아주머니의 말을 기다렸다.
이거 사간지 정말 얼마 안됐는데~몇 달 신지도 않았어요. 근데 여기 뒷축 이거 다 닳아버린거 봐. 그리고 안쪽도 다 헤지고~ 이거 왜 이러는 거에요? 불량품 아니에요?
하하...고객님. 죄송하지만 이 제품은 제작년에 판매하고 저희 매장같은 정상매장에선 더 이상 판매를 안하는 제품이세요.
아니~정말 몇 달 안됐다니까? 저기 옆에 어디야 역곡역에 있는 매장에서 샀어요.
아 고객님. 그쪽은 상설매장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년정도 지난 예전 물건을 파는겁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물건이 오래되서 삭아있어요. 그점 염두하셔야 합니다.
아니, 그래도 총각이 잘만 써주면~ 환불같은것도 해주잖아요. 정말 몇 달 안신었다니까?
난감했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된 제품이라도 이렇게 닳을려면 1년은 신었어야 했다. 이정도면 기분 좋게 바꿀때도 되지 않았나? 나의 가치관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제가 본사에 글은 잘 써서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판단은 어차피 본사에서 하기 때문에 결과는 어쩔 수 없어요 고객님.
아 진짜 총각 깝깝하네~그래요 일단 써주세요.
서랍에서 AS신청 용지를 꺼내 작성한다. 아주머니의 성함과 연락처를 적고, 확인증을 끊어 드렸다. 일단 기본적인 사항만 적고 자세한 첨부내용은 좀 나중에 쓸 생각으로 신발과 함께 구석에 두려던 찰나, 아주머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걸 쓰지도 않고 넣으면 어떡해요!
고객님 일단 매장에 다른 손님들도 계시니까 조금 한가한 시간대에 잘 작성해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그냥 휭하니 보낼거 누가 모를줄 알고? 지금 써요. 내가 보는 앞에서.
순간적으로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눈 앞의 이 여자는 어디에 사는 누굴까. 자식은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이내 얼굴에 다시 옅은 웃음을 건다. 예 고객님. 다시 펼쳐진 용지에 여러 추신사항을 적는다.
아니 몇 달 안신었다 하지 말고 몇 주 안신었다고 좀 적어줘요. 그래야 환불해줄거 아니야.
아 고객님...환불을 원하세요?
그럼요. 그게 좋죠. 불편해서 신지도 못할거 고쳐주면 뭐해요?
나는 헤질대로 헤져서 안쪽 스펀지가 삐져 나온 신발의 내벽을 만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거지근성. 네글자가 머리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기적이다. 얼마나 걸어다녔으면 밑창이 평평해 진걸까? 예의없다. 발볼이 닿는 신발의 외피가 튿어져있다. AS용지와 신발을 바쁘게 오가던 눈동자를 살짝 위로 올려 나의 볼펜 끝을 주시하는 여자의 얼굴을 살며시 바라본다. 품위없는 파마머리에 자글자글한 주름하며, 단추구멍마냥 조그만 눈동자엔 새까만 욕심만 어른거린다. 불독처럼 축 늘어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분홍색의 립스틱은 이 여자가 얼마나 주제파악을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얀 종이 위에 입혀지는 잉크의 색이 점점 진해진다. 손은 부들부들 떨린다. 서랍 안에는 문구용 커터칼과 가위, 그리고 스태플러와 송곳이 있다. 눈앞의 여자는 말을 죽어있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추신을 모두 작성했음에도 볼펜을 떼지 않자 여자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린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얼굴만 보일 것이다.
고객님. 아무래도 수선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혹시 환불이 처리되지 않으면 물건이 고객님 댁으로 배송되도록 택배서비스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아~정말 알았어요. 뭐 주소 불러야되요?
나는 AS노트에 그녀의 주소를 적지 않았다. 다만 서랍 깊숙한 곳에 있던 포스트잇 뭉치 하나를 꺼냈다. 포스트잇엔 여러 주소들이 적혀있었고 그 위엔 새빨간 볼펜들로 직직 그어져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주소를 받아 적는다.
아~ 삼영빌라 사시는구나. 저희집이랑 가깝네요 고객님.
그래요? 뭐 아무튼 잘 처리좀 해줘봐요. 응? 꼭 환불 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세상에서 재일 재밌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마트에서 일하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스스로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연기를 한다. 당장이라도 때려 죽이고 싶은 걸레같은 개년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왕과 왕비처럼 모신다. 평소의 나와는 다른 모습에 스스로가 대견스럽기까지 할 정도다. 아, 물론 가끔 도를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나 역시 도를 지나친 방법으로 응수해준다. 물론 유니폼을 벗고 나서의 일이기 때문에, 그건 또 다른 범주의 일이긴 하지만... 아직 붉은 줄이 그어지지 않은 주소가 적힌 용지를 살며시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다.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 새롭게 찾아온 고객의 손에 우리 물건이 들려있을 상상을 하며.
으에...게에에에...
마알~하지 말랬지~
여자의 목을 꽉 움켜쥔 남자의 왼손은 일말의 미동도 없다. 괴로움에 발버둥치며 남자의 왼팔을 힘껏 잡아 뜯고 할퀴어봤지만 여자의 손톱에 늘러붙은 남자의 살점과, 흘러 떨어지는 핏물에 비해 그의 표정은 너무나 무미건조 했다. 남자는 오른에 쥔 가위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니까 왜그랬어? 그냥 적당히 지랄하고 꺼졌으면 이러진 않았을거 아냐~ 나는 나름 친절하게 응대했는데 그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안그래?
히이이이...이이..이이이...
여자의 눈에 은색으로 빛나는 가위가 비친다. 다음 순간 늘어진 여자의 볼살이 뚫린다. 남자는 우악스럽게 가위를 벌려 구멍을 벌린다. 비명을 지를수도 없게 성대를 조여버린다. 침과 피가 여자의 컥컥대는 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진 밤그림자 위로 쏟아진다. 남자는 자른다. 다시는 그녀가 말을 할 수 없도록. 새빨간 피가 조여진 목구멍을 다 통과하지 못하고 입안에 고이기 시작한다. 이미 동공이 풀려버린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남자는 웃는다.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며 기괴하게 휘어지는 광기어린 웃음 속엔 어떤 거짓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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