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시체발굴님과 토론하면서 제가 화폐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걸 따로 적어두면 철게 분들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재미로 읽어주세요 :)
태초의 화폐는 '약속의 관계'를 나타낸 점토판 형태였습니다.
갑은 가을 과일을 따기 위해 일손이 필요했고, 을은 봄에 밭을 갈아줄 소가 필요했습니다.
어느 가을날, 갑은 을에게 "내 밭일을 도와주면 봄에 소를 빌려주겠네"라고 제안합니다.
을은 기쁜 마음으로 갑의 밭일을 도와줍니다.
갑은 을에게 '갑은 봄에 밭을 갈 소를 한 번 빌려주기로 한다'라고 쓴 점토판을 줍니다.
그해 겨울, 먹을 것이 떨어진 을은 병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내게 봄에 갑의 소를 빌려쓸 수 있는 점토판이 있네. 이걸 보리 한 되와 바꾸세."
먹을 것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던 병은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거래가 성립되고 병은 '약속의 관계'인 점토판을 얻게 됩니다.
병은 이 점토판으로 다른 일손을 쓸 수도, 다른 물건을 살 수도 있습니다.
처음 점토판은 단지 약속을 망각하는 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약속의 관계'라는 비물질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점토판이라는 형태를 가지면서 하나의 거래 가능한 '물질'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시장에 떠돌면서
'약속의 관계'라는 비물질적 본질은 '거래 가능한 점토판'이라는 물질 속에 매몰되고,
화폐라는 새로운 물질로 탄생하게 됩니다.
누군가 갑에게 이 점토판을 들고 찾아가 소를 빌리기 전까지
점토판은 이 세계에 남아 떠돌게 되는 것입니다.
비물질을 물질 속으로 매몰시키는 화폐의 성격은
마침내 모든 비물질적인 것을 물질로 매몰시키려는 악의적 시도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까지 물질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버블경제가 바로 그 예입니다.
세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 노력이 육체노동인지 정신노동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망치가 만들어지려면 망치라는 물질을 고안하고 설계할 정신노동,
그리고 철광석을 캐고 망치 머리부분을 뽑아낼 노동과
나무를 베고 망치 손잡이를 깎아낼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 하지 않은 노동을 '약속의 관계'로 제시하고
'빚'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립니다.
즉 아직 그만큼의 노력과 노동을 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물을 먼저 받습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 나아가 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같은 빚을 진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이 세계는 수없이 많은 노력의 결과물이 앞당겨져 나타납니다.
그러니 경제는 (미래를 담보로) 실제의 노력보다 앞서 발전하게 됩니다.
다시 갑의 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점토판 거래가 끝나는 시점은 누군가 갑에게 찾아와 소를 요구할 때입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갑을 찾아오면 어떨까요? 갑의 소가 늙어서 밭을 갈 수 없다면,
갑의 소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면, 갑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소를 팔아버렸다면?
어쨌든 점토판에는 갑이 누군가에게 소를 빌려준다고 쓰여있고 갑은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갑은 또다른 이웃인 정의 소를 빌려서 점토판의 약속을 지키거나,
아니면 또다른 점토판을 적어서 교환하여 앞서 만든 점토판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버블경제가 무너지는 시기가 바로 이 때입니다.
누군가 갑자기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을 때,
약속을 이행하라는 말이 도미노처럼 기업들과 가정들 사이에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받은 약속을 건내주고
그 약속이 또다른 약속을 걸고 넘어지고 이것이 부실채권입니다.
마침내 그 누구의 점토판도 '이행 가능한 약속'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질 때,
그 세계는 패닉에 빠집니다.
갑이 소가 없기 때문에 또다른 점토판을 남발하다 목숨을 다하고 나면
그 점토판의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것은 갑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갑은 아버지가 일하지 않고 이득을 얻되 점토판(약속)을 남발한 대가로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약속의 이행'일 뿐이죠.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미미합니다.
만약 여기서 '점토판이 잘못했네'라고 하면, 그것은 화폐를 평가절하하는 것입니다.
'점토판을 거래한 을이 잘못했네'라고 하면, 그것은 시장경제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점토판을 남발한 갑이 잘못했네'라고 하면, 그것은 은행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제서적이 다비치 가문이 만든 은행제도가
파생상품을 남발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가져왔다고 일침을 가합니다.
하지만 이 사태를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몰아가는 순간
그 사람은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공산주의자가 되거나,
기타 이상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화폐를 화폐를 가지고 막겠다는 발상은,
점토판을 부수기 위해 또다른 점토판을 만드는 것과 같이 도움이 안됩니다.
금리조절을 통한 통화정책 같은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점토판을 처리해야 하는가.
소를 만들면 됩니다. 다소 엉뚱하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가능합니다.
만들어진 소, 그것이 바로 트랙터이고 이앙기이고 다시 말해 '기술'입니다.
우선은 정에게 소를 빌리거나 또다른 점토판을 만들어 시간을 벌어야 겠지만
그 약속의 이행에게 정당하게 벗어나는 길은 기술에 있습니다.
우선 쉽게 갚을 수 있는 약속부터 하나씩 이행해서 점토판을 부숩니다.
이것이 바로 부실채권 처리입니다.
그리고 재료는 저렴하지만 그 부가가치가 높은 것을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점토판과 교환하여 또 점토판을 부수는 데 일조합니다.
이것이 기획력, 사람으로 승부하고 완성품의 가치가 높은 IT업종입니다.
이렇게 점토판을 부수어 나가고 마침내 모든 약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때부터 정당한 노력의 투입으로 얻어내는 진정한 발전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소를 대신해서 직접 소가 되어 밭을 가는 건 (쉽게 말해 노동시장인 2차산업)
당장의 몇몇 점토판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끌어다 쓴 모든 약속을 이행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IT업종 대하는 사회분위기는 냉랭합니다.
점토판을 더 비싼 점토판을 찍어내서 막는 사람들이 더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일본과 같은 버블경제 붕괴사태가 오진 않을지 걱정됩니다.
음,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화폐가 물질이 된 이야기와
비물질을 물질 속으로 매몰시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경제걱정으로 마무리를 했네요. 그냥 읽을거리로 즐기셨길 바랍니다 :)
P.S.
정당한 노력의 산물에 비해 결과물이 넘쳐날 때 생기는 현상 중 하나는
결과물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이 세계에 A라는 물질을 생성시키는데 10의 노력이 필요한데,
누군가 0의 노력을 들여서 A라는 물질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세계의 규칙에 따르면 20의 노력이 있어야 2개의 A가 생성됩니다.
(그 노력이 정신노동인지 육체노동인지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에 10의 노력이 있고 2개의 A가 생겨나기 때문에
각각 A가 가지는 노력의 가치는 5로 떨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실제 이 세계에 A를 생성하기 위해 정당한 노력을 투입한 사람들이
미래를 땡겨와 A를 남발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를 당합니다.
그게 물가는 오르는데 내 월급은 안 오른다는 현상으로 나타나죠.
혹시 학자금 등의 사정 때문에 빚을 지는 분들이
제가 위에 쓴 '빚의 남발' 부분에 대해 오해하실까봐 추가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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