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인 고(故) 권정생 선생은 '몽실언니' '강아지 똥' 등의 베스트셀러 동화로 유명하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46년 귀국했고, 이듬해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정착했다. 1968년엔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를 하며 혼자 살았다. 이후 교회 뒤에 오두막을 지어 살았다. 1969년 단편 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해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66년 신장 결핵 진단을 받고 오른쪽 신장을 적출하는 등 오랜 투병을 하면서도 어린이와 자연,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1973년엔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됐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권 선생은 2007년 5월 16일 대구 가톨릭병원 신장내과를 찾아 방광 조영 촬영술을 받았다. 하지만 정기 검사 도중 혈뇨가 발생했고, 응급실로 이송된 다음 날인 5월 17일 숨졌다. 폐결핵 합병증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권 선생의 목숨을 앗아갔던 진짜 원인은 조카 권현웅(48)씨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제약 회사에 다녔던 그는 2015년 5월 삼촌이 다니던 병원 진료 기록에서 패혈증 증상이 있음을 확인했다. 현웅씨의 아버지이자 권 선생의 동생인 권정(76)씨는 병원 측을 상대로 의료 과실에 대한 민사 소송을 제기해 2년간 법정 싸움을 벌였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지법 민사부(재판장 이윤호)는 지난 7월 14일 1심에서 "병원이 예방적 차원에서 항생제 투여를 하지 않았고, 감염이나 패혈증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 의무도 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병원 측은 권 선생의 가족 6명에게 1인당 500만원씩 총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병원 측은 권 선생의 유족 6명 중 동생인 권정씨에게만 500만원을 지급했다. 의료 사고의 공소시효 10년이 넘어섰다는 게 이유였다.
조카 권현웅씨는 18일 "법적 책임을 떠나 영원히 묻힐 뻔한 삼촌의 죽음이 밝혀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