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들에게는 충격적이겠지만, 신학교는 설교에 써먹을 지식이 아니라 역사 비평가들이 수세기의 연구 끝에 밝혀내고 입증한 결과를 가르친다. 예컨대 성경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대다수 모순은 어떤 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모세가 구약성서의 첫 다섯 권을 쓴 것이 아니다. 복음서의 저자는 마태와 마가, 누가와 요한이 아니다. 한때는 정전으로 여겨졌지만 현재의 성경에 포함되지 못한 책들도 있다. 예컨대 예수를 따르던 베드로와 도마 및 막달라 마리아가 썼다고 추정되는 다른 복음서들이 있다. 출애굽 사건은 구약에 쓰인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약속의 땅을 정복한 이야기는 전설을 근거로 쓰였다고 추정된다. 복음서들은 많은 점에서 모순되며, 비역사적인 이야기까지 끼어 있다. 모세가 실제 인물인지, 또 예수가 정확히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증명하기가 어렵다.
구약성서에 언급된 이야기들은 믿기 어려운 허구로 가득하며,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는 바울과 삶과 가르침에 대해 역사적으로 믿기 어려운 자료들이 가득하다. 신약성서에 포함된 많은 책이 익명으로 쓰였다. 사도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훗날 사도를 빙자한 사람들이 쓴 것이란 뜻이다. 이런 의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런 새로운 관점을 첫날부터 받아들이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학생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성스러운 책에 어떤 오류도 인정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을 단단히 지키며 만만치않게 저항한다. 그러나 증거들이 하나씩 제시되면서, 성경에는 어떤 오류도 없고 성경 속의 이야기들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또 성경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모순을 해소하려면 온갖 추측과 상상을 동원한 기발한 해석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것은 당연하다.
내가 성경을 복음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한참이 지난 후, 다른 이유로 나는 기독교를 떠났다. 믿는 사람을 포함한 대다수 사람이 이 땅에서 견뎌야 하는 힘겨운 삶을 고려할 때, 사랑이 넘치고 선하다는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는 방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독교를 완전히 버리기 건, 성경이 어떤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쓰였다는 성경의 원전이 남아 있지 않고 원전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모르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자, 성경이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책이라는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 그때부터 나는 성경을 역사비평적 관점에서 연구했고, 그 결과 이 책에서 살펴본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성경에 포함된 책들 사이에 명백한 모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종교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열심히 연구하면 설명되는 모순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 설명해도 해결되지 않는 모순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예수가 사망하는 날이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다른 것.
이런 차이는 세세한 부분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때로 저자들은 중요한 쟁점을 완전히 다른 식으로 이해했다. 예컨대 예수는 십자가에서 의혹과 절망에 싸여 죽었을까(마가), 아니면 침착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했을까(누가). 예수의 죽음은 죄에 대한 속죄였을까(마가, 바울), 그렇지 않을까(누가), 예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표적을 행했을까(요한), 아니면 그런 이유에서 표적을 행하는 걸 거부했을까(마태). 예수의 추종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할까(마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까(바울).
게다가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 중 다수가 저자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쓴 것도 아니고(마태, 요한), 저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쓴 것(베드로후서, 디모데전서)도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 대부분은 사도들이 모두 죽은 후에 쓰였다.
복음서들은 대체로 예수와 관련해 공정하고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복음이 쓰이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구전되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실제로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기가 힘들다. 복음서에 그려진 예수는 실제 예수의 모습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훗날의 해석에 불과하다.
초대 교회는 기독교 경전만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예수가 죽은 후에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를 벗어나 새로운 종교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신학적 견해가 있었고,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견해도 있었다. 그런 견해 중 일부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가 되기도 했다. 고통받는 메시아, 그리스도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성경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책이라 생각하게 되면서, 나는 기독교도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종교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는 하늘에서 떨어진 종교가 아니다.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추종자들이 이 땅에서 수백 년의 노력 끝에 탄생시킨 종교다.
기독교가 인간의 창작물인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하나님과 예수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구원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내가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는 더 이상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그런 개념도 어떤 의미에서 신화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나 악마가 제멋대로 하는 곳, 요컨대 지상에서 30년간 범한 죗값으로 불쌍한 영혼들이 30조년 동안 고통받아야 하는 곳은 없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결코 죽지 않는 나치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성경에 들어간 기독교 신화들이 언젠가부터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고, 와닿지도 않으며, 세상을 읽는 방향을 제시해 주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폭력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기독교의 핵심적인 믿음이 어떤 식으로 봐도, 즉 신화적인 관점에서 봐도 내게 '참'으로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경에 적힌 '예수가 재림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우리 위에, 하늘 위에, 구름 위에 하나님이 사는 공간이 있다는 생각, 또 예수가 그곳에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지낸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가 육신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갔고, 육신으로 다시 이 땅에 내려올 거라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구름 위에 하나님과 예수가 사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구름 위에는 대기권이 있고, 그 위로는 우주가 있으며, 그 위로는 수십 억 개의 별이 있다. 우리가 속한 은하계는 그런 모습이다.
출처: 예수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https://www.fmkorea.com/1134723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