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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н-71
NATO 코드명 : Madcap
수평선을 넘어서 보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시대에 모든 지휘관에 욕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투에 처음으로 사용된 항공기에 목적은 정찰이었다는 점은 딱히 놀라는 부분도 없어 보입니다. 전투기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우리 영토에서 적 항공기가 갑작스럽게 출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런 일을 막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을 충족시켜준 진짜 혁명은 1930년대 후반에 등장한 지상 레이더였습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항공 레이더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공중에 뜨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굴곡과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레이더는 지상 위 즉 하늘에 있을 경우 상당한 장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은 미국에서 첫 공중조기경보기(AEW, ДРЛО)가 만들어기 전부터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자 마다, B-17 (플라잉 포트리스)에다가 AN/APS-20 레이더를 장착하여 PB-1W로 TBF 어벤져에 APS-20 레이더를 장착해 TBM-3W 공중조기경보기로 채택하였습니다.
PB-1W의 모습.
E-3A의 모습.
70년대 말까지 서방세계는 다음과 같은 여러 세대의 공중조기경보기를 운용했습니다. 미 공군과 NATO는 E-3A(센트리)를 운용했고, 미 해군은 E-2C(호크아이)을 사용했고, 이스라엘은 E-2를 공군용으로 채택했습니다. 1982년 아랍에서 일어난 레바논 침공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은 E-2C 적절한 활용으로 전장에서 큰 이득을 봤지만 당시 소련은 오직 전략적 목적으로 Tu-126(Tu-114를 바탕으로 만든 공중조기경보기)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기체에서 얻는 정보는 명령을 내리기 위한 전략적 목적으로만 활용될 뿐 실제 전장에서 싸우는 전술기에는 직접적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E-2C의 모습.
1982년 소련 정부는 국방부 장관, 항공 산업부 장관, 라디오 및 전자 공업부 장관그리고 통신장비 산업계의 제안에 따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연구를 수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연구에 전체 부분은 키예프 기계 공장(КМЗ - 현 안토노프, Антонов)에서 맡기로 하였고, 전자 시스템 부분은 모스크바에 있는 베가(Вега)무선 공학 그룹에서 맡기로 정해졌습니다. 이 새로운 항공기의 요구조건은 매우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시간은 적었습니다. 소련 정부는 최소한 E-2C에 비해서 열등하지 않을 것을 요구 하였고, 이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통해서, 소련의 전투기와 공격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희망했습니다.
구체적인 요구스펙이 1982~ 1983년에 소련 공군과 방공군이 주도하면서 관련 연구 기관과 산업계의 요구가 포함되어 정해졌습니다.
비행지속시간 - 4.5 ~ 5시간
저고도에서 비행중인 스텔스 비행체를 장거리에서도 탐지 가능해야 함.
적어도 120개의 목표를 동시 추적.
돌아오는 레이더 전파를 광대역으로 탐지 가능해야 하고, 이 정보를 오퍼레이터에게 표시해야 함.
아군 공군기가 수행 중인 적 항공기 요격 작전를 데이터 공유를 통해서 도움을 주면서, 유기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해야 함.
정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지상의 사령부, 공군, 방공군, 해군에게 정보 전달이 가능해야 함.
그 어떠한 불리한 기상조건이나 낮밤 구분 없이 그리고 섭씨 +- 50도 환경에서 운용이 가능해야함.
장기간동안 운용 및 지원이 가능해야 함.
이 사항은 AN-71의 개발 목표이자, 후에 AN-71의 운용 개념의 컨셉으로써 지정되었습니다. 이 사항을 통해서 기체의 설계, 구조나 탑재하는 장비의 수준, 제조 및 양산, 그리고 전술에 대한 필요 기술 수준을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1982년 4분기 필요한 전자공학기술을 고려한 2가지 안을 전술 및 기술 요구사항(ТТЗ)에 맞춰 기본 형상과 기술 수준이 제안되었습니다. 첫 번째 안은 유선형 동체 위에 데시미터 파장 범위에서 작동하는 레이더가 달려 있는 안. 두 번째 안은 센티미터 파장 범위에서 작동하는 레이더를 동체의 앞부분과 꼬리에 달려 있는 안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이돔을 달 AN-32, AN-12, AN-72등을 포함하여 여러 기체를 베이스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들 기체에 대해서 기체 및 설비에 대한 공력평가를 진행하면서, 전술 및 기술 요구 사항(ТТТ)에 현실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였습니다. 그 후 두 가지 안에 대해서 공력학적인 연구 분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동체와 날개 그리고 꼬리 표면의 간섭 그리고 제어와 안정성, 공력학적 효율 그리고 여러 기타 사항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따라 안테나 레이돔(AO, АО)이 어디에 설치할지를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1983년 3월 공군과 방공군에서 검토에 돌입하였고, 여러 진행된 데이터를 기초하여 레이돔 위치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전술 및 기술 요구사항에 맞춰 여러 안 중에서 AN-72를 기반으로 AN-71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 AN-71은 제안 단계에서 예비 설계 같은 단계를 넘기고 바로 상세 설계 단계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AN-72의 모습.
AN-71을 기본으로 하는 기체의 공력학적설계는 최우선적으로 레이더에 음영부분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레이돔 모양은 2 가지 안이 계속 검토되었는데, 막대형 모양 혹은 꼬리 날개에 넣는 모양이었습니다. 후에 후방 동체와 미부는 재설계되었지만, 실기체의 포괄적인 모습은 후자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레이돔이 설치됨에 따라, 수직 꼬리 날개가 무게 및 레이더 운용의 부정적인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수직 꼬리 날개를 앞으로 각을 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평 꼬리 날개가 동체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엔진에서 배출되는 가스로 인한 높은 진동 부하를 겪게 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500mm 길이에 수직 꼬리 날개를 레이돔을 향하게 위쪽으로 구부리게 하면서 동체 후반부에 가해지는 부하를 감소시켰습니다. 이러면서 AN-72 하고 응고(Pitch) 계수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항공기 엔진은 원래 AN-72 장착된 엔진(Д-36)에 비하면 더 강한 D-436K(Д-436К)엔진을 사용할 예정 이였습니다. 하지만 무게 증가때문에 규정에 따라 이착륙 성능 미흡 (하나의 엔진으로는 이륙 불가)으로 인해서 추가적으로 RD-36A 엔진을 장착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보기 드문 여러 문제점이 새롭게 지적됬습니다.
- 횡축 방향과 종축 방향의 안정성 및 제어 성능 부족.
- 유지보수 및 관리가 힘들어짐.
- 배기가스가 추가적으로 수평 꼬리 날개로 유입.
AN-71 설계도를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서 올레그 콘스탄티노비치 안토노프에게 보여줬을 때 그는 조심스럽게 "음 특이하구만.. 더 무엇이 필요한가?.."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AN-71 첫 프로토타입에 비행. (소련 등록 번호 : СССР-780151)
83년 1분기, 그동안 제안 사항과 전술 및 기술 기본 요구사항을 고려하여 상세 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향후 일정에 대한 계획 역시 세워졌습니다. 1984년 3분기까지 상세 설계를 마치고, 1984년 1~3 분기 동안,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후 1984년 1~ 4분기에 최종조립을 마칠 예정이었습니다. 1985년 1 ~ 2분기 내에 최종 조립된 항공기에 시스템을 설치 후, 항공 실험을 진행하기로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소련은 이미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984년 9월 1일, AN-71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생산 결정을 승인하였습니다. 그보다 앞서 1982년 1월 10일 키예프 기계 제작 공장(КМЗ)은 기체에 관해서 주임 기사로 А.И.Науменко를 임명하였습니다. 그 후 전자장비 부문은 С.П.Федин, 기체 제작에 대해서는 Ю.И.Хоролец, 항공 실험 부분은 С.А.Филь, 레이더 시스템에 대한 냉각 시스템 부문은 Э.А.Шоломицкий가 맡기로 하였습니다. 키예프 기계 제작 공장의 항공 실험 및 개발 기지(ЛИиДБ КМЗ)에서는 항공 실험 도중 유지 보수 임무를 И.И.Радауцану, А.Ю.Доленко 그리고 A.M.Загуменному 이 세 엔지니어에게 맡겼습니다. 전체적인 항공 실험 관리 및 복잡한 개념적 문제 해결은 П.В.Балабуев가 맡았습니다.
AN-72의 첫번째 사전 제작기체이자 4번째 프로토타입(나토 코드명 Coaler-A)으로 1979년 6월 파리 에어쇼에서 모습. 당시 소련 기체 등록번호 СССР-83966. (1977년 8월 31일 처녀 비행당시에는 СССР-19774를 부여받고 있었습니다. 에어쇼 이후로는 СССР-72004라는 번호로 대체됬고, 1985년 첫 AN-71 프로토타입으로 개조됩니다.
2대의 프로토타입이 동시에 제작되었고, 2대 모두 항공 실험을 진행하면서, 1대는 추가적으로 성능 실험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첫번째 AN-71 프로토타입(1985년 2분기까지 완성하도록 계획이 세워짐.)은 4번째 AN-72 프로토타입을 개조해서 완성하였습니다. 다만 상당한 개조로 인한 불안정으로 몇 차례 비상착륙을 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 후로 이 프로토타입으로 과도한 실험은 중단되었습니다. 이 프로토타입에 노즈콘에 샘플 레이더를 장착하자 AN-72에 비해서 노즈콘 크기가 엄청 커지면서 마치 '펠리컨 부리' 처럼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추가적으로 동체가 짧다는 것이 지적되어, 날개 사이에 14 ~ 15개의 프레임을 추가로 넣어 990mm 정도 동체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2번째 프로토타입은 (성능 실험 시작하기 위해서 1985년 4월 이내의 완성 해야 했음.) 첫 번째 AN-71 프로토타입을 기본으로 제작하였습니다. 1985년 5월 초, 2번째 프로토타입은 모든 장비를 탑재하였고, 그 후 모든 실험 스케줄을 마쳤습니다. 3번째 프로토타입은 (1985년 4분기까지 제작 됬어야 햇음.) 지금까지 AN-72을 바탕으로 실험한 내용을 통해 수정해야 할 점을 반영하여, 하르키프 항공기 공장에서 제작되었습니다.
모든 기체 제작과 실험은 일정에 따라가면서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자 장비 개발도 같은 일정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AN-71를 위해서 각각 다른 3가지 타입에 샘풀 전자 장비가 제작되었고, 전부 다 세부 스펙이 달랐습니다. 첫번째 샘플을 제작했을 당시에는 첫번째 혹은 세번째 프로토타입 중 어느 동체에 레이돔을 설치할 것인가를 두고 약간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샘풀은 첫번째 AN-71가 첫번째 비행 실험을 마치자마자 설치되었습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얻어진 실험 데이터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으로 성능 향상을 위한 레이더 부품과 컴퓨터에 교체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전자 장비 설계의 즉각적인 변화가 이루어졌고, 3번째 프로토타입에 설치된 레이더는 이전에 설치된 레이더의 '2세대'로서 동체의 세 부분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공군과 방공군의 요구 사항이 높아져 갔고, 개발진은 오퍼레이터에 자동화 수준을 높여 조기경보통제기와 항공기 사이에 상호작용 수준을 높여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임무 요구 사항이 많아지자, 3번째 AN-71 프로토타입 항공 실험이 쉬는 기간 동안, 세번째 샘풀 전자 장비가 탄생하였습니다.
AN-71 3번째 프로토타입. (소련 등록 번호 : СССР-780361)
항공기 운영 시스템은 30회 이상 지속해서 실험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항공기 전자장비를 위한 수랭 시스템은 훌륭히 작동하였습니다. 승무원들을 위한 보호조치도 몇가지 갖춰졌는데 캐노피에 보호 코팅을 하였고, 케이블이나 파이프 등 전자기파가 많이 나오는 부분에 격벽을 설치하여 차단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이후에 전자기파을 측정했을 때 효과적으로 차단이 이루워졌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레이더는 키예프 기계 제작 공장과 베가 무선 공학 그룹 공동으로 제작하여 레이돔에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도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좀 더 얇은 구조이면서 높은 부하를 버틸 수 있도록 개량하는 과정울 거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액추에이터와 베어링 및 회전부에 대해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실험은 모델을 통해서 진행되었고, A1 모델은 정격 부하에 최대 300%, A2 모델은 230% 까지 버티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이후로는 기체 시스템이 전자기파 적합도(EMC, ЭМС, электромагнитной совместимости)에 적합하도록 보장하는 데에 노력하였습니다.
비행중인 AN-71
전자 환경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서 자동화된 항공기 데이터 수집 시스템(СБИ)이 설치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총 2대의 프로토타입에 설치되었습니다. 자동화된 이 시스템은 높은 측정 정확도를 보장하면서 실시간으로 값을 전송하여 조사하는 시간이 훨씬 짧아지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СБИ은 2대의 프로토타입에 설치되어 1985년 부터 1990년까지 성공적으로 작동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키예프 기계 제작 공장(КМЗ)은 탐색 모드와 수색 그리고 통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본적인 조기경보와 관제 시스템을 테스트할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1982년에서 1983년에서 설계국 실무자들은 현재의 지상 배치용으로 설계된 AN-71 조기경보기 설계를 기본으로 재디자인해 장기적으로 항공모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기경보기로 사용될 수 있도록 결정하였습니다.
1983년 4분기에서 1984년 3분기까지, 항공모함에서도 완전한 작전수행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제품 요구조건 문서(PRD)를 새롭게 작성하였고 이를 전술 및 기술 요구 사항(TTT)에 모두 반영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래 지상 배치용으로 제작된 조기경보기다 보니, 소련에서 새롭게 배치되는 항공모함이 캐터필트를 가지고 있어야 추력 요구조건을 맞출 수 있었고 만약에 스키점프대 형식의 항공모함이라면 엔진 추력이 부족해 새로운 엔진으로 교체(혹은 현재 가지고 있는 엔진 3개를 모두 과출력 상태로 개조[한마디로 오버클럭]하여야 했습니다.)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소련 공군과 방공군에 이재는 해군까지 끼어버린 소련군의 요구사항은 새로운 목적에 맞게 새롭게 리뉴얼됬습니다.
1. 항공모함 이착륙이 가능해야한점을 고려하여, 항공기 질량에 변화가 필요하며 지금까지 지상 조건을 고려하여 이루워진 풍동 및 역학 벤치 연구를 해상 조건에 맞춰서 변경이 필요하며 이때 기존에 지상용 기체를 해군용으로 변경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음.
2. 이제 개발 다음단계부터는 소련의 차세대 항공모함 개발의 맞춰서 개발 작업을 진행할것.
후에도 소련은 항공모함용 조기경보기를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회사에서 맡았습니다...
1985년 6월 중순, 첫번째 AN-71에 항공기 시스템과 조기경보시스템 장착이 거의 완료되자 이 첫 기체는 소련 항공기 등록 번호 СССР-780151를 수여받았습니다. 6월 23일 오전 현지시각 11시 30분 모든 작업이 완료되어 조립 공장에서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첫 공개를 하였습니다.
이틀 후, 25일 급유작업이 시작되고 최종 보정작업이 이루워졌습니다. 7월 3일, 키예프 기계 제작 공장의 항공 실험 및 개발 기지 (ЛИиДБ КМЗ)로 항공기가 이동됨과 동시에 비행 테스트가 허가되었고 또 이틀 후, 7월 5일에 활주로 고속주행이 이루워졌고 같은날 첫 비행에 참여할 승무원들이 정해지고 첫 비행 준비를 시작합니다.
7월 11일, 설계국, 군 관계자, 개발 기지 책임자들은 비행 실험을 다음날 진행하도록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1985년 7월 12일 현지시각 오후 2시 30분 А.В.Ткаченко(기장), С.А.Горбик (부기장), В.А.Петренко (비행 엔지니어), И.И.Радауцан (실험 장비 엔지니어)를 탑승시키고 활주로에서 이륙에 성공하였습니다.
첫 비행은 지난 2년간의 노력을 보여주듯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1985년이 끝나기전까지 총 75번, 117시간 비행을 수행하였습니다. 그중 50번은 프로그램 총 책임자 지시하에 이루워졌고, 25번은 미세 조정 및 연구를 위해서 진행되었습니다. 1986년 6월부터 조기경보장비나 전자장비에 대한 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1985년에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중앙의원회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방문하였고 이는 우크라이나 무선전신국(РАТАУ) 소속 사진기사 렌즈에 AN-71 동체와 тарелкой 레이더와 함께 잡혔습니다.
1986년 2월 19일, AN-71 세번째 기체가 완성되었고, СССР-780361 등록번호를 받고 2월 28일 В.Г.Лысенко (기장), А.В.Ткаченко (부기장), Ю.А.Дмитриев (비행 엔지니어), М.Н.Березюка (실험 장비 엔지니어)를 태운채 첫 비행을 하였습니다.
테스트 비행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 총 책임자는 이후부터 비행 실험 첫 단계(ЛКИ)를 1990년 AN-71 프로그램이 종료될때까지 진행하였습니다. 그 기간동안 첫번째 기체는 총 387번 비행동안 650시간 비행을 하였고 3번째 기체는 362번 비행동안 380시간 비행을 하였습니다. 승무원 구성을 계속 변해왔으나 С.В.Максимов 파일럿이 가장 많은 비행을 하면서 비행 실험을 주도하였습니다.
비행 실험중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을 테스트하였습니다.
- 비행중에서 버틸수 있는 최대 내력.
- 제어 시스템 고장 상황 시뮬레이션.
- 충분한 안정성을 가지고 및 제어 가능한 운용 속도 범위, 무게 중심 허용범위, 받음각, 슬립. (항공기의 주목적인 AWACS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도 포함)
- 항공기 보조 가스터빈 및 부스터 엔진 시스템 테스트.
- 요구 스펙에 맞춰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 도플러 항법 시스템(ДИСС)과 장거리 항법 시스템(СДН)(후에 도플러 항법시스템에 대한 보호막이 추가되고, 안테나 LRRS로 이동.)가 전자기장에 끼치는 영향이 요구 스펙이하인지 테스트.
- 기체 내부, 외부 전자기파 적합도(EMC) 측정.
- 동체와 레이더에 모든 상황에서도 냉각이 잘되는지 테스트.
- 항공기 구조와 시스템의 무선 무결성 및 승무원 방호성능 테스트.
- 지상 및 하늘에서 전자전상황하에 시스템 동작 여부.
- 레이더 성능 테스트
테스트중에서 항공기 항법시스템은 완전 자동으로도 지정된 경로를 패트롤, 플릿 턴, 자동 랜딩 및 지역 통과등 모든 비행 모드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게 입중되어 이륙만 제외하면 모든 과정을 완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테스트중에 문제점이 일부 발견되어 이에 대한 수정 작업역시 진행되었습니다.
- 루더 트림(Trim)에 효율이 생각보다 낮음. (후에 뒷쪽 가장자리 트리머를 30mm로 두껍게 수정.)
- 항공기 종방향 안정성이 생각보다 낮음
- 제어부의 전기적 불안정성 (크로스토크 발견)
첫 AN-71는 후방 동체의 페어링부에 스핀 회복용 낙하산 (anti-spin parachutes)시스템(ПШПС)을 장착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1988년 4월에 행해진 높은 받음각 상태에서 비행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비행중에서 최대 받음각으로 비행중에 스핀이 일어났을때 안정적인 안정성과 제어성능을 보여주면서 성능을 확인했습니다.
AN-71 레이돔에 설치되어 있는 정찰 레이더는 고주파 때문에 수백미터내에서는 보호복 없이는 건강에 매우 해로웠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지상에서 레이더를 키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모든 인원들은 주기되어 있는 AN-71 수백미터내의 접근 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주의를 하면서 접근하였습니다. 덕분에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엔지니어 Сергей Филь와 Николай Бережной가 사람들을 놀래키기 위해서 보호복을 입은채 문을 열고 내려오자, AN-71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기술자가 수십초 만에 전부 도주한적이 있었습니다. 빈 주기장을 보면서 보호복을 입은 이 엔지니어 친구들은 확실히 빅잼을 느겼지만 재빠른 반응에 자신들도 놀랐고 기술자들한테 실수로 입고왔다면서 레이더가 꺼져있음을 보여줄때까지 기술자들은 주변에서 모든 작업을 거부했습니다.
* 글 작성시 참고한 참고자료
- Авиация и Время. Александр Науменко. Заглянуть за горизонт
- Авиация и Космонавтика. Евгений Климович. Михаил Никольский. Развитие и применение самолетов дальнего радиолокационного обнаружения и управления
- Николай Якубович. Все самолеты О.К.Антонова
- Роман Астахов. Русская Сила. Самолет РЛДН Ан-71
- ХГАПП. Харьковский авиационный завод: История, современность, перспектив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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