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 30분, 공군 교육사령부 전술학 교관실에는 꽃다운 22살의 여성이 나타난다. 인생의 황금기라 불릴 수 있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안혜지(22, 하사).
아버지께서 군인이어서 어릴 때부터 보던 것이 군인의 생활이었고, 그녀는 그 영향으로 인해 고등학생 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한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하려고 했었어요"라고 수줍게 웃는 그녀.
입대를 하기 전에 일단 대학생활을 경험해보고자 했던 그녀는 체육학 전공으로 입학을 했고, 1학년을 마치자마자 공군 부사관 후보생으로 입대를 하게 된다. 장교의 길은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장교로 입대하려면 대학교를 졸업해야 되잖아요. 전 하루 빨리 군대에 가고 싶었어요."고 대답했다.
군대를 가겠다고 하자 친구들과 선배들은 "니가 군대를 왜 가?", "군대가서 어떡하려고?", "할 수 있겠냐?"며 다들 반대를 했다. 요즘에는 여군도 같이 입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그런 친구도 없었고, 혼자 입대했다.
아버지의 성함은 안중근, 동생의 이름은 안창호. 아마 그녀의 가족은 뼛속깊이 군인 가족이지 싶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이 말이 가훈이지 않을까?
*p.s 여담으로 그녀의 언니는 슈퍼모델이라고 한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외모더라니.
2009년 4월에 임관해서 이제 1년 4개월이 지나고 조교생활은 약 5개월 정도 남았는데 그녀는 딱히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었다고 했다.
"그냥 훈련일지에 이쁘신 조교님이 알려주셔서 학과 내용이 귀에 잘 들어왔다. 이 정도?"
음.. 그 정도론 약하다. 그래서 20분 정도 후에 다시 물어봤다.
"학과를 하고 있는데 제가 없는 줄 알고 훈련병이 제 동작을 따라하는 거에요. 그런데 사이드스텝(Side step)을 밟으면서 춤을 추더라구요. 그래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갔어요. 그리고 제가 학과를 하다보면 함성소리나 '좌우로 정렬'할 때 도도하게 '쫘우로 정렬~' 한다고 하더라구요."
여성이다 보니 아무래도 군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을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안혜지 하사가 공군 여군중에서 최초의 전술학 조교라고 하는데 조교가 처음이라서 부담도 많이 되고, 주위에선 여자인데 할 수 있겠냐고 많이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했다고 한다. "심적으로 많이 부족해도, 연습을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요즘에도 틈틈이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을 기른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보다 총에 익숙해졌어요. 아직 무겁긴 무겁지만요^^"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의 손은 까맣게 되어 있었다. 연습할 때마다 멍도 많이 든다고 한다. 각개전투 학과에서 포복을 할 때도 상처가 많이 난다고 하는데 다 영광의 상처라고 여긴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임관했을 때는 부사관 선배 중에 기대를 많이 걸었던 분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안혜지 하사를 더욱 혹독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역대 하사 고참들은 전혀 안 했던 기지방어 숙제도 내주시고, 각개전투 할 때도 "엄폐가 뭔데? 차폐가 뭔데?"하며 막 몰아붙이셨죠. 총검술 할 때가 대박이었어요. '돌려 쳐'같은 동작을 구분 동작으로 하면서 각 동작마다 설명을 해야하는데 그걸 5번이나 했으니... 수업 끝나고는 오기도 생겼지만 부담감도 생겨서 힘들었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이 때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물론 항상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훈련병이 편지를 썼는데, 안혜지 하사에게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 연무형 17개 동작 시범을 보고서 자긴 못하는 것을 여군이 그렇게 멋있게 하는 것을 보면서 의지가 불타올랐다고 한다. "남군뿐만 아니라, 여군 후보생들도 제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안혜지 하사의 사무실 선임 나영민 상사를 만나보았다. "평소 안혜지 하사는 남군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하면서 학과를 위한 연습도 열심히 하고 밖에서 봤을 때 제대로 할 수 있을가 했던 걱정들이 전혀 없을 만큼 잘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자랑스러운 후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무실에서도 굳건한 신임을 받고 있는 안혜지 하사, 이제 곧 조교 생활을 마치게 되는데 후임을 뽑아야 된다고 해서 그 심정을 물어보았다.
"솔직히 조교 생활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안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긴 하지만, 교육생의 입장에서 보면 한 명쯤은 전술학 조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본인에게는 힘들지도?"
최근 여성 ROTC도 생기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여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군대선배로써 안혜지 하사는 어떤 말을 해줄까?
"힘든거 감수하고, 본인이 군인으로써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라면 추천해주고 싶어요. 남군들이 볼 때, 여군이라서 못 한다, 군인 안 같다, 여자라고 티내고 싶냐 이런 말은 듣기 싫잖아요? 여성도 잘 하면 남성만큼 할 수 있고 여성으로서 남성과는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여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신체 구조도 다르고, 쓰여지는 근육도 다른데 남자랑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되겠죠. 이런 생각은 금물이에요."
인터뷰를 하면서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던 안혜지 하사.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해야겠다 싶었다. 군인으로써 앞으로 군 생활의 포부를 물어보았다.
"장기복무를 할 수 있는 직업군인이 돼서 인정받는 공군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군대에 있으면서 여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많은 여군 후배들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전 특별한 경험을 좋아해요. 군에 들어온 것도, 조교를 하는 것도, 여군이라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제가 잘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이런 영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 '대한민국 1%'에도 나오는 것처럼,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영화를 보면서 상황에 대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거든요. 비록 상황은 달라도 저랑 추구하는 것이 비슷했어요. 그런 것이 굉장히 와닿았죠. 여자가 못하면 더 많이 깎이고, 튀고, 소수라고 묶어버려서 '여군 안 돼!' 이런 것이 싫어요. 또 이런 부담감도 많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군 생활이 저에 대한 도전,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식을 바꿔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군은 안 된다고 했던 것을 '내가 해보면 되잖아?'라고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조용하게 살기보다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그녀 스스로에 대한 도전과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 인터뷰를 하면서도, 글을 쓰는 지금에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이 나라의 챔피언이라고!
글·사진 : 중위 손청진
출처 : http://afplay.tistory.com/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