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 일기>
이정희 의원, 야유보낸 불한당 웃옷 단추 꼬매주다
“어이 다이어트 하러 왔냐?” vs. “웃 저고리 주세요”
신석진_ 이정희 의원 보좌관
단식 3일째였던가? 개량한복을 멀쑥하게 입은 한 40대 남자가 단식농성중인 이정희 의원앞에 서서 “어이~다이어트하러 왔냐? 살 빠져야 봐줄만 하겠네” 하며 야유를 보냈다.
‘겸손과 친절’이 생명인 우리로서는 무려 20분 가까운 모욕적인 언사와 야유에도 조용히 타일러 보내야했다. 이후에도 하루 3차례 이상 찾아와 폭력에 가까운 언행으로 단식에 지친 이정희 의원과 보좌진들을 힘들게 했다.
단 식 5일째 접어들어 이정희 의원은 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했다. 얼굴색도 변하고 입술도 말라갔다. 거리의 풍찬노숙을 겸한 단식농성은 국회 본청 앞 단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힘들었다. 찾아오는 수백명의 손님을 일일이 손잡아주며 대화해주고 인사하는 일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날 그가 또 찾아왔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손에는 명심보감을 들었으며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썬그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의 복잡한 정신세계의 단면을 드러낸 듯한 차림새였다.
“여기가 니네 땅이냐? 국회의원이 모범을 보여야지” 하며 앞뒤 안 맞는 이야기들을 몇 차례 건네도 이쪽에서 반응이 없자 옆에 있는 권영길의원 앞에 서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보좌관이 그를 점잖게 밀쳐냈다.
그 러자 갑자기 사나운 얼굴로 변하면서 “이거 안놔? 어? 어? 이놈들 봐라 사람 치네” 하며 소동을 벌였다. 내가 나섰다. 호통을 치며 농성장 밖 쪽으로 밀었다. 조용히 끝내려는 생각이었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그의 강한 저항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야 이새끼야 너 몇 살이야 새끼야 어 어 사람치네 쳐봐 새끼야 쳐봐”
전형적인 거리의 불한당이었다. 순식간에 추모분향소의 네티즌 자원봉사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밀쳐냈다. 그러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반공할아버지 부대가 일제히 고성을 지르며 “빨갱이들, 사람 치지 마, 왜 국회의원이 시민들 통행을 가로막냐” 등등 마구 내지르기 시작했다. 분향소와 농성장 사이에는 수십명이 서로 엉겨붙어 몸싸움과 폭언이 난무하는 소란이 일어났다.
한참후 소동이 일단락되고 썬그라스가 농성장에 또 나타나 폭언을 퍼부었다. 이번에는 이정희 의원이 응해줬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들어드리겠습니다”
뻥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가다듬던 썬그라스는 더듬더듬 자신의 요구를 제시했다.
“날 집단적으로 구타한 두놈의 사과와 자신의 떨어진 단추, 비싼 가방이니 가방끈 끊어진 것 변상하라” 나름 진지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정말로 우리가 썬그라스를 집단구타했다고 믿게 만들만큼 천연덕스러웠다.
이정희 의원이 웃 저고리를 달라고 했다. 꼬매주겠다는 것이다.
거 칠었던 썬그라스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졌다. 승냥이가 강아지로 변한 꼴이었다. 폭언 대신 웃 저고리를 내주었다. 굶주린 고통에도 이 의원의 손놀림은 빨랐다. 네티즌 자원봉사자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문의 영광인줄 알아라 이눔아” 썬그라스는 반박을 안했다. 다른 사람같았다.
이정희 의원은 누군가의 잘 짜여진 각본과 연출로는 형상화하기 힘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논리로 무장한 법조인, 혈기어린 투사의 모습, 총리에서 경찰서장까지 크게 과오를 꾸짖는 위엄, 노숙자든 찾아오는 누구든 한결같이 반가운 얼굴표정과 악수... 이런 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천품이다. 매일 새벽 108배... 성찰의 힘이다. 승냥이같던 불한당의 더러운 웃 저고리를 꿰메주려는 생각은 그가 곧 강아지처럼 온순해질 것을 기획한 것이 아니었을게다. 다만 이정희 의원의 어떤 행위가 있고 그것이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힘을 발휘해 강아지같이 온순하게 하는 마력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보좌관으로서 이정희 의원을 독자적으로 홍보할 계획은 추호도 없다. 내가 아니어도 수만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퍼나르고 있다. 나는 그저 그 상황을 의원에게 전해줄 뿐이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욱하는 성미에 농성장 앞 소란을 야기한 책임이 내게 있음을 고해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매일 거르지 않고 하는 새벽 108배의 성찰에 견주어서 이해해달라고 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09.06.14 농성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