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도 없는 송고실 배려했는데…”
‘기자실 개혁 원칙대로’…노대통령 발언 파문
신승근 기자 장철규 기자
취재 편의 지원을 ‘언론 특혜’로 간주
언론정책 비판에 ‘감정대응’ 논란 불러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비판적인 언론계와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작심한 듯했다. 참모들과 대책회의를 하느라 국무회의 후반부에 들어온 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언론의 취재시스템 개편 비판을 “진실을 회피하는 비양심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많은 선진국들은 (기사) 송고실도 두지 않는다. 한꺼번에 바뀌면 (기자들이) 너무 불편할까봐 브리핑실 외에 송고실까지 제공하려는 것인데, 언론이 계속 터무니 없는 특권을 주장한다면 정부도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우리 언론의 현실 여건을 고려해 나름대로 배려를 했는데도, 언론이 특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게 노 대통령 시각이다. 언론에 대한 취재 편의 제공을 일종의 ‘시혜’로 간주하는 듯한 인식이 묻어난다.
노 대통령 발언은 일단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특히 최근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이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개방형 브리핑제를 무력화하고, 국정홍보처 폐지까지 연결되는 것을 사전에 공세적으로 차단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이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서 개방형 브리핑 제도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힘들더라도 좋은 제도는 정착시켜 다음 정부에 넘겨줘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결정했다”고 말한 건 이런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런 시각은 개인적 판단에 근거한 언론개혁 소명의식이며, 언론정책을 감정적으로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올 수 있다. 청와대와 국정홍보처는 정책추진 근거로,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의 기자실 관행이 되살아나는 점과 기자들의 사무실 무단출입에 따른 업무 방해를 제기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폐해를 증명할 만한 자료를 내놓지는 않았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객관적 자료를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필요한 경우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공개하겠다”는 발언만 되풀이했다.
노 대통령이 기사송고실 공간을 언론에 제공하는 걸 마치 정부가 언론에 혜택을 주는 것인양 해석한 것은 너무 일방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이 학계와 언론계에선 강하다. 정부 역시 이런 체계를 통해 정책 홍보를 하는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등의 주요 부처들에 기사송고실이 설치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건, 노 대통령이 전세계 선진국들의 기자실 운영 실태를 제대로 보고받았는지 의구심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밝힌 대로, ‘원리원칙’에 따라 송고실까지 폐지하는 쪽으로 나간다면 청와대와 언론계·학계·정치권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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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백악관·주요부처, 기자실·송고실 갖춰
선진국엔 송고실 정말 없나
류재훈 기자
의회도 기자단 상주…철저한 정례 브리핑 외 현안설명 수시로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선진국엔 별도의 (기사) 송고실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홍보처가 지난 5월 발표한 선진국 취재지원 실태조사 결과만 봐도,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프랑스를 비롯한 상당수 선진국들이 기자실(기사 송고실)을 두고 있다. 정치권이 대통령제의 본보기로 삼는 미국은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기자실을 두고 있다. 정부가 도입할 예정인 전자브리핑 제도의 모델이 된 프랑스는 포르투갈, 체코, 스웨덴과 함께 기사송고실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상무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 행정부처들이 모두 기자실인 ‘프레스룸’과 ‘브리핑룸’을 운영하고 있다. 백악관은 인터넷 시대에 맞춰 프레스룸과 브리핑룸을 개선중이다. 현재 운영중인 25평 정도의 임시기자실에도 비좁긴 하지만 상주기자 100여명의 부스(기사 송고석)가 마련돼 있고, 방송사들을 위한 편집실을 따로 두고 있다. 이곳은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위해 머무르는 공간으로 통신망 등 송고시설이 갖춰져 있다.
국무부와 국방부(펜타곤)도 정례 브리핑이 이뤄지는 150여석의 브리핑룸 옆에 주요 통신·신문·방송사 상주기자들을 위한 부스(송고석)가 설치돼 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국방부 직원이나 군인들과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며 취재한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진급의 불이익 등에 대한 피해의식 없이 기자의 취재에 응할 수 있다.
의회의 상·하원에도 신문과 방송이 따로 상주 기자실과 브리핑실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주기자단위원회가 관리한다. 이곳 역시 송고 등 취재 편의를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미국이 브리핑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단순한 정부 홍보 차원의 브리핑이 아니다. 국무부의 경우, 차관보급인 대변인은 새벽에 출근해 주요 이슈들을 챙기고 그날 정례브리핑에서 예상되는 질문을 각 부서로 보내 답변을 받아 준비하는 등 철저하게 브리핑을 준비한다. 국무부는 올해부터 정례브리핑에 앞서 매일 대변인실에서 비공식적인 기자간담회를 열어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각 부처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장관 또는 고위 관리들의 기자회견과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수시로 연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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