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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8.26. 수요일
겨우 석 달 만에 <영결식의 결정적 장면들>이란 제하의 기사를 다시 한 번 더 쓰게 될 줄은 정녕 몰랐다.
눈에 밟혔던 몇 장면 짚고 가자.
시작부터 마음에 안 든다.
국장 영결식장에서 모두들 종이모자라니. 폭염 탓인 건 알겠다. 그래도 결례다. 잠실야구장이 아니다. 격식 없는 노제였다면 모르겠다. 정 그늘이 필요했다면 좌석 쪽에 대형 캐노피들을 설치했어야 했다.
진입로에만 잔뜩 설치한 캐노피
미리 생각 못했다면, 그럼 식 중 최소한 한 번은 참석자 전원에게 탈모하고 예를 갖추게 했어야 했다. 묵념할 때라도 말이다.
그나마 맨 앞줄 정치권 인사들은 알아서 탈모하긴 했다.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만 빼고. 뭐 한나라당으로부터 김대중에 대한 진심을 기대하는 자체가 넌센스긴 하다.
왼쪽부터. 박희태. 정세균. 이회창. 강기갑, 이규택(친박연대), 문국현, 노회찬
탈모는커녕 묵념도 않는 이들 있었다. 모두 고개 숙일 때, 전두환과 김영삼만 뻣뻣하다. 좋겠다. 니 똥 굵어서.
추모 영상도 아쉬웠다.
김대중을 어찌 재임시절만으로 온전히 말할 수 있나. 대통령 이전의 김대중을 생략하고 김대중을 추모한다는 거,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식이 진행될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빈자리도 너무 많다.
행안부 초청 문자만 유효했다. 유족들과 민주당 쪽에서 보낸 초청 문자와 신분증을 제시한 이들은 정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김대중은 민주당의 아버지다. 박정희 추모하면서 한나라당 초청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나. 게다가 김대중 영결식에 김대중 유족이 원하는 이들도 막다니. 말도 안 된다.
하긴 노무현 유족들이 원하던 김대중 추모사를 막던 자들이다.
해외조문단의 헌화의식도 참, 엉성했다.
종교의식만 28분부터 50분까지 하더니 해외 조문단에게는 도합 몇 십초를 주고 만다. 언제 절을 할지 몰라 서로 눈치 보며 누구는 한 번하고 누구는 두 번 하는 사이, 얼렁뚱땅 의식은 끝나 버렸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손님이라서, 거물급이어서, 먼 길 와서가 아니다. 그들과의 인연은 그 자체로 김대중의 역정과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요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은 박정희 시절 직접 구명운동을 했던 이고, 미국의 도널드 그레그는 전두환 시절 사형선고 받은 김대중을 구해냈던 사람이며, 올브라이트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기에 방북할 수 있었다 했던 인사다. 물론 그 거인은 김대중이었고.
그들이 영결식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의미를 짚었어야 했다.
5분이나 됐던 한승수의 입 발린 조사를 반토막 내서라도, 박정희 시절 CIA 한국담당으로 현해탄 수장 직전의 김대중을 구출한 도널드 그레그 정도에게는, 그렇게 36년간이나 인연을 맺어 왔던 그에겐 짧은 조사라도 바칠 기회를 줬어야 옳았다. 그는 2년 전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아시아에서 중요한 정치가는 3명밖에 없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 그리고 김대중. 그 중 권력 바깥에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김대중이 유일하다."
마지막 소년소녀 합창단 순서 때는 가관이었다.
자리를 빠져나가는 이들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그거 하나 제대로 통제 않을 거면서, 유족의 초대문자까지 들고 온 이들의 입장은 대체 왜 막은 건가.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문득 기가 막히다. 김대중의 영결식을,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의 후신들이 주관하다니.
이런 장면들이 끊임없이 불편했던 건 그래서였던 게다.
차라리 노무현 시절이었어야 했다...
이후 안장식도 중복된 의식에 전체적으로 엉성했다. 그럴 거, 유족이 원한대로 노제나 추모문화제로 시민들과 조금이라도 더 만나게 해줬어야 했다.
나쁜 놈들.
이명박.
지난 노무현 영결식에서 표정논란 그렇게 겪었으니 이번엔 참모들도 단단히 일러두었을 게다. 잠시도 방심 말고, 비장한 표정 사수하라고. 결과는. 그만하면 선방했다.
다만 그 특유의 혀날름 동작만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듯 하다. 아무래도 체온조절을 위한 게 아닌가 싶은데. 학계의 고견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기대한 돌발사태. 이번 헌화 때도 있긴 했다. 위선자라는 적절한, 고함이 있었다. 그러나 워낙 멀리서 외친 거라 별반 상황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재밌었던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보도한 MBC의 태도다.
KBS와 SBS야 당연히 이 건 보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전의 MBC라면 틀림없이 그 소리까지 시청자들에게 따로 들려주고 소란의 내용을 보도했을 게다. 그런데 미디어법 통과 되고 방문진 이사 교체 후엔 그들도 조심스럽다. 소란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별 차질 없이 식이 진행 되었습니다."고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게 또 절묘하다.
“별 차질 없이 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하고 잠시 다음 멘트인 “이 대통령은..” 을 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짧은 사이, 바로 그 "위선자"라는 외침이 저 멀리서 들린다.
만약 기자 멘트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당연히 안 들렸을 게다.
이거 일부러 그 타이밍 맞춘 거라는 데, 만 원 건다. 타이밍도 타이밍이지만 그 위선자라는 소리, 잘 들리게 증폭된 거다. 실황 중계 때와 비교해 보면 안다. 귀엽다, MBC.
정작 기대했던 이명박의 진면목은, 잔뜩 긴장했던 영결식에서가 아니라 그 직전에 있었던 청와대에서의 행사 중 드러난다. 이명박, 당일 오전 상당히 바빴다. 각국 조문단 접견 하느라. 근데 이게 또 참 재밌다.
북한의 조문사절단은 이명박 면담을 원했다. 이걸 최초 청와대는 계획 없다고 받았다. 그러나 그냥 돌려보냈다가는 마지막 가는 길에 마련해준 기회까지 날려먹는다는 욕을 먹게 생겼고, 그렇다고 덥석 받았다간 북한에 이용당했단 보수진영의 욕을 먹게 될 것도 두려웠던 청와대는, 한동안 이런 멘트만 날렸다.
"혹시 만나게 되면 공개적으로 투명하고 당당하게 만나지, 뒤로 비밀회동하는 일은 절대 없다"
누가 비밀회동하랬나. 그냥 만나라 했지. 게다가 조문 온 고위관료 만나는데 "당당"이 왜 나오나. 자기들끼리 과거 정권을 퍼주기로 매도하며 북한에 비굴하게 굴었다고 공격했던 기억이 있다 보니 아무도 뭐라지 않는 데 혼자서 개그한다.
그러다 결국 내놓는 게 잔머리다.
영결식 당일 오전 이명박은 미중일 조문단을 각각 15분씩 만나고 나머지는 국가들은 한꺼번에 접견하는데, 이 일련의 접견행사에 북한을 끼워 넣은 거다. 김정일 메시지 가져왔다는 데도, 특사가 아니라 그냥 일반 조문단이라 이거다. 그러면서 북한 전체에서 서열 열 손가락 내에 드는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까지 검색대 통과하게 만든다. 우리는 북한 특별대우 하지 않고 "당당하게" 상대한다 이거지.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 정말.
특히나 우스운 건, 북한 접견 때 이명박의 태도다. 아마 참모진들이 각별히 "당당하게" 보이라고 요구했나 보다. 근데 우리 각하 당당한 것과 으스대며 아래로 내려보는 걸 구분 못 하신다. 기껏 연출하신 게 이 정도다. 한 번 보고, 소리 죽인 후에 앉은 자세와 표정을 비롯한 바디랭귀지만 다시 봐라.
이게 얼마나 웃긴 지는 바로 직후에 있었던 올브라이트와의 만남과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북한 사절단 접견시 자세와 표정과 말투를 비교해보라. 올브라이트와는 눈도 제대로 못 맞춘다.
당당함이란 표정과 말투와 태도에 자연스럽게 배어 저절로 드러나는 덕목이다. 우리 각하는 백날 가야 당당은 못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서 눈도 안 맞추는 거, 대단한 외교적 결례다.
내가 다 부끄럽다.
영결식에서 안장식까지, 대중의 감정이입 접점을 최대한 줄이겠다 작정한 행안부의 기획 덕에 전체적으로 마음 줄 장면, 드물었다. 서울광장에서마저 2분이 채 안 되는 연설이 전부였으니까.
그럼에도 울컥한 순간, 세 번 있었다.
첫 번째.
이희호씨의 눈물. 인간에게 눈물이 없었더라면, 슬픔만으로 생명이 다하는 수도 있겠다 싶더라.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 때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하는 대목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영상. 그 진심이 10년 세월을 단박에 넘어 전해졌다.
세 번째.
영정 사진을 들고 할아버지 서재에 들어선 이십대 초반의 손자가 울먹인 장면.
그의 눈물을 보는 순간, 비로소 실감했다. 그게 김대중의 마지막이란 걸. 영결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서도 제대로 와 닿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참, 슬펐다.
그러나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이희호씨의 서울광장 연설이다. 영결식 내내 휘청거리던 양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기세,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내 남편이라 칭하며, 내 남편은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다고 단언하던 대목에선, 나까지 뿌듯했다.
평생을 함께 한 아내가, 마지막 순간에 내 남자는 단 한 번도 굴한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는 거, 그거 경이로운 거다. 그리고 그 연설 모습을 보고서야, 왜 김대중은 그녀를 평생의 동지라 말해 왔는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직접 정치를 했더라도, 거물이 되었을 게다.
앞으론 남편 대신 직접 시국에 대한 한 마디를 해도 좋겠단 생각을 문득 했다.
끝으로, 감정이입 용이치 않아 멀뚱거리다 뜬금없이 혼자 웃었던 순간들 몇 기록해두자.
먼저 원불교 종교의식 때. 낭창하고 리드미컬한 독경에 나름 빠져들다 이 대목에서 확 깼다.
"다시 오시는 생애에는 우리나라를 세계 정신적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
다시 오시란 요구까진 교리가 그래 그런 줄 알겠다. 근데 도덕의 부모국이라. 참으로 신선하고 창의적으로 웃겼다.
다음 장면에선 아마도 나 혼자 웃지 않았을까 싶다.
원 안의 양반 때문에.
잘 보면 그가 혼자서 새 줄을 떡하니 만들었단 걸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누구냐. 박찬종이다. 다음은 방송 중 딱 한 번 원샷 받았던 박찬종 장면이다.
이 원샷 때는 몰랐다.
그가 희한한 위치에 앉아 있단 걸. 잠시 후 부감샷 보고 알았다. 아까 원샷 받던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는 걸.
애초 자리가 안 좋았던 게다. 그럴 수밖에. 현직도 아닌데다 대선 때 BBK 공격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박찬종인데. 벌떡 일어나 의자를 스스로 앞줄로 옮긴다. 이미 자리 잡은 이들더러 비껴 달랄 수 없으니 줄 사이에 껴서. 그 올망졸망한 자의식에 한참 웃었다.
그리고 이 장면서도 혼자 실없이 웃었다.
민둥 각하는 어째 날이 갈수록 더 씩씩해지신다. 두뇌 용도가 한정되었기 때문인가. 부러울 지경이다.
그 외 안장식 때도 담장 넘어 고개 내밀고 몰래 디카 찍던 일반인을 비롯해 몇몇 장면 있었다만 개인 베스트는 이 장면이다.
"누구 하나 말을 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안장식 내내 그렇게 어디선가 비장한 톤의 해설을 하던 이의 위치와 정체가 일순 드러나고 말았다. 선글라스. 보다 풉, 했다.
우쪽 상방 구석을 보시라.
김대중은 그 홀로 하나의 체제였다. 그리고 존재 자체로 대한민국의 민주와 인권을 상징하는 기호로 전세계에 통용됐다. 그 정도 인물과 같은 시대를 살아 봤다는 사실, 사람 신나게 만든다.
그래서 더욱 분하다.
그가 마지막 눈에 담고 간 장면들이, 시답잖은 무리에게 그 자신 평생을 바쳐 이룩한 가치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이었단 사실이. 그 대목, 결코 잊지 않겠다.
당신 덕에, 떳떳했어요.
참, 고마웠어요.
이제 편히 잠드세요,
내 첫 번째 대통령님.
- 틈새논평 담당 딴지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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