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치킨녀야. 널 이렇게 정감 있게 부를 생각이 든 건 오늘이 처음이다.
넌 고민게시판에 살고 있구나. 나도 자주 들어오는 편이긴 하지만 넌 몇 달째 이 곳에 상주하고 있더구나.
너의 생활이 유지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넌 지거국에 다니고 있고, 아마도 재수로 간 것 같고, 니가 빠진 남자애는 시립대 가려다가 장학금 받으러 가서 거기 한 학번 위 과탑이고, 넌 서태지에 뒤늦게 빠져 공부 따윈 않고 헛소리만 찍찍 하다 남자애한테 온갖 핀잔... 아니 온갖 욕을 다 먹었지. 갑자기 '그래, 결심했어. 나 이제 서태지 팬질 접을게'라며 남자애에게 무슨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말하고 그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올리기도 했었지. 편입 시험에 성공했다면서? 근데 그건 진짜니?
넌 성년의 날을 낀 며칠 간 무슨 만용인지는 모르나, 남자애가 사는 서울로 여행을 가서 하루는 그 남자 방에 하루는 찜질방에서 함께 잠을 잤지. 남자애와 침대에서 첫키스도 했고 5만원 상당의 향수도 사 주었다면서? 부모님도 뵜다고 하며 그 일로 넌 그 남자가 너에게 호감이 있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볼 땐 이 일이 네 인생을 망치는 불행의 시발점이었다.
요즘은 군대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 남자애한테 목도리를 짜 주고 걔가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설레발이더구나.
근데 너 정신 좀 차리면 안되겠니. 걘 널 전혀 좋아하지 않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걘 널 찌질이 병신 취급 하고 있어. 너 고게에 글 올리는 성향으로 봐서 걔한테 직접 대 놓고는 오죽 집착하겠니. 근데도 걘 너한테 전혀 특별한 관계가 되자는 말 할 기미가 없어.
오히려 넌 맞고 욕 먹고 무시 당하고. 네가 요즘 줄창 올리는 건 뽀뽀문자더구나.(내가 거기에 치킨녀 아니냐고 댓글 달았더니 처음엔 어머, 왜 절 그런 여자로 착각하시는 거예요 요지랄 하더니 결국은 니 설레발 치고 싶은 욕구가 더 앞서서 치킨녀임을 숨기지 않게 되었지)
아차, 그 전에 엄마가 암이신데 몰랐다면서 슬프고 속상한 맘에 그 남자에게 문자했다고, 근데 그 남자 문자를 그대로 올리면서 이 남자가 널 좋아하는 거냐고(!) 올리기도 했었지. 엄마가 정말 암이셨니? 아니면 그 꼴난 남자 하나때문에 엄마가 암이라고 거짓말 했니?
난 너가 정말 무섭다. 이 게시판에 오시는 여러분들은 고민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고민을 잘 듣고 조언해주고 싶기도 해서 오는 사람들이야. 너의 글에도 처음에는 정말 진지하게 하나하나 답변을 해 주었었지. 그런데 너는 네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거야. 네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얘기는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네 댓글에 달았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애정 결핍과 과대망상증, 허언증이 있는 것 같으니 가까운 곳에서 상담 좀 받아보라고. 근데 그런 댓글 달린 글들은 다 지웠더구나.
넌 너만의 세상에 살고 싶은 거야. 그 남자애가 널 속으로는 미칠듯이 좋아하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군대 때문에 널 놓아주려고 하는 거라는 3류 드라마의 스토리 속에서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듯 살고 싶은 거야.
어린 나이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해라. 고민 게시판에 글 좀 작작 올려라. 네 글을 볼때마다 나는 왜인지 몰라도 네가 너무 싫고 짜증난다. 처음에는 네가 불쌍했다. 그냥 정신이 많이 병든 사람이라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여기에서라도 그렇게 관심 받고 치유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여기에서 네가 써 대는 이 글들과 그 글에 붙는 댓글들은 너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네 상처를 더욱 곪게 하고 그 곪은 상처에 너는 억지로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두껍게 앉혀 바르면서 아닌 척, 모르는 척, 괜찮은 척 너 스스로마저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만하자. 정말로. 혼자 해라.
아참, 그 남자는 널 정말 싫어하고 있다. 내가 볼 때에는 조금 관심있는 애완견한테도 너한테 하는 것처럼은 못 한다. 벌레 이하로 취급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네 처지와 비슷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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