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소중한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도덕 책에서도 생명은 소중하니 남을 함부로 해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고 '왜요?'라고 질문하니까 많은 분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며 제게 반문했습니다.
'그럼 생명이 하찮은 것이냐?'
'아무렇게나 다른 사람을 죽여도 문제 없는 거냐?'
전 생명히 하찮다고 말하려던 게 아니라 왜 다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물론 저도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주입식 교육이나 타성 등에 젖어 그런 게 아닙니다.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내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도 되고 생명을 헤쳐도 된다는 의식이 생기면 결국 나 자신까지도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내가 소중한만큼 다른 생명도 소중하다는 자기방어적, 자기보존적 사고에 기인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뻔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한테 돌아올 위험이 하나도 없다면 그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 논리니까요.
그래서 한 번 제 생각을 이야기해 보고 싶어서,
그리고 여러분들의 생각도 한 번 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생명과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배운 생물 관련 지식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내용 중 될 수 있는 한 과학적인 것들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고등학교 때 생물 2, 혹은 지구과학에서 초기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 부분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이 정말 난해하고 연약하다는 생각을 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바이러스의 특징을 보면 이게 과연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판단하기가 힘들죠. 반은 생물적이고 반은 무생물적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무생물은 보이지 않는 특징들, 그 차이로 생물은 정의되는 겁니다. 바이러스는 이 기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고요.
쓰다보니 이상한 곳으로 좀 빠진 것 같네요. 여하간, 다시 생물들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상당히 무생물적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생물적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합니다. 생명체가 돌아가는 시스템은 물리적/화하적 자극에 대한 물리적/화학적 반응의 총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는 것처럼, 방망이로 친 공이 날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해하기 껄끄러우시다면 세포 하나를 보시면 됩니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 가령 당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 저장하는 과정, 호르몬 등의 단백질이나 기타 여러 벡터들에 의한 자극과 그에 상응하는 식으로만 반응하는 체계. 이러한 과정들은 지극히 화학/물리적입니다. 여기에 일부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성'은, 저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세포들은 '그렇게 할 수 있기에 그러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도록 자극하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제가 보기에 이런 특징들은 생물의 소중함이나 기타 여러가지 것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분류하는 일종의 기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물과 증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지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생물이 무생물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생명의 소중함 따위는 개나 줘 버려야하는가?
많은 분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며 한 번 더 절 이상하게 보셨더랬죠....ㅠㅠ
하지만 전 분명히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생물이 무생물과는 다른 점, 바로 '창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창발성은
예술적 감성으로 예술품을 만드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온갖 과학적 이론으로 혁신적인 발명품을 만드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짜장면 짬뽕하다가 짬짜면 만드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창발성은 '변화'입니다.
무생물로서는 이끌어낼 수 없는 '변화'이며 '자발적 움직임'입니다.
컨버스 운동화를 신을지 페르가모 구두를 신을지 고민하는 것,
바로 눈 앞의 풀을 뜯어먹을지 아니면 그 옆의 풀을 뜯어 먹을지 고민하는 것,
하다 못해 아메바가 오른쪽 놔두고 굳이 왼쪽으로 가는 것 등.
그것이 고도의 이성적 고민 후에 내린 결정이든 충동적인 결정이든, 혹은 그럴만한 수준의 것도 아닌 단순한 선택이든, 그것은 무생물로서는 도저히 이끌어낼 수 없는 '자발적 움직임'이며 무생물과는 차별화되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물 인간은 어쩌냐고요?
식물 인간이 깨어났다는 사례(물론 극히 드물긴 하지요.)를 볼 때 확률적으로 창발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너무 비정하다고요? 만약 그럴 확률이 0이라고 한다면 식물 인간을 그냥 죽은 사람 취급할 거냐고요? 무뇌아는 어떡할 거냐고요?
유전자가 있습니다.(생물을 조금 공부하신 분은 바로 알아차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단세포는 논외입니다. 걔네들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유전자 얘기할 때 중요한 건 다세포 생물입니다. 다세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활성화되서 작용하는 게 아닙니다. 간단한 이해를 고양이를 예로 들면, 고양이(특히 삼색 고양이 등)의 털 색은 천차만별입니다. 이것은 각 피부 세포의 유전자가 달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유전자가 확률적으로 취사 선택되서 생긴 것입니다. 각 세포마다 갖고 있는 유전자는 같아도 그저 확률적으로 발현되는 게 달라지는 것이지요.
즉, 생물은 활동,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그 변화의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저는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 하나만으로 생명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가 어리고 모르는 게 많아서 말도 안 되는 뻘글을 싼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 생각에 문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생각도 듣고 싶네요.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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