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팍에서 퍼 왔어요.
흑.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어리고, 예쁜 꿈만 꾸고 살아야 할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건지 모르겠어요...앞뒤없는 얘기지만 들어주세요.
우리가족은 인천에 살고 있답니다. 아빠, 엄마, 저. 그리고 오빠가 있어요. 저랑 나이차가 조금 나는 오빠에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했고, 아빠엄마 말씀도 잘 듣고. 저한테 잔소리가 좀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자상하고 믿음직한 오빠였어요. 그런데 오빠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지난 주 언제쯤이었나. 간만에 오빠가 일찍 퇴근했는데 아빠엄마도 안계시고 해서 오빠랑 치킨을 시켜먹었어요. 후라이드반에 양념반, 맥주도 한 캔 따고요. 티비앞에 앉아 동물의 왕국을 보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남극에 사는 귀엽고 예쁜 물개들이 나왔어요. 와...오빠 물개들 너무 이쁘다...라고 말을 붙였는데...그런데 오빠가 갑자기 먹고 있던 닭다리를 티비 화면에 집어 던지며 확 소리를 지르는거에요. "이 개새퀴야. 선수 좀 그만 잡어먹고 꺼져!!!"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지만 잘못된 건 바로잡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오빠에게 얘기했어요. "오빠... 물개도 개도 똑같이 개가 들어가니까 오빠가 착각하나분데, 물개랑 개랑은 아예 다른 동물이야. 쟤는 물개새퀴지 개새퀴가 아니야. 그리고 선수가 무슨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물개는 생선을 잡아먹고 살지 선수를 먹지 않아....그리고 물개한테 치킨을 주고 싶으면 물개쑈장에 가서 던져줘야지 텔레비젼에 던져주면 물개가 받아먹지 못하잖아."
비록 제가 나이도 어리고 배운 것도 없지만 이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제가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또박또박 얘기하니까 길길이 날뛰던 오빠가 잠잠해졌어요. 아무리 서울에서 좋은 대학 나오고 큰 회사 다니고 월급 많이 받으면 모해요. 맨날 신문보고 대통령님 욕이나 할 줄 알지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나봐요. 저한테 한소리 듣더니 잠잠해졌어요. 슬픈 눈빛인지 한심하다는 눈빛인지 한참 저를 쳐다보더니 냉장고에 가서 쏘주를 꺼내다가 병나발을 불더군요. 맨날 공부못한다고, 머리에 든 게 없다고 잔소리하던 동생한테서 바른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봐요. 그러려니 하고 냅뒀어요.
며칠전이에요. 아빠엄마랑 오빠랑 뉴스를 보며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전 뉴스따위 보지 않지만 그냥 들리는거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었어요. YS 전 대통령님이 새무슨당 경선인가 영선인가 몬가에 한말씀 하셨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근데 이날도 오빠가 갑자기 미쳐버리는거에요. 먹고 있던 밥그릇을 확 집어던지며 소리질렀어요. "영삼이 인천에서 꺼져!!! 이 개새퀴들아!!!"
에효... 김영삼 전 대통령님은 서울서 사신다고, 그리고 욕을 해도 새퀴들이 아니라 새퀴라 해야 맞는 거라고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아빠엄마가 계시기에 전 그냥 조용히 있었어요. 도대체 서울에 있는 좋은학교들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어요. 인천에서 고등학교만 나온 저보다도 못해요. 맨날 정치가 어쩌고 경제가 저쩌고만 할 줄 알았지 다들 헛똑똑이에요. 비록 공부 못해서 속썩여 드렸지만 아빠엄마한테 비싼 등록금 안 타다 쓴 제가 진짜 효녀인것 같아요.
어쨌든 이 사건으로 아빠엄마도 오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셨어요. 아빠엄마랑 저랑 마주 앉아 오빠에 대해 얘기하며 생각해보니 오빠가 이상하게 된게 한 일 년 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오빠는 우리집의 자랑이었어요. 저한테도 가끔 잔소리를 해서 그렇지 용돈도 잘 주는 착한 오빠였어요. 조금 이상했던 점은 가을만 되면 미친놈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다녔다는 정도? 가을마다 로또 맞아오는지 저한테도 용돈을 펑펑 주더라구요. 덕분에 저도 가을옷만큼은 친구들 부럽지 않을 명품라인으로 갖췄어요.
또 이상했던 점이 있었어요. 용돈도 받았으니 오빠방이나 청소해줘야 겠다고 생각했어요.-제가 아무리 나이 어리고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의리만큼은 있는 여자에요.- 쓸고 닦고 하다가 혹시 오빠가 이상야릇한 사진들이나 숨겨놓고 보는게 아닌지 걱정스러워 책상서랍 검사를 했는데 진짜 이상한 사진들이 있는 거에요. 왠 빨간 옷 입고 모자 쓴 할아버지 사진들만 잔뜩 나오고 그위에 사랑합니다라고 써있는거에요. 한자도 써있었는데... 一二모모... 이건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이상했었네요.
그리고 오빠가 정말 이상하게 된건 작년 팔월 중순무렵부터였어요. 자다가 침대에 쉬야를 했더라구요. 엄마는 그냥 웃으시면서 '어디가서 불장난이라도 하고 왔나 부지...'하시며 빨래를 하셨어요. 하지만 그날부터였어요. 오빠는 하루가 멀다하고 허구헌날 술에 취해 살았고, 행여 맨정신일땐 멍하니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허공만 바라봤어요. 그리고는 매사에 짜증을 부렸어요. 이건 무슨 삼백육십오일 짜증이에요.... 작년 가을엔 용돈도 땡전한푼 안줬어요. 아이... 짜증나...
특히 한 보름전부터 오빠가 거의 미쳐가고 있어요. 한 사흘 빼고 계속 술을 퍼먹고 들어오는거에요.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도 한 아홉시 반까지는 조용히 방에 있다가 갑자기 지 성질을 못이기는지 뛰쳐나가 술 처먹고 들어와요. 요 이틀간은 비가 와서 그런가 잠잠한 것 같은데 그전에는 5일연속으로 술 처먹고 떡이 되서 들어왔어요. 보다 못한 제가 널부러진 오빠를 붙잡고 한소리했어요. 오빠놈아. 정신 좀 차려라 했더니 완전 맛이 가서 한다는 말이 직장 때려치운다네요. 새로운 꿈이 생겼대요... 물개조련사가 되겠대요. 채찍 하나만 쥐어주면 물개새퀴를 사람 만들 수 있다고...흑흑. 오빠놈이 완전히 미친것 같아요.
어디가서 이런 얘기 하지도 못해요. 친구한테, 직장상사한테 오빠가 미쳤다구... 이런 얘기를 창피해서 어떻게 해요. 그래서 여기 언니오빠들한테 하는 거에요. 저 어떻하면 좋아요...저 앞으로 연애도 해야하고 시집도 가야하는데, 오빠놈이 저렇게 폐인되서 저한테 들러붙으면 저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아...끔찍해요. 흑흑...어제밤도 울다울다 잠이들어 지금 얼굴이 탱탱 부었어요. 이따가 소개팅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울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저 나름대로 굳센 여자에요. 제가 살고 오빠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오빠한테 술을 먹이는 놈들을 찾아야겠어요. 우리 오빠 그만 괴롭히고 꺼지라고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어요. 오빠가 물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요. 청와대 앞에 가서 1인시위라도 해야겠어요.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물개를 남극으로 돌려보내라고. 또 무엇을 해야할까요? 언니오빠들. 어떻해야 하나요? 도와주세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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