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이다... 이 녀석을 다시 만나기까지 1년이 걸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가 단체전 마지막 대장전...
그때 내가 녀석에서 지는 바람에 토너먼트에서 우리 팀이 떨어지게 되었지...
오늘은 스위스 시스템*으로 펼쳐지는 이번 토너먼트에서 다시 마주앉게 되었군...
“1년만이지?”
“어? 어 그러네...”
이 녀석을 날 기억하고 있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싱글싱글 거리면서 웃는 얼굴도 여전하군...
하지만 난 너의 웃는 얼굴이 더 무서워...
“자. 그럼 00배 체스대회 중등부 3회전을 시작해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까 두 번의 시합에서 내가 백을 잡았으므로 이번에는 내가 흑이군... (스위스 시스템 룰 참조)
자... 이번엔 어떤 오프닝으로 올거냐...
저번 시합 때는 생전 처음 보는 오프닝이라 라인을 어떻게 잡을지도 모르고 허둥대다가 지고 말았지...
......
이 녀석... 첫수를 2분 동안이나 생각하고 있네?
어이, 이봐. 중등부 대회는 20분이라구
......
어...?
1. e4 - ...
e4??? 이렇게 평범한 수를 2분씩이나 소비했단 말이야???
원래부터 괴짜인줄 알았지만 이건 너무...
안, 안돼! 저번 시합에서도 이상한 수에 너무 의미를 두고 휘둘렸어.
오늘도 그걸 노릴지도 몰라! 침착하게 내 할 일만 하면돼.
e4에 대한 대응수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c4로 두는 ‘시실리언’은 이 녀석과의 상성에선 좋은 오프닝은 아냐.
이번에 그냥 평범하게 e5다...
1. ... - e5
아마 다음 수는 Nf3로 오겠지?
2. Nf3 - ...
역시...
이번 시합은 약간 평범하게 가는데?
뭔가 불안하긴 하지만... 나 역시 평범하게 가면 된다.
2. ... - Nc6
자... 이제 어떻게 나올까?
‘루이 로페즈’로 올거나... ‘지우오코 피아노’로 올거냐...
3. Bc4 - ...
지우오코 피아노!
이 오프닝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나이트에 이어 비숍을 빨리 전개시켜 캐슬링시킬 발판을 최대한 빨리 마련한다...
혹은 비숍을 중앙에 위치시켜 중앙에 대한 영향력과 f7폰에 대한 위협을 끼친다...
지금으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나도 같이 비숍을 전개시켜 중앙에 대한 힘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것
3. ... - Bc5
4. c3 - ...
c3다...
이 녀석의 다음 후보수는 d4랑 Qb3...
하나씩 생각해보자...
우선 d4...
c3를 올리면서 d4로 뚝심있게 올리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만약 d4로 올리면 나의 비숍이랑 폰이 같이 공격받게 된다.
여기서 멋모르고 비숍을 빼면 e5폰만 잃게 된다.
그렇다고 비숍으로 d4폰을 잡을수도 없다. c3폰이 d4폰을 지지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되면 e5폰으로 d4폰을 잡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c3폰이 다시금 d4쪽으로 오면서 나는 꼼짝없이 중앙을 상대에게 내주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Qb3...
이건 c4에 있는 비숍과 함께 대각선을 통제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f7폰을 노리겠지...
그 대신 b1에 있는 나이트를 전개시키기가 만만치 않아서 호불호가 나뉘는 수이긴 하다만...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많진 않아.
중앙의 영향력과 f7폰의 안전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수는... 이거다!
4. ... - Nf6
이 나이트를 전개시키면서 e4폰을 위협했다.
현재 백의 e4폰을 지지해주는 기물은 없어.
아마 저 폰을 지키기 위해 d3로 오겠지?
5. d4 - ...
d4라고?! 젠장... 내가 이 녀석의 스타일을 까먹고 있었어!
보통 d3인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 d4로 공격적으로 나오는군...
여기선 어쩔 수 없다. 잡을 수밖에...
내가 e5폰으로 잡으면 아마 바로 c3폰으로 되잡겠군...
5. ... - exd4
6. cxd4 - ...
결국 중앙에 두 폰의 전진을 허락했군... 그리고 비숍이 위험하다. b6로 뺄까...?
안돼... 여기서 비숍을 빼면 중앙의 두폰이 더욱더 올라와서 나이트마저 위험해진다.
할 수 없다... 여기선 강하게 나가서 기세를 잡아야해.
6. ... - Bb4+
이제 백은 체크를 막을거야. 한 템포를 벌었다.
7. Nc3 - ...
음... 좋아 일단 비숍으로 c3나이트는 핀을 걸어놨다.
이제 할 일은 캐슬링을 해서 킹을 안전하게 해야겠다.
7. ... - 0-0
“체스는 심약한 이들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뭐...?”
“방금 너의 수를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이젠 되돌릴 수도 없어. 간다.”
이 녀석... 또 저번처럼 눈빛이 변했다!
불길하다. 왠지 실수한 느낌이 든다. 역시 중앙이 먼저였나?!
8. d5 - ...
아... 나이트가 위험하다. 이제 저 위치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불길하다... 불길하다...
8. ... - Ne7
9. e5 - ...
아... 폭풍처럼 밀고 올라오는구나...
나이트 포지션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어떻게 해야하지...?
기세에서 밀리면 더욱더 안 된다! 핀에 걸려있는 c3나이트를 압박해야해!
9. ... - Ne4
10. Qc2 - ...
으... 여기선 저 나이트의 핀을 더 이상 유지시켜봤자 소용없어.
어설프게 두었다간 e4의 나이트가 고립된다. 당장 교환할 수밖에...
10. ... - Nxc3
11. bxc3 - ...
나이트를 되잡는 동안에 나의 턴을 빼앗아가는구나...
그와 동시에 열린 b파일도 백에게 활용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지금 나로선 비숍을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수다.
11. ... - Bc5
녀석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이건 다음 수를 생각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녀석만의 버릇...
이 기회에 나도 조금 진정하고 냉정히 판세를 살펴봐야지.
기물은 각각 나이트와 폰 하나씩만 주고 받았다.
그런데 녀석의 폰들이 중앙을 잡고 있다. 반면 나의 폰은 지금... 폰을 움직이는데 너무 소홀히 했나?!
그 덕분에 중앙을 녀석에게 주게 되었어.
녀석의 기물들을 모두 활성화가 되어 있어.
두 개의 비숍 모두 게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퀸의 위치도 나쁘지않아.
반면 난 비숍만 하나 나와있지 모두들 폰들로 인해 통로가 막혀있다.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해!
잠깐... 녀석의 퀸과 비숍 나이트가 나의 킹사이드쪽을 겨누고 있네.
혹시 이쪽으로 파고든다면...
어?
녀석이 표정이 또 변했다.
아 싫다. 저건 메이트를 시킬 수를 찾았을 때 나오는 표정인데...
12. Nf5 - ...
역시 메이트를 목적으로 오는 거야.
f6로 공격하는건 자살행위다. 왜냐면 백이 d6+로 비숍의 공격로를 열어서 체크를 걸테니까...
h6도 안된다.
QH7#로 돌아오면 바로 체크메이트다...
우선 나이트를 배치시키는 동시에 퀸의 루트를 열어야 한다!
12. ... - Ng6
13. h4 - ...
나의 나이트를 위협해온다!
어떻게 해야하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남은 시간도 얼마 없어!
지금은 그냥 감을 믿고 둘 수 밖에 없어!
13. ... - h6
우선 저 성가신 나이트를 어떻게든 치워야 하는데...
내 의도대로 해줄까? 백의 다음 수는 어떤게 올까?
h5를 올려 같이 나이트를 위협할까?
14. d4! - ...
!!! 비숍의 길이 열렸다!!! f7폰이 위험하다. f7폰을 방어하면 c7폰이 위험하고!!
일단 나이트부터 잡아야해! 하나씩 풀어나가자!
14. ... - hxg5
15. hxg5 - ...
큰일났다! 이제는 h1의 룩마저 공격에 참가했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대로는 꼼짝없이 킹이 당한다.
최소한의 킹 탈출로를 만들어놔야...!
15. ... - Re8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해?"
“현재로선 이 수밖에 없어”
“아직 너 모르겠니? 너는 그때 캐슬링을 하는게 아니였어. 체스격언에 이런 말이 있어 ‘꼭 해야 하거나 하는 것이 좋을 때 캐슬링해라.’그리고...”
“아! ‘캐슬링할 수 있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래. 그리고 너는 오늘 중앙을 너무 경시했어. 나의 두 개의 중앙 폰이 너무 쉽게 중앙을 먹었어. 그 결과가 뭐였냐. 결국 너의 나이트들은 방황하고 나의 c4비숍에 의해 경기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f7을 위협 받았지. 그리고 영역이 전체적으로 눌린 너는 적절한 공간이 부족해서 다른 기물들을 전개시키지도 못했어. 이런 기본적인걸 잊다니... 실망이다. 초보적인 실수였어.”
윽... 확실히 난 녀석의 첫 수에 2분 이상 쓸때부터 너무 신경쓴 나머지 시합 종종 평정심을 찾지 못했어.
“......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무너지는구나. 초보자에게 종종 나타나는 모습이지...”
젠장!
“이걸로 마지막이다. 이번 대회는 내가 접수하겠어!”
16. Qxf6 - ...
더, 더 이상 저항해봤자 소용없어... 분하다... 또 지다니...
“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 먼저 일어날게.”
승리도장을 찍으러가는 저 녀석의 뒷모습을 또 보게 되다니...
큭...
결국 이번 대회는 녀석의 우승으로 끝났다.
나는 다른 상대와 벌인 4,5회전에선 이겼지만, 결국 3회전 때의 패배를 극복하지 못했다.
또 언제쯤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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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기보는 실제 1915년 Puger - Gebnard간의 게임기보를 모델로 했습니다.
필력은 조금 딸리지만 체스기보 설명은 열심히 했으니 귀엽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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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내가 체스를 가르치는 이유
▷ 기초 1강 - 체스의 역사
▷ 기초 2강 - 체스 기물의 소개 및 행마
▷ 기초 3강 - 체스보드와 기보 보는 법
▷ 규칙 1강 - 일반규칙과 기본예절
▷ 규칙 2강 - 체크와 체크메이트(Checkmate)
▷ 규칙 3강 - 왕은 성안으로... 캐슬링(Castling)
▷ 규칙 4강 - 일개병졸의 신분상승! 프로모션(Promotion)
▷ 규칙 5강 - 무승부도 전략이다. 스테일메이트(Stalemate)
▷ 규칙 6강 -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앙파상(En Passant)
▶ 기초전술 1강 - 동작그만! 핀(Pin)
▷ 기초전술 2강 - 체스의 양단수. 포크(Fork)
▷ 기초전술 3강 - 눈뜨고 코 베어가기. 디스커버리(Discoverise)
▷ 기초전술 4강 - 비켜라. 아니면 니가 죽는다. 스큐어(Skewer)
▷ 기초전술 5강 - 나쁜수를 강요하기. 쭉쯔방(Zugz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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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외 1편 - 아잉참(백) vs 머리속의바람(흑) - 오프닝이해
▷ 번외 2편 - 체스는 멋진 게임입니다.
▷ 번외 3편 - 비숍과 폰 : 대각선 영향력
▷ 번외 4편 - 체스복싱의 세계
▷ 번외 5편 - 전략적 옵션 - 캐슬링 저지
▶ 번외 6편 - 본격 체스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