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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해외여행은 그닥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고, 한국인들도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여행을 즐겨하는 편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 때도 역대급 인파가 인천공항에 모여 여기저기 바다 건너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해외여행은 엘리트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죠. 조선시대에는 상류층도 해외로 가보지 못하고, 오직 중국이나 일본에 특별사절로 파견되는 이들만 해외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상류층들은 적극적으로 자제들을 해외로 내보내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의 조기유학 열풍과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18세기 영국 귀족들은 그리스-로마 고전을 읽어야 교양있는 척을 할 수 있었고,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야 품위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또 유명한 미술 작품들을 제대로 감별하고 감동받을 줄 알아야 기품이 있는 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배우려면 프랑스에 가야했고, 또 이탈리아에 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그랜트 투어Grand Tour]라고 명명된 해외여행(유학)이었습니다.
대부분 2-3년에 걸친 유학코스로, 젊은 영국인들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하고, 그곳의 유명한 명사와 사귀며 또 대륙의 세련된 매너를 배우고, 또 그곳에서 어학과 학문을 마스터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300년 전에 해외여행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정부가 발행해주는 <여권>을 소지해야 했고, 또 그 특별한 질병이 없다는 확인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쳐 하는 여행인데, 당연 돈이 엄청, 그것도 엄청엄청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금괴를 들고 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의외로 당시 유럽의 금융망은 꽤 발전되어 있어서, 믿을만한 보증인과 수표를 가지고 있었으면 유럽 주요 도시에 소재한 은행에서 바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랜드 투어를 떠나는 젊은이들은 모두 부유한 귀족이어서, 이건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현지에 도착해서부터였습니다. 제일 먼저 프랑스에 도착을 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온갖 사기꾼과 호객꾼들을 피해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했으니까요. 오늘날 해외공항에 도착할 때 바가지를 씌울 준비가 되어 있는 택시들이 바글바글한 것처럼 그 당시 프랑스의 깔레에는 영국 호갱님들을 노리는 온갖 마차들이 즐비했다고 합니다. 당대 영국의 젊은 귀족들은 유럽에서 가장 돈이 많았고 가장 씀씀이가 헤픈 사람들이어서 이들을 노리는 장사치들이 한 둘이 아니었씁니다. 하나도 필요 없는 약을 사라고 하지 않나, 자기 마차에 타라고 계속 호객행위를 하지 않나, 그리고 물론 젊은 아가씨들도 이들을 벗겨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젊은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어서 경제관념이 별로 없었고, 돈도 많았기에 그냥 닥치는대로 쓰고 온갖 유흥에 돈을 소비했습니다. 최고급 무도회, 고급 매춘부, 최고급 미술품, 최고급 양복, 과시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구매하고, 본국의 엄숙함을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쾌락도 받아들였습니다.물론 부모들이 이런 위험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외국에 나가서도 항상 [견문을 넓히고 기품있게 행동하고, 세련되게 말을 하며, 절제력을 잃지 말고, 또 여자와 말 많은 사람을 피하라]라고 훈계했지만, 자녀들이 늘 그러하듯 부모의 말은 들은 척도 안했죠.
[어떤 영국 귀족 젊은이는 프랑스에서 옷을 얼마나 많이 구매했는지, 프랑스 지방귀족의 1년치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을 6개월만에 옷을 사는 데만 탕진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프랑스 의류는 유럽 최고 인기였나봅니다....)
그리고 거리의 소매치기와 바가지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음악공연을 한다거나, 묘기를 부리면서 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상류층의 기품을 잃지 않기 위해 돈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럽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짓하는 친구들이 있었군요...)]
그런데 해외에 나가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같은 동포인 영국인들이었습니다.
영국 귀족들은 외국에서 다른 영국인을 만나면 말이 통하는 고향사람이었기 때문에 쉽게 신뢰를 주고는 했는데, 이들에게 접근한 영국인들은 대부분 사기꾼이었던 것이죠. 예를 들어 유명 미술품의 위작을 진품이라고 속여서 판다거나, 길을 안내해준다고 하면서 엉뚱한데로 대려간다거나, 또는 숙소에서 엄청난 바가지를 씌운다거나... 이게 얼마나 심했으면 결국에 한 여행책자에는 [외국에서 결코 같은 영국인을 아는척 하지 말라, 다른 낮선 영국인이 말을 걸어오면 상대하지 말라]라고 지침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어째 한국인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착각이...크크크)
아무튼, 어찌됐든 그랜트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이탈리아였습니다. 베네치아의 화려함, 가면무도회, 곤돌라 여행, 토스카나 지방의 맛있는 와인, 그리고 피렌체의 아름다운 도시,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거 로마제국의 심장이었던 로마. 영국 귀족들은 이곳에서 마치 정신적인 고향을 찾은 것처럼 감동했었고, 온갖 감상에 빠져 시를 쓰고 후기를 썼습니다. 그리스-로마 고전이 가장 인기있던 시대의 자제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영국 본국에 찾아볼 수 없는 고결함, 숭고함, 그리고 어떤 모종의 선망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귀족 중에 그냥 돈만 쓰는 양아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실제로 그랜드 투어를 통해 식견을 넓히고 큰 업적을 쌓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조세프 에디슨이라는 귀족은 그랜드 투어를 마치고 여행수기를 하나 썼는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국 사회에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원래 그리스-로마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교양인이었는데, 여행 가는 곳마다 고전의 한 구절이나 고전 시대의 숨결을 따라가본다는 느낌으로 여행 수기를 작성해서, 학문적 허세를 갈망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켜줬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일종의 유행이 되서 그 후 그랜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스타일을 모방(표절....) 하면서 여행수기를 쓰기 시작했죠. 아, 참고로 조제프 에디슨은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보수적 시사 잡지 The Spectator의 창립자입니다.
물론 그랜드 투어에는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겉멋만 잔뜩 든 젊은이들이 영국에 돌아와서는 되도 않는 프랑스어나 이탈리어를 섞어서 쓴다거나, 또는 되도 않는 이탈리아 패션을 따라한다거나, 또는 "너 피렌체 가봤어?", "로마에 있는 무슨무슨 작품을 보지 못했어?" "와 어쩜 그래? 로마 가보지 못했으면 나랑 말 좀 섞지 말아줄래?" 이런 식의 행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아주 짜증나게 했죠. 그랜드 투어를 떠나는 귀족들이 전체 귀족들 중에서도 어찌됐든 다수는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영국 사회는 이들이 사치를 조장하고, 쓸데없이 돈을 외국에서 낭비하면서 국부유출의 주범이라고 공격했습니다 (한국도....뭐 비슷하죠.... 하지만 당시 영국의 공격대상은 상류층 자제들이었다는 게 다른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투어는 귀족들에게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었고, 또 훗날 패키지 여행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랜드 투어 덕분에 깔린 인프라, 가령 숙박업의 체계화,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각종 보험제도,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각종 편의가 발달될 수 있었습니다.
이상 추석 연휴 전 <그랜드 투어>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해드렸는데, 백문이불여일견, 설혜심 교수의 [그랜드투어]를 한 번 읽어보시길! 정말 재미있게 잘 구성된 책입니다! 최근에 상품의 역사라는 책도 쓰셨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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