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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한적한 영화다.
어쩌면 인간은 외계로부터 온 종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가로선과 세로선으로 설명된다. 지구, 시간, 또는 삶이라는 거대한 가로선 위에 우리는 외롭게 세로로 서서 걷고, 뛰고, 때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더라도, 살아나간다.
최현에게 경주는 세로선이었다. 가로로 달려가는 진부한 삶의 굴레로부터의 탈선이었다. 실제로 그는 삶의 권태에 찌들어 있었다. 아내와는 불화가 있었으며, 그가 매진했던 학문은 똥같았다. 그는 경주로 도망쳤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느긋한 움직임이다. 영화의 제목인 ‘경주’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와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미묘한 아이러니가 피어오르는 구절이다.
세로는 그에게 안정감을 준다. 윤희와 처음 만나게 되는 찻집도, 앞 다투어 세로로 올라가는 나무기둥들이 지탱하고 있다. 반면, 화면이 가로로 움직이면, 곧바로 갈등이나 고뇌가 시작되곤 했다. 가로로 연결된 장면중 하나에서, 최현은 창희의 아내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에선 반복적으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맺은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죽음은, 세로로서 인생을 살던 사람이 마침내 가로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마치, 경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능 안에 누워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죽음’을 다루는데 경주라는 위치설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로는, 세로인 ‘사람’의 모든 ‘타자’가 되는 것을 지칭한다.그것들은 갈등이고, 삶을 지치게 할 뿐인 것들로 여겨진다. 아마 우리는, 가로로 뒤덮인 이 세상과 잘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내가 불교를 알았더라면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어느 취객이 이런 노래를 한숨 쉬듯이 부른다.
‘지금도 생각난다. 자꾸만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진다. 아, 지금은 남이지만 아직도 나는 못 잊어.’
최현은 그것을 엿보다가, 한 대 얻어맞는 듯한 말을 받게 된다.
“잘 보셨습니까?”
우린 곧바로 최현을 돌아보게 된다.
최현은 사진을 찍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어 했다. 7년 전 경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경주에서의 하룻밤으로, 성장했다. 그가 7년 전, 술에 취해 들었던, 또 종반부에 무엇인가 이끌리듯이 찾아 나섰던, ‘물의 흐름’대로. 그는 더 이상 가로로 흘러가는 세상을 거스르지 않는다. 순응하며 살기로 한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지었던 사람’들처럼, 그들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실행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결국 최현은 다시 삶의 수평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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