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퇴마행을 다니던 도중,
어떤 나이 지긋하신, 점 잘 보는 할머니가 날 보고 이런 말을 했다.
"허연 호랑이가 자넬 태우고 다니는구먼. 그런데 그 호랑이는 자네 아들을 만나러 온 놈이랴.
아들이 참 큰 놈일것 같으이. 자넨 그 때까지 그 놈을 잘 보살펴주구랴."
그 때 까지만 해도 허접한 솔로주의자였기에, 난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바로 내가 타고 다녔다던 흰 호랑이의 진짜 주인인 내 아들이 태어났던 이야기,
그리고 나의 눈의 능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그 이야기다.
수태에서 출산까지, 정말 하나도 문제가 없었다. 새벽에 먼저 양수가 터지고,
난 차를 달려 아내와 함께 4시 쯤 다니던 산부인과에 입원하였다. 휴가계를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장모님과 함께 아내의 출산의 고통을 함께 했던 기억이 여전히 잔잔하다.
자궁구가 10cm 열려서 출산에 들어가자, 거의 30분 만에 이 녀석은 뛰쳐나왔고
- 정말 뛰쳐나왔다. 안에서 뭔가가 밀어내듯이, 슝 하고 날아서 의사가 받았음 -
그렇게 출산을 마치고,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은 마침 비어 있던 회복실(병실)에 자릴 잡았다.
그 날 밤.
잠을 자려고 했는데, 귀신 삐삐가 울렸다. 버려진 화장실에서 지갑 위에 올라가 있던 그 동전은
많은 퇴마행 중에 참 신기한 역할을 했는데, 귀신이 접근하면 짤랑거렸다.
뭐냐면, 내가 퇴마행을 하는 것을 알고 있던 지인이 이번에 멕시코인가 무슨 주술 시장 가는데
거기 가서 뭐 사줄까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동전 지갑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 친구는 돌아와서 사람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동전 지갑을 내 앞에 내밀었다.
사람 가죽과 같은 부드럽고 야들한 촉감은 니미 그냥 인조 가죽으로 만든 보통 지갑이네 해서
아무 부담 없이 가지고 다니려고 일단 그 피에 절었던 십 원 짜리와 (그 전에는 지갑에 넣고 다녔음)
다른 동전들을 넣고 다녔는데, 이후 퇴마행 때 같이 간 사람들이 귀신을 보기 직전에
그 지갑은 아무도 흔들지도 않았는데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난 사람들이 가르키는 곳을
열심히 쳐다 보고. 신기한 것은 그 동전은 그 지갑에 다른 동전들과 같이 있어야만
짤랑거렸다.
뭐 그랬던 거라 내가 귀신 삐삐라고 부르던 그 지갑이, 하필이면 그 날 울렸다.
아들이 태어난, 참 기쁜 날에.
물론 원하는 임산부들은 출산 당일 밤에 잘 때 아기들과 함께 잘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영아실에서 아기를 돌봐 주고, 출산한 분들은 회복실에서 조치를 받고 쉬며
보통 남편들은 회복실 한 쪽의 병실에 보조 침대를 두고 거기서 잔다.
나도 그 보조 침대에 누워 있고, 아내는 약 먹고 간신히 잠들었는데,
귀신 삐삐가 울린거다.
일단 난 일어나 침대에 걸터 앉아열심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뭔가 이 병실에 왔거나, 아니면 이 병실에 있단 이야기다.
그것도 귀신을 보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거리, 즉 방 하나나 복도 한 줄 간격으로.
영능력자도 없었고, 하다 못해 귀신을 보는 보조자도 없었다. 게다가 지켜야 할, 아내까지 있다.
정말 귀신 때문에 똥꼬 탈 만큼 긴장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뭔가 뒷목이 뻣뻣해지고
운동하다 다친 등줄기가 너무 귀찮게 아파왔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신기한 일이,
궁하면 통한 건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 신끼(집안 내력임)가 발휘된 건지,
그 상황에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갑자기 나지막히 노래를 불렀다.
아니, 내 안의 무엇인가가 노래를 부른 것이 내 목을 통했다고 하는 것이 그 때의 내 느낌이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홀로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나지막히, 아주 조용히
"마치 아기를 달래 재우는 듯한 목소리로"
한 곡을 부르고 나자, 뭔가가 따뜻한 것이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엔 공포의 노래(?)로 알려진 섬 집 아기를, 나지막히 부르니까 정말 자장가 같았다.
에라, 내차 비슷한 곡조 하나 더 부르기로 했다. 천천히, 나지막히.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 송이 되어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씽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뻣뻣했던 목도 좀 풀리고, 등이 귀찮게 아프던 것도 풀려 갔다.
무엇보다, 뭔가 아찔하고 긴장되던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왕 자장가 부를 거면 진짜 자장가를 부르자고 결심했다.
역시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나지막히, 속삭이는 것처럼.
잘 자라 우리아가
앞 뜰과 뒷동산에
새 들도 아가양도
모두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 밤
잘자라 우리아가
많이 편해 졌다. 뭔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다. 뭔가가 아쉬웠다.
뭔가 울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정말 슬프지만, 딱 한 방울만 흘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와 태교 교실을 다니다가 알게 된 자장가 하나를 더 불러 보기로 했다.
잘 자라 잘 자 우리 아가야
꽃 같이 예쁜 우리 아가야
귀여운 너 잠 잘 자게
잘 자라 잘 자 우리 아가야
"꽃 같이 예쁜"을 부를 때 갑자기 눈물이 팍 고이더니, 결국 "귀여운 너"에서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지금도 부르면 다시 그 때가 생각나서 결국 울게 된다)
그러자 모든 것이 갑자기 개운해졌고, 평안했고, 마음이 싸악 풀렸다.
주변에 영능력자가 없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왠지 자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간호사가 들어올 때까지 세상 모르고 잤다.
들어온 간호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때까지 난 그냥 뭐가뭔지 했지는 말이다.
아침에 간호사가 들어왔는데, 그녀는 왠지 아내를 돌보는 것보다 날 더 신경쓰는 눈치였다.
나는 매우 향긋하게 웃으며 아내와, 간호사가 데리고 온, 낳은 지 이틀 된 아들을 보며
같이 모유 수유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아내에게 뽀뽀도 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아내보다 날 더 많이 보더니, 결국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가서 간호사실을 스칠 때
날 잡고 물어보았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 때 감은 왔다. 확실히 저 병실에 뭔가가 있긴 있구나.
그래서 난 아주 간단하게,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예, 어제 온 것 같진 하지만, 저 그 쪽으로 좀 뭔가가 있어서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간호사는 울듯한 표정을 짓더니, 혹시 이따가 시간이 되면 옥상에서 잠시 뵐 수 있냐고
물었다. 나야 뭐 어차피 휴가계는 제출했겠다, 아내 잘 때 할 것이 오유밖에 없는지라
괜찮다고 했고 그리고 몇 시간 후 옥상에서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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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자판기 커피와 담배 한 대, 그리고 밀담.
그 간호사에게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깡패에게 그 친구가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고,
더더군다나 임신까지 하게 된 초대형 사건이 터져 버렸다.
그 친구 집은 뒤집어져 버렸고, 고소하네 고발하네 수사하네 조사하네 합의하네 파기하네
이러다가 그만 그 친구는 산달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일단 낳자고 합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집안에서 쫗겨난 것인지
그 친구는 홀로, 아니 그 친구가 홀로 산부인과로 가는 것을 너무 눈물나게 여긴 그 간호사
(그 당시 고등학생)가 친구들에게 최대한으로 모금해서 온 곳이 바로 지금 이 산부인과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출산을 했고, 바로 우리 부부가 들어간 병실로 들어갔다.
그 친구는, 아이를 보고 밝게 웃으며 첫 날부터 아이와 함께 자고 싶다고 했더란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친구와 그녀의 아이를 함께 방에 들여보냈고,
그 간호사도 그 친구를 병원에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고,
그 다음날, 아기는 목이 졸려 죽어 있었고 그 친구는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이 출동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뻔한 것을 다행히 병원장의 친구 단체(?)들이 막아주어
크게 보도는 안 되었고, 마침 다른 초대형 사건이 터져서 그 병원 사건은 알려지지 못했단다.
그 사건은 이 간호사에게 일생 일대의 충격을 주었고, 결국 그녀는 간호전문학원을 거쳐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유아 살해 및 산모 자살 사건 이후, 자꾸 이상한 소문이 흘러나오는 이 병원으로
일부러 왔다고 했다.
바로 그 병실, 세상 빛을 아직 보지도 못한 아이와 앞날을 박탈당한 엄마가 목숨을 끊은 그 방에서
남편들이 자면, 바로 다음날부터 소화불량, 복통, 두통, 어지럼증, 오한, 발열, 구토 등을 호소한다는
참 무서운 소문.
그래서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간호학원 다니면서 외모혁명(?)을 해서 아무도 못 알아봤다나)
마음 한 켠의 죄책감을 어쩌지도 못 하는 상황에서 그 병원에서 계속 근무하며
손발이 묶인 것처럼 답답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방은 우리 부부처럼 예약치 않고 출산하러 온 사람들이 급히 들어가는 방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 부부도 걱정하던 회복실(병실) 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여기서부터는 나의 추론인데,
내가 그 울지도 못하고 목졸려 죽어 가던 아기와
아기를 죽이면서 피눈물을 흐르고, 자신의 손목을 그으면서 피를 흘렸던 어린 엄마의
영혼을 자장가로 달래
그 이후로 그 병실의 남편들은 별 이상을 못 느끼고, 그래서 결국 그 병실마저도 인기폭발한
그런 결론이 내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
그들을 위해 흘린 눈물이, 아기를 재워 줄 다정한 '아빠'를 간절히 찾던 그 엄마의 영혼을
함께 어두운 앞날을 헤쳐나갈 '남편'을 아예 박탈해버린 강간범과 사회를 보며 피를 흘리던 엄마의 영혼을
그리고 잠시나마 '아빠'의 품 안에서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던 그 아기의 영혼을
달래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 산부인과는 여전히, 최상의 실력, 서비스, 시설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덧붙여 그 간호사도 친구와 조카(?)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떠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여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최근에 옥동자 사진을 싸이에 올려 행복을 만방에 떨치고 있다.
다른 영능력자들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혼자 엉겁결에 하게 된 퇴마행,
성공한 것 같지만,
그 이후 나는 애 키우랴 일하랴 퇴마행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사실은 그 할머니의 예언 때문에, 내 능력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안 하고 있는 거지만)
그렇게 아이가 태어난 지 딱 666일 만에, 내 지갑에서 귀신 삐삐는 사라져 버렸고
나는 참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 때 내가, 아니 하얀 호랑이가
나를 떠나기 전에 준 마지막 선물, 자장가 부르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글쎄, 추측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음 이야기는 영체 탐지 전문가와 함께 했던 퇴마행,
벽조목을 운 좋게 얻을 수 있었던 야간산행에 대해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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