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5월17일 아침
육군본부 정문에는 숨결마저 얼어붙는 듯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엇다.
육본정문은 다른곳과 상항이 달랐다. 정문위병이 겨눠총 자세로 그를 정지 시켰다.
“박정희 장군과 약속이 되어 있다”라니 “통과” 이렇게 하여 본관앞과 세 차례나
제지를 당하고 참모총장실 앞 까지 가게되였다. 명찰도 없는 군복을입은 소령이
“장군님은 바쁘시오.돌아가시오”
망설이던 소령은 잠시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내 나와 “박장군님 께서는 전두환대위를
모른다고 하오.돌아가시오“ ”절대로 돌아설수 없습니다.국가의 운명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한번더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반 혁명분자로 간주하여 처단 하겠다는 빛이
소령의 얼굴에 번뜩였다. “못 돌아갑니다. 박 장군님께 확인해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전두환대위는 안 까지 들릴 정도로 큰소리 외쳤다.
“부관 들여보내” 박정희장군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박정희소장은 저지선을 몇 개씩이나 뚫고 들어온 당돌한 대위를 세심이 흝어 보았다.
각 부대 사령관들도 전전긍긍 하면 사태의 추이만을 살필때이다. 한낱 대위가 단신으로
혁명 총수앞에 나타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정희소장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앉아 대위” “네” 전두환 대위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어제 새벽 한강교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혁명군이 한강 저지선을 돌파하는 총소리었다.
혁명군은 서울 전역을 완전 장악했다. 그러나 수도를 장악하고 중요기관을 접수했다 해서
혁명이 성공한 것은 아니였다. 미국은 혁명을 인정치 않았다. 야전 부대들도 일부는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각부대 사령관들도 겉으로는 지지하는 척 했지만 추이를
관망 하는듯 소극적인 자세로 몸을 사리고 있었다.
혁명은 이제 겨우 그 햇불을 올렸을뿐 성공적 마무리를 짖지 못한 가운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어떤 결정적인 계기는 찾아오고 있지 않았다.
만일 그 계기가 찾아 오질 않는다면 혁명군들은 어떠한 궁지로 몰리게 될지 예측할수
없는 가운데 17일 아침이 밝아온 것이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혁명군들의 머리칼이
쭈삣 설만큼 긴장된 때에 당돌하다고 할까, 대담 무상하다고 할까,
한낱 대위가 혁명군의 총지휘부로 찾아와 끝내 총수와 마주 앉은것이다
“박 장군님 이 혁명을 주도한 분이 누구십니까? 장도영 참모총장님 이십니까?
박 소장님 이십니까?“ 정곡을 파고드는 질문이었다.
“나야” 박정희장군은 짧으나 분명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장군님께
여쯥겠습니다.”“저도 현정권에 나라를 맡길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을 주도할 능력이 없고, 또한 용공 분자들이 날뛸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혁명의
불가피성은 긍정 합니다. 박장군님이 아니어도 누구든 칼은 뽑아어야 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장군님들 같은 썩은 정신을 가진 군인들이 거사를 할수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국방 임무를 소홀이하여 6.25때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던 군부의 지도자들이 말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속속들이 썩게만든 군인들이 말입니다.“
전속부관의 손이 권총 가까이갔다. 뽑기 직전의 자세이다. 전두환대위의 눈길이 전속부관의
손을 흘끗 보았을 뿐 얼굴빛은 조금도 변한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군대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는 군인들이 아닙니까”
“전 대위라고 했지” “네” “전대위, 군대가 썩어 빠졌다는 말에 대해서는 변명 않겠네,
나는 그런 썩어 빠진 정신으로 군무에 복무한 사람은 아니야“
“저는 장군님의 청렴 결백하다는 말을 여러번 들어 봤습니다. 그렇다면 장군님께서 혁명을
일어킨 소신과 이나라를 구해내기 위한 설명을 해주십시오. 박장군님의 말씀에 납득이 가면
저는 신명을 바쳐고 한가지 큰일을 하겠습니다.“ 납득이 안간다면 저는 발란으로 단정짖고
반 혁명의 대열에 앞장 서겠습니다. 물론 그경우 이방에서 살아 나갈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저는 의 를 져버릴수 없습니다.“
“전대위 나는 마음 든든하다. 우리 국군 장교중 가운데 전대위같은 장교가 있는것을 보니
마음 든든해, 우리군대는 아직 썩지 않았어, 그리고 전대위 같은 젋은 장교가 있어
우리나라의 앞날도 무한이 밝다는 자신을 얻었다“
1960년6월 4.19의거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과의 국회싸움은 난장판으로 변했고, 경제문제는
부재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1년 가까운 동안의 치적은 무엇 하나 꼽을것이 없는 반면
전국적인 데모 소요의 소용돌이 속에 이해의 대립만이 극단적으로 격화되고,부정부패의
척결에도 국민들이 납득 할수 없을만큼 미온적이어서 나라의 운명은 태풍이 몰아닥치기
직전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 하였다. 내가 영화만
찾는다면 육군 장성으로서 무엇이 부족할게 있겠나“
“알았습니다. 저는 박장군님의 혁명이 성공할수 있도록 큰일을 하나 해 보이겠습니다.”
육군사관학교를 혁명에 참여 시키겠습니다. 저는 육사11기 출신이니. 모교 생도들을
설득 시킬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육사를” 박정희 장군의 눈이 빛이났다.
놀라운 제안이였다. 지금까지 혁명 주도자들이 여러차례 육군사관학교를 움직이려고
시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육사생도들로 하여금 지지 행진을 시키겠습니다. 그러면 전군의 태도가 결정적으로
지지쪽 으로 기울게 될겁니다.“ ”좋아 나는 전대위만 맏겠네“
박정희장군은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전두환대위는 생도대장 김00준장을 먼저 만났다.
“우리 육군사관학교가 이런 위기의 순간에 침묵을 지키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뜻은 알겠다, 그러나 육사의 일이 생도대장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귀관도
잘 알지 않나, 교장님과 각 참모,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생도의 뜻이 움직여야 한다“
전두환대위는 마지막으로 생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혁명은 박정희장군이 주도했다. 그는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군인이다. 우리는 그을
믿어도 좋다.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간성인 우리들이 잠을 자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전두환대위의 말에 동기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게되여 5월18일 아침 육사생도 800명과
교수 훈육관들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앞 광을 행진했다. 그곳에서 행열을 맞이한 혁명의
주역 박정희장군이 입석한 가운데 혁명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 육군사관생도들의 5.16혁명 지지 시가행진이 그때까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일부 국민과 방관적인 와국인들에게 혁명의 불가피성을 광범위하고도 확실하게
인식 시켜 주었고 그로써 5.16혁명 성공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전두환이란 젊은대위 보통 인물이 아니야. 나도 생각지 못했던 일을 그가 해냈거던”
국가재건 촤고회의 의장이 된 박정희 장군이 그의 측근에게 한말이다.
이와같이 박정희장군이 이끈 5.16혁명은 육군의 주도 세력이 그 했불치켜 들기는 했으나. 극적이고도 가장 최선의 마무리라고 할수있는 결정적인 매듬은 그 즈음 아직 존재가
미미한 한낱 육군대위 전두환에 의해 지어진 셈이다.
이 이야기는 “5.16 혁명 비사”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밖에 관계 자료를 모두 뒤적이도
그 혁명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한 전두환대위의 이름 석자도 찾아 볼수가 없다.
그 점에 대해 전두환대위는 물론 조금의 여운도 갖고 싶지 않았다.
그 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제도 군인이었고 오늘도 군인일 뿐이다.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군인일 것이다.
나는 군인으로써 오로지 나에게 맡게진 군무에만 충실할 것이다.“
그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군복을 벗고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여러번에 걸쳐
제의를 받았으나 그 때마다 정중히 거절하고 군대에서도 각하를 보필할 참다운 군인도
필요할거라 말하고는 군을 떠날수가 없었다.
“그분이 나를 필요로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분명 확인 하면서 군무로 돌아 갈수
있었던 나는 자신을 행운의 사나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 그 군시절에 우리들에게 옳다고 생각 되는일에는 목숨을 걸어야 된다는
훈시를 떠오르게 하는 일화 한 토막입니다. 이런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혁명군 총수앞에서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면 반 혁명 분자로 몰리기 쉬운 그 사항에서
자기 뜻을 굽히지않고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이런 행동을 전두환각하가 아니면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무엇을 바라고 하는일이 아니라 오늘까지
그런 큰일을 했으도 자기가 했던일이 당연 하다면서 아무런 내색없이 살아오신 세월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품을 가진 어른이 우리는 그리울 뿐이고
존경할 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명예가 회복 되도록 해 드리는게 우리 모두의 사명
이자 책무입니다. ..... “각하 만수 무강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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