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방문한 김정일이 귀여운 어린 학생에 대해 관심을 보입니다.
이렇게 김정일의 눈에 들게 되면 이 학생은 김정일의 측근들에 의해 특별관리를 받게 되고,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주석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족을 떠나게 되는 어린 소녀들을 위해 김정일은 부모들에게 집을 지어주기도 하고 직접 방문하여 부모들의 직업에 대한 안배 등 여러 가지 배려를 직접 챙기기도 합니다.
소녀들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위해 무언가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됩니다.
김일성의 로리콘 취미, 즉 소녀취향의 성적인 편력도 아주 유명한 이야기 입니다.
김일성은 소녀들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고 믿는 전형적인 제3세계 독재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결코 연출되었거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긴 시간 봉인되어 있던 알려져서는 안 되는 어두운 진실입니다.
북한 기쁨조의 실상이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다시 한번 폭로됐다.
일본의 주간지 <주간현대>는 10일 발매된 최근호에서 '김정일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기쁨조의 양성 과정과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다뤘다.
더욱이 보기 드물게 기쁨조 출신 여성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자못 흥미를 끌었다.
<주간현대>가 한국에서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에 성공했다는 김선희씨(23·가명)는
지난 99년 약 6개월 동안 중국에서 숨어지내다 2000년 한국에 입국했다.
김양의 부모는 이미 97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김일성 주석과 친척 관계여서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김양은 5세 때부터
춤과 노래에 재능을 보여 예술 인재들이 모이는 옥류중학교에 진학했다.
15세 때 월반으로 엘리트코스인 평양예술대에 입학, 배우의 꿈을 키웠다.
청초한 얼굴에 늘씬한 몸매로 주위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던 김양이
인생의 전기를 맞은 것은 18세 때였다.
일명 5과(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5과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간부 5과'의 약칭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서 부대나 다름없다.
요리사 양성과 10여곳에 이르는 별장의 관리,
기쁨조의 양성 등을 담당하고 있다.
기쁨조는 성적인 유희를 담당하는 만족조,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행복조,춤과 노래에 정통한 가무조 등 3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장기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전공이 정해진다고 한다.
각지에서 스카우트된 여성들에 대한 기쁨조 테스트는 매년
3∼4차례씩 열린다.
연령은 14∼25세로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첫번째 관문은 면접으로 사상과 인성을 테스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 친구를 사귄 유무로 한번이라도
이성교제의 경험이 있으면 무조건 탈락된다.
신체 검사는 2차례에 걸쳐 실시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정밀 검사를 받는다.
특히 장기와 비뇨기 검사가 철저하게 이뤄진다.
세번째 관문은 가장 중요한 처녀성 검사. <주간현대>는
"너무 수치스러워 말 할수 없다"는
김양의 말을 곁들여 "처녀성 검사는 공개적으로 이뤄진다"고 전했다.
기쁨조로 최종 관문을 통과한 14∼15명은 집으로 돌아가 1주일 정도
부모님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평양 근교의 고층빌딩에
위치한 합숙소에 들어간다.
2인 1조로 한방을 쓰면서 생활하고 화장품과 액세서리 등은 합숙소의
매장에서 얼마든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나중에 당 간부들이 일괄적으로 계산을 한다.
약 20개월간의 합숙 훈련 기간 중에는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
교육은 물론 선배들로부터 성 테크닉 기술도 전수받는다.
서양 포르노 비디오를 직접 보기도 한다는 것이 김양의 진술.
연수기간이 지나면 본격적인 당 간부의 호출로 외출이 시작된다.
김양은 같이 방을 쓴 4년 위의 선배가 1주일에 많게는 2∼3번씩
만족조로 불려 나가 학대 당하는 것을 보고 큰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김양은 97년 부모의 탈북으로 기쁨조에서 쫓겨났다.
김일성 주석과의 친척관계로 극형을 면한 김양은 산골로 쫓겨나
사람과 가축의 분뇨를 처리하는곳에서 일을 하다
과로로 입원한 뒤 간호사로 위장해 탈출에 성공했다.
현재 서울에서 평범한 직장 여성으로 지내고 있다는 김양은
인터뷰 말미에서 "북한에서의 악몽을 생각하면 결혼해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많은 친구들이 성의 노예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일본)〓양정석 특파원
ㅇ성적인 유희를 담당하는 '만족조'의 훈련과정
▲ 술 접대할 때의 복장과 매너
▲ 옷 벗기기
▲ 관계 후 목욕 시키기
▲ 키스하기
▲ 오럴**
▲ 복수 **
▲ 피임 등 항목별로 나눠 훈련 방법을 세밀하게 소개했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남성을 접대할 때 스타킹 착용은 절대 금물이다.
항상 팬티와 브래지어만 착용하고 그 위에 전통 의상 등을
걸친 채 시중을 든다.
대부분의 실습은 동료들과 함께 2인 1조가 돼 여성 교관(때로는 남성)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진다.
키스법을 연마할 때도 프렌치 키스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교육을 받는다.
NG가 나면 교관이 OK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가장 치욕적인 오럴**도
실습을 통해 연마한다.
기본적인 테크닉은 물론 오럴**할 때의 손과 발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훈련을 받는다. 남성 1인, 여성 2인의 복수**
역시 둘의 역할분담에 관한 훈련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피임은 필수인데 주로 정자를 죽이는 약인 '살정제'를 이용한다.
콘돔 사용에 대한 얘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기쁨조원들이
알아서 피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월 임신과 성병 검사를 받아 임신했을 경우에는 곧바로 낙태수술을 받고
일정 기간의 요양이 지나면 다시 현역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
김양은 기쁨조에 발탁된 18세까지 여성이 임신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김양은 "그냥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며
"기쁨조에 들어와 임신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김양은 "한국 정부가 언제까지 나의 안전을 지켜줄지 모르지만
기쁨조가 분명히 북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기쁨조"출신 정미경(가명)씨와의 인터뷰]
북한에서 고위층이였던 기쁨조 정미경(24,가명)씨는 지난 년 3월 어머니와 여동생의 손을 잡고 탈북했다.
정미경씨는 기자의 인터뷰에 응할것을 한참을 고민하더니 선선히 인터뷰에 응했다.
정미경은 기쁨조 출신으로 한 몇넷번 무대위에 섰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일의 애인문제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예쁜 미인을 좋아했다. 아담하고 체구가 작으며 키가 적당한 미인을 좋아했는데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동그란 미인을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남측 연예인으로 따지면 '고현정',
'김태희', '심은하', '최진실' 같은 얼굴상이라고 밝혔다.
정미경이 김정일이 선호하는 이상형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했다. “김정일의 이상형은 다음과 같다.
김정일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 자연스러운 코, 도톰한 입술의 미인을 선호하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도, 커서도 안됬다. 키는 160cm에서 165cm까지를 선호했다. 또 아담하고 체구가 작은 미인을
좋아했다. 말라서도 안됬고 살이 적당히 쪄야 했다. 이런 미인이 발견되면 김정일은 바로 자신의
기쁨조로 삼았는데 말도 못할 귀족생활을 누렸다.”며 정확하게 설명했다.
"기쁨조는 김정일의 성교 파트너이다. 김정일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기쁨조는 발굴됬다.
김정일의 고위층 관리들은 김정일의 기쁨조가 될 16세부터 25세까지의 여자들을 눈여겨보다가 추천했다.
김정일의 마음에 드는 여인이 눈에 들면 그 여인을 추천한 고위층 관리는 김정일이 주는 벼슬을 받았다.
그 추천받은 여자들은 무작정 김정일의 기쁨조가 되어야 했다. 김정일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김정일의 기쁨조가 되면 부모들은 모두 ‘김정일 수령님이 우리에게 주는 상’이라며 좋아했다.”
‘정미경씨는 어떻게 기쁨조가 되었나’
“나는 추천으로 기쁨조가 되었다. 추천 받은 다음 바로 김일성 병원으로 끌려가 처녀성 검사를 받았다.
나는 합격했는데 1주 동안 부모님과 생활한 다음 김정일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처녀성 검사를 할 때
남자의사와 김정일이 보는 곳에서 검사를 하는데 얼마나 수치스러웠던지 말도 못 한다.
작은 나무막대기를 질에 쑤셔넣고 손가락을 질에 쑤셔넣는 등 고생이 많았다.
내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자 ‘오르가즘을 느끼냐’고 말을 했다.”
‘기쁨조 중에서도 탈북한 사람들이 많은지’
“꽤 된다. 내가 알고 있던 '윤순희(가명)'라는 동무도 탈북했었고 '금혜주'라는 가무조 중 한명도 탈북했다.”
“언제는 기쁨조들 열댓명에게 '옷을 벗으라'고 다그친 적이 있다.
기쁨조들이 후다닥 옷을 벗으니 '브래지어와 팬티도 벗으라'고 명령했다.
기쁨조들이 부끄러워하며 벗었다. 그리고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어쩔 수 없이 춤을 추니 김정일이 춤을 추는 기쁨조 중 귀여운 단원에게 다가가 농락했다.
또 어떤 단원에게는 '너는 가슴이 작다'며 꾸중했다. 한참 감상하던 김정일이 그 귀여운 단원에게
'내 침실로 오라'고 명령했다. 그 여인은 김정일의 침실로 따라갔다. 조금 뒤 김정일이 그 귀여운
단원에게 어떤 심한 짓을 했는지 그 단원이 울고 있었다. 물어보니 김정일이 '브래지어와 팬티를
찢었다'며 울었다.”
아래는 유튜브에 있던 기쁨조 영상 캡쳐
읽으면서 피가끓네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