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 때 사귄 친구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지 3개월 째.
교우문제로 퇴학당한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말해 주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할 건지 물어봤지만
이렇다 할 목표도 없고 딱히 뭘 해야 할 지 몰라 그냥저냥 지낸단다.
그때는 아직 니트(백수)라는 표현이 없었지만
그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니트였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한테도 계속 잔소리를 들어서 그랬는지
이제는 비슷한 이야기만 꺼내도 크게 화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기운 좀 북돋아 주려고 우리집에 불렀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반년만에 휴가를 내고
추리닝 차림으로 낮부터 타코야끼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 품안에서 놀던 고양이가 타코야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집어넣었다가 했다.
우리 아버지지만 정말, 이 사람은 무사태평한 사람이구나.
친구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오랜만이네.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어두워?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버지는 그 친구가 중퇴했다는 걸 알면서 능청스럽게 물었다.
친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네, 저기, 학교는 포기했습니다.」
「뭐야, 포기했다구?」
「네」
「뭐,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포기겠구만.」
「네?」
「학교 그만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 포기한 거였어?」
「다른가요?」
「학교를 그만둔다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험한 길을 선택한 것뿐이잖아?
포기랑은 의미가 좀 다르지.
그럼 지금 뭐 하면서 지내는데?」
「저, 저기, 아직 아무것도··· 이렇다 할 목표를 못 찾아서···」
친구는 조금 괴로워하며 대답했다.
「목표를 못 찾았다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은
목표를 찾아내도 큰 일을 못 해.」
「그래도 목표만 찾아내면···」
「아, 그건 아마 무리다.」
위험. 친구의 분노가 폭발 직전.
친구가 말을 잇지 못하자 아버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저기 말이야, 이유가 어떻든 간에
다른 사람들보다 험한 길을 선택한 것은 너야. 정신 차려.
목표가 없다는 둥 어리광 부리지 말고
어디든 괜찮으니까 일단 달려. 뭐든지 괜찮아.」
「뭐든 괜찮나요?」
「아아~ 달리기 전에 목표를 먼저 찾아내면 그것도 좋지.
만약에 달리는 쪽 정반대 쪽에 그 목표가 있다면...」
「반대쪽에 있다면··」
「상관하지마. 그때 되돌아 달려도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녀석들을 앞지를 만한 힘은 남아 있을 거야.」
나도, 친구도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 품에서는 여전히 고양이 손이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500엔 짜리 동전을 쥐어줬다.
「이걸로 구인 잡지라도 사.」
「아, 네. 집에 가는 길에 살게요.」
「그건 늦어. 지금 가.」
「지금이요?」
「포기했어?」
「포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험한 길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럼 지금 잡지를 사고 바로 근무지를 골라.
오늘 당장 면접을 보고 내일부터 출근 해.」
나는 그 둘의 모습에 무척 놀랐다.
「조금이라도 방향이 정해지면 우물쭈물하지 말고
재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감각을 몸에 익혀.」
「네, 알겠습니다.」
친구는 오랜만에 밝게 웃었다.
내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혼자서 갈게. 시간이 없어. 달려야 돼.」
「아저씨, 오늘 감사했습니다.」
친구는 달려나갔다.
그날 밤 친구는 음식점에 취직했다. 다음날부터 바로 근무한다고 했다.
단번에 백수를 탈출시킨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런 말 할 때는 품에서 고양이 좀 꺼내시라구요.
2.
오랜만에 친척들이 다 모였다.
그 중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감에 넘쳐
자기 자랑을 끝없이 해댔다.
한참 옛날이야기를 지루할 정도로 반복했다.
그 분은 아버지의 숙부였다.
다들 그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어려서 아무도 그 잘난 척을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서
혼자 방구석에서 멍하니 약주를 한 잔 하고 계셨다.
그 할아버지는 그게 거슬렸는지 아버지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너! 내 말 듣고 있냐?」
「네? 아, 전혀 안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였는데요?
아, 참. 그런데 말입니다. 고래는 무지 커요. 알고 계셨어요?」
아버지는 쌩뚱맞은 말을 꺼냈다.
무지 어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알고 계셨습니까?」
「아, 알지.」
「우와 대단해. 어떻게 아세요?
고래가 숙부님 댁에 자기가 얼마나 큰 지 설명하러 왔었나요?」
「바보 같은 놈! 고래가 왜 오냐!
그런 건 하나 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동네 꼬마애도 다 아는 거잖아!」
「그렇죠. 정말로 큰 거에는 자질구레한 설명 따위 필요 없죠.」
빵 터질 뻔 했다.
주위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다.
새빨간 얼굴로 아버지를 노려 볼 뿐.
얼어붙은 분위기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버지는 능청맞게 말을 이어 나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숙부님 말씀을 끊었군요.
그냥 혼자 고래를 좀 생각하다가 그만...
뭐 그건 그렇고 아까 무슨 말씀 중이셨죠?」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기 자랑을 계속할 분위기도 아니고.
「아, 그래요? 그럼 여러분, 계속 말씀들 나누세요.
저는 여기서 혼자 술 좀 마시면서
고래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게 있거든요.」
...아버지!
혼자 그렇게 무사태평하게 술이나 홀짝대지 말고
이 분위기 좀 어떻게 해 달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