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06일
신입생들에게: 한 개인주의자의 제언 / 이범 (수정)
1995년 3월 서울대 의류학과 학생회가 주최한 신교 강연문
입학시즌에 어울리는 글이라 올려봄.
신입생들에게: 한 개인주의자의 제언
본지 편집자문위원
이 범
편집자 주: 다음은 95년 3월 13일 의류학과 학생회가 주최한 신입생 교양학교에서의 강연문 전문이다.
신입생 여러분에게
서울대에 입성한 걸 축하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을 테니, 사족은 다 제하고 제가 하고싶은 말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학생회에서 일하는 한 후배로부터 부탁받은 것은, 강연을 통해 신입생들이 학생운동을 비롯한 여러 운동들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요청을 수락했다는 것은 제가 꽤 불순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 앞에서 상당히 불순한(?) 이야기를 할 것임을 벌써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강연이 기분나쁘게 들리거나 참을 수 없는 내용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이든 반박할 수 있으며(하지만 되도록 제가 이 글을 다 읽은 다음에 반론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설령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가 중간에 퇴장한다 할지라도 저는 절대로 이를 제지하거나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오늘 강연의 주제는 ‘개인주의자에게 운동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주제가 왜 이런고 하니, 바로 제가 명백한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개인주의자냐 하면, 최종적인 가치판단의 준거가 구체적인 개인의 권리와 욕구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저는 개인주의자로서, 저를 비롯한 사람들의 삶이 신의 역사(役事)함에 따라 이뤄진다는 기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있지 않으며,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내가 알아서 대신 결정해 주겠다’는 전두환이나 김일성식의 전체주의를 배격합니다.
저의 강연 내용은 여러분의 의식에 뭔가를 ‘주입’하기 위해 일찌감치 준비되어있던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가 강연 요청을 수락한 것은, 이 원고를 쓰면서 이 기회에 운동에 대한 저 자신의 관점을 정리해볼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여러분과 함께 토론해 보면서 제가 옹호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여러분에게 어느 정도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를 한번 알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주의자로서 개개인의 자유가 매우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인의 자유’라는 말은 그 의미가 상당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이것이 무의미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고대사회의 노예나 봉건사회의 농노보다 자유롭다는 의견에 여러분은 대체로 동의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월 40만원씩 받으며 겨우 살아가는 여공들보다는, 또는 마약 없이는 지낼 수 없는 마약중독자보다는, 자신이 더 자유롭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OB맥주만 갖춰놓은 술집보다는 OB와 하이트와 카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더 자유롭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Nirvana나 Pat Metheny를 좋아하는 저는 김건모나 박미경만 틀어주는 까페보다는 이런 곡들을 섞어주는 까페를 선호하며, 책표지나 글의 제목 글씨로 워드프로세서에 있는 ‘중간안상수체’를 즐겨 택하는데, 따지고 보면 이런 것들도 다 개인의 자유와 관련있을 겁니다.
저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투쟁은 일상사의 작은 것에서부터 꽤나 거창한 것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폭이 넓습니다. 이를테면 마시기 싫은 술을 억지로 권하는 선배, 자신이 읽는 책이나 사귀는 친구를 검열하려는 부모님, 프라이버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문 앞에서 가방을 열어보이라는 전경(이런 일은 90년대 초반까지 잦았으며 바로 작년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외부의 존재들이 모두 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투쟁은 결코 쉽지 않은데, 교문 앞에 서있는 전경처럼 상대가 만만치 않은 경우, 그리고 부모님처럼 자신이 의존하고 있으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일이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외부의 대상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도 투쟁해야 할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이미 연애 경험이 있거나 이성 친구를 사귀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깊이 사귀다 보면, 성애(性愛)를 느끼게 마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와 성관계를 가졌으면, 한번 같이 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때 “그래, 그러자” 해서 대뜸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마광수 같은 사람들은 열렬히 성해방을 주장하지만, 우리는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자신의 몸의 특정한 부위에 상대방의 손을 갖다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특히 여자의 경우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 당시에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할 지도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걔 어떻게 된 거 아냐’, ‘막나가는 애 아냐’ 하고 되묻지 않을 사람이, 특히 남자의 경우 얼마나 될까요.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통념이 여자가 자신의 몸에 대하여 가진 권리를 부정하며, 연애상대와 결혼상대를 상당히 확연히 구분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은(특히 남자들은) 흔히 연애상대는 최대한의 성적인 매력을 가지길 바라는 대신 내면 깊숙한 구석에서는 상대가 섹시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충 다뤄도 되는 애’라는 낙인을 찍곤 합니다. 반면 결혼상대에게는 정숙함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불만에 빠지게 만들지는 않을, 정확히 그만큼의 성적 매력은 유지하길 바라지요.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가치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마광수가 주장하는 식의 성해방이 개인의 자유의 확장에 기여하거나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성애에 접근하도록 해준다는 견해에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렇듯 여자건 남자건, 우리 자신의 의식과 행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개 성차별적인 사회관계와 공모(共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차별적인 사회질서에 대한 투쟁은, 예컨대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도 여성에게는 남성의 절반 남짓한 임금밖에 주지 않는 제도에 대한 투쟁은(특히 블루칼라의 경우 이런 임금차별이 심합니다), 명절때 남자들은 아랫목에서 고스톱을 치지만 여자들은 부엌에서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 억압적인 가족질서에 대한 투쟁은, 자신의 내면 속에서의 투쟁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차별을 예로 들어 보았는데, 제가 이 대목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요컨대 개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외부적인 현실에 대한 투쟁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의식과 행동을 바꿔내기 위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우가 아니므로,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과 설득에 참여하도록 길러지는 서구인들과 달리, 고등학교 때까지 혹독한 강요와 규율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런 일에 전혀 익숙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일단 입시지옥을 벗어나 대학에 들어왔고,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짠~).
문제는 여러분들이 이 게임에 바로 참여하여 뭔가를 얻어내기에는,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내용이 너무 기만적이고 빈약하며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괴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기만적이냐 하면 우리나라가 하루에 6명씩 산업재해로 죽고 100명 가까이 불구가 되는 산업재해발생률 1위의 나라라는 사실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북돋아주자 어쩌구 할 정도이고, 얼마나 빈약하냐 하면 일제시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좌・우파를 막론하고 가장 존경받던 여운형이라든가 국내에서 다른 항일무장부대가 거의다 철수한 30년대 초까지 계속 활동한 김일성에 대해서는 국사책에 한 문장도 할애하지 않을 정도이며, 얼마나 삶과 괴리되어 있냐 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법정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실용적인 성교육을 한번도 제공하지 않아서 우리나라를 인구대비 세계 1위의 낙태국가로 만들 정도입니다.
이러한 ‘지식의 공백’을 직관적으로 깨닫는 많은 신입생들은 이걸 메워볼 궁리를 하게 되고, 그래서 책을 읽을 생각을 하거나 강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혼자 읽자니 잘 안 읽힐 게 뻔하고 강의도 생각보다 재미없으니까, 자연히 학회나 학술동아리처럼 큰 구속감 없이 모여서 뭔가를 읽고 토론하는 곳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운동권에서 사용하는 개념어들(이를테면 자본주의, 민주주의, 계급, 민족, 이데올로기, 성차별, 구조, 실천 등등)을 접하게 됩니다. 학회나 동아리 중에는 주로 문학작품을 읽거나 역사책을 읽는 곳도 있지만, 이런 곳에서도 제가 지금 막 열거한 정도의 개념들은 다루는 게 보통이지요.
물론 이런 용어들은 여러분들이 전부터 사용해온 것들이겠지만, 막상 공부하다 보면 일상언어나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예상 외로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운동에 뛰어들었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이런 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일상적으로는 ‘시장이 일반화되고 모든 개인이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결정된 가격에 따라 자신의 소유물을 사고 팔 수 있는 사회경제적 제도’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사회과학적으로는 노동력이 상품화되어 ‘노동시장’이라는(졸업 후에 여러분 가운데 많은 숫자가 뛰어들게 될 취업전선을 일컫는 말입니다)특별한 시장이 성립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시장이 일반화되어도 자본주의라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이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인신(人身)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노예제와 다르고, 일단 노동력을 팔고 나면 자본가(또는 그 대행자)의 직접 노동통제 하에서 노동하게 된다는 점에서, 영주가 농노의 노동과정을 직접 통제하지 않았던 봉건제와 다르지요.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게 되는데, 일단 노동력을 판매하고 나면 자신의 노동과정을 통제할 권리를 박탈당하며, 수행된 노동의 결과물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의 소외’로서,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이지요. 자본주의를 이렇게 이해했을 때, 시장 및 이윤논리와 관련해서만 자본주의를 논하던 것과는 그 의미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여러분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중학교때 친구, 방금 퇴근한 아버지의 피곤한 얼굴, 졸업한 뒤에 조금이라도 노가다(?)같은 일로부터 멀어지고 기획・지휘에 해당되는 일을 하려고 하는 우리의 조바심… 이런 것들과 모두 직접 연결되는 개념일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일례로 말씀드렸는데, 제가 아까 앞에서 열거했던 개념들은(적어도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한)자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상당히 유용합니다. 갈고 다듬어진 개념들이야말로 ‘일이 이렇게 된 게 내 탓이냐 아니면 다른 누구의 잘못이냐’는 따위의 거친 사고방식보다 훨씬 여러분의 삶을 정교하게 반추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며, 여러분들이 사려깊게 자신의 자유를 실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를 제대로 해낼 수만 있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대학 시절에 얻어낼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성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며, 저는 이것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스스로를 제대로 배려할 수 있는 훌륭한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자신이 부딪치고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개념적으로 돌파하기 위한 것일 때 진정으로 의미있는 것이 되며, 그때에야 비로소 ‘스스로’ 공부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 전혀 무관해보이는 개념이나 이론이라면, 그게 아무리 사람들이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라 할지라도, 허겁지겁 손대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한두번 얼치기로 공부해 보려다 실패하고 나서는 반숙(半熟)된 개념과 혼란스러운 사고방식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둥 ‘모든 주의(主義)는 회색이요 중요한 건 저 소나무의 푸르름’이라는 둥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같은 반(反)지성주의적인 태도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별로 도움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학에 들어온 만큼 진짜 공부를 해 보십시오.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공부를.
한가지 덧붙여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학회나 동아리가 운동으로 향하는 통로 구실을 하곤 한다는 이유로 들어가기를 꺼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제대로 운영되는 학회라면(나중에 여러분이 직・간접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거기에 참여하지 않을 때보다 참여할 때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자유와 타인이 주장하는 자유가 충돌할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작년 여름에 벌어진 지하철・철도 기관사 파업을 예로 들어 보기로 하지요. 이때 대부분의 언론은 일방적으로 기관사들의 이기주의를 질타했으며, 많은 시민들 또한 언론의 논조에 동조했습니다. 기관사들의 노동3권과 시민의 교통권 사이에서 후자의 편을 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게 드러납니다. 우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고, 그들도 자신의 회사에서 노동3권이 침해된다면 상당히 분노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남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동조적이 되었을까요?
여기에 얽혀있는 한가지 웃지못한 비화(秘話)가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철도 파업이 있던 바로 그때 미국의 로스앤젤리스에서는 경찰파업이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인 철도파업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언론이 외신에서 그 소식을 완전히 빼버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걸 선진국과 비교하면서 빨리 그들처럼 되자고 주장하는 언론들이, 왜 선진국에서는 공무원들까지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기사들을 다 삭제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파업 기관사들에 동조적이었던 일간지는 겨우 ‘한겨레신문’ 정도였고, 파업 후반기에 ‘문화일보’가 여기에 동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신문에서만 우리는 이 외신기사들을 볼 수 있었지요.
밀리는 차 안에서 느끼게 되는 짜증에 영합해서 파업 기관사들을 ‘국민의 적’인양 몰아붙인 당시 언론의 행태는, 광주 시민을 가리키며 ‘저들은 국민이 아니라 폭도’라고 몰아붙였던 80년 5월 신군부의 수법과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언론은 비번인 기관사들이 노조사무실에 매일밤 모여 합법적으로 농성하던 것을 경찰이 일방적으로 치면서 파업이 예정시한보다 빨리, 갑자기 이뤄졌다는 것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이런 일은 한두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현대 계열사에서 몇차례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을 때, 언론은 파업이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행동을 공박했으며, 정부가 불법적으로 경찰을 투입해도 이것을 전혀 지적하지 않았지요...
결국 두개 이상의 권리가 상호 충돌할 때 어떤 권리를 우선시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결단’의 문제이고, 이런 순간에 그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를 봄으로써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하철 파업에 대한 입장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어느 계급의 편에 서있는가를 확인해볼 수 있지요. 만일 누군가 지하철 파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수미일관하게 유지한다면, 저는 그를 지배계급의 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권리의 ‘보편성’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오랫동안 개인주의적인 가치를 억압하는 사회였고, 지금도 억압적인 사회질서가 구석구석에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개인의 권리는 단순히 ‘나’라는 한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짜증내면서 언론에 동조한 많은 시민들이, 나중에 자신의 회사에서 노동3권이 침해당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구체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에 항의하고 저항했다가 바로 자신이 동조했던 그 언론으로부터 ‘국민의 적’이라고 몰아붙여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없이 타인에게 들이댔던 칼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저는 진정한 개인주의라는 것이 흔히 생각되듯 ‘연대’(連帶)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연대의 정신과 정확하게 상통하며, 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태도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같은 연대를 통한 보편적인 권리의 확장만이 진정한 ‘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의할 점은, 제가 주장하는 평등이란 ‘권리의 평등’이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나 기호(嗜好)가 동일해진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공강(空講)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팩차기에서부터 술마시기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인 것처럼, 보편적인 권리를 향유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주장되는 권리는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게 제가 개인주의자로서 ‘평등’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릴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기서 제가 반(反)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확장시켜야 할 가장 중요한 권리 중의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의 원칙이 되는, 즉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게 무슨 반자본주의적인 주장이냐, 지금도 우리는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 시의원까지 뽑지 않느냐, 하고 반문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삶에서 극히 중요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곳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바로 ‘직장’입니다. 또 반문하시겠지요. 우리가 어떻게 사장이나 과장을 뽑아?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한계이며,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유지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치명적인 한계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위에서는 민주주의가 제 아무리 확장되어봐야 그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의 ‘자유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보다는 부르조아민주주의라는 말로 우리 사회의 정치체제를 규정하곤 합니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하려면 수미일관하고 철저하게 하자, 이게 저의 주장의 요지인데, 이것은 이 사회에서 가장 좌익적인 주장으로 불리지요.
또 한군데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곧 학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심한데, 심지어 서구의 조합주의적인 대학(즉 교수들과 학생들로 이루어진 조합으로서의 대학)을 모델로 세워진 우리 학교에서도 학생은 대학의 공식적인 운영에 전혀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싸우고 개겨서 겨우겨우 얻어낸 몇가지 권리가 있을 뿐이지요. 이를테면 학생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 대학신문의 주간은 교수로 하되 편집장은 학생으로 한다는 것, 대동제 때 이틀간 공식적인 휴강이 실시된다는 것... 이런 정도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학칙에 명기된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대학의 발전방향을 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참여할 권리는 전혀 없으며, 최근에 학생 차량 출입을 둘러싼 공방에서 드러난 것처럼 학생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도 대학본부 측은 학생 측과 거의 협의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대학을 4년 동안 다닌 다음에, 아마도 대부분은 졸업을 해서 직장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일부는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여학생 가운데 일부는 결혼해서 전업주부가 되는 길을 택하게 되겠지요.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고, 여러분이 할 일은 많습니다. 이 짧은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제가 여태까지 조언드린 말씀을 정리해 보면, 첫째 개인의 자유를 유지하고 확장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내부와 외부 양쪽의 적과 싸워나갈 것, 둘째 되도록 정교한 개념을 통해 사유하고 의사소통할 것, 세째 보편적인 권리의 종목과 현행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자신의 가치기준을 점검해갈 것 등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의 지침들을 통해 여러분들이 사려깊게 자유를 실천하는 법을 배우기 바랍니다. 사려깊게 살자고 해서 과감함을 배제하자거나 열정을 죽이자는 건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실천과 병행해서, 또는 그 이후에라도 개념적인 성찰을 하십시오. 사려깊은 자유의 실천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남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뻔하고 시시껄렁한 대학생활이 아니라 그야말로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를 하길 바랍니다.
1995년 3월 13일
출처 :
http://prouder.egloos.com/3034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