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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스타스월과 가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왕궁으로 들어섰다. 스티프 글라스가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근처에 사람이라곤 없었다. 다만 셀레스티아와 스티프 글라스만이 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루나는 그들의 앞에 섰다.
“언니.”
그리고 스티프 글라스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
셀레스티아가 미간을 찡그린 채 루나를 내려다보았다. 루나는 더욱 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날개로 루나를 꼭 끌어안았다.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보고 싶었어, 언니.”
훌쩍이는 루나를 셀레스티아는 자상하게 감쌌다. 그런데 스티프 글라스가 헛기침을 하더니, 루나에게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흠, 나들이에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루나 공주님.”
스타스월이 물었다.
“나들이?”
“네. 루나 공주님은 피로를 풀기 위해 7일 간의 나들이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오셨구요.”
“스티프 글라스…….”
스타스월이 평소답지 않게 으르렁 거렸지만, 스티프 글라스는 잠시 움찔했을 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오늘 공주님의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정치, 달 떠올리는 연습, 왕실예법이 잡혀 있고, 미뤄왔던 만큼의 사교 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티프 글라스!”
별안간 셀레스티아가 소리쳤다.
“지금껏 참아왔지만 드디어 말해야겠군요. 루나가 왜 떠났었는지 당신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면 당신의 머릿속엔 왕실업무 외에는 있지도 않은 건가요?!”
“음, 어…….”
이런 셀레스티아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스티프 글라스는 뜻하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셀레스티아가 계속해서 노려보자 그녀는 결국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요, 루나 공주님께는 휴식이 필요하시죠…….”
그러곤 루나를 한 번 차갑게 쳐다보곤 말했다.
“하지만 루나 공주님도 언제까지나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보호받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제가 돌봐드릴 수 있는 기간도 결국 공주님이 진짜 공주님이 될 때 까지니까요…….”
스티프 글라스는 홱 고개를 돌려 홀을 나갔다.
그제야 셀레스티아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루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 루나. 고생했지? 이제 언니랑 같이 레페토 아저씨께 가볼래? 요즘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고 하셨거든. 널 위해서.”
“응!”
셀레스티아의 말에 루나는 콩콩 뛰면서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먼저 가 있어!”
루나가 홀을 나가자, 셀레스티아는 스타스월에게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스타스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스승님은 저희가 태어날 때부터 저희를 보아오셨죠. 하지만 저도 그 기간만큼 스승님을 알아요.”
뻥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셀레스티아도 장님은 아니었다. 그녀는 스승이 에버프리 숲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고, 최고의 마법사인 그가 굳이 걸어서 왕궁에 들어섰다. 결정적으로 마법이 몰라보게 쇠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스타스월은 거짓말 할 때마다 고개를 젓는 버릇이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계속해서 그의 눈을 응시했다. 결국 스타스월은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단다. 하지만 그것을 내 입으로 설명하기엔 벅차구나. 루나에게 묻기 전에 왕궁 도서관에서 [에버프리 숲의 고대생물]이라는 책을 찾거라. 네게 필요한 것은 전부 그 안에 있을 테니.”
그렇게 말하며 스타스월은 몸을 돌려 홀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셀레스티아는 고단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보았다. 검은 숫말과 황금빛의 암말이 새겨진 천장. 마치 힘을 빌리듯이 셀레스티아는 천장을 향해 날개를 폈다.
“걱정 마세요. 루나는 제 동생이에요. 언제까지고 제가 지켜줄 거예요.”
마지막 말은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지만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면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
왕성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원형 야외홀. 초승달과 태양이 교차되어 있는 듯한 문양이 새겨진 홀 가운데 루나가 서 있었다.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루나는 눈을 감은 채 뿔에 정신을 집중했다. 해가 낮아질수록 뿔의 암청색 빛이 더욱 밝아졌다. 해가 거의 졌을 무렵에는 마치 밤하늘이 뿔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해가 완전히 지고, 루나는 자신의 작은 날개로 날아올랐다. 해가 진 곳의 반대편에서 서서히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루나의 뿔의 빛이 점점 깜빡이기 시작하더니, 빛은 흩어져 버리고 루나는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달은 이미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그게 자신이 띄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홀보다 조금 낮은 곳에서, 유니콘들이 삼십 마리는 넘게 모여 하나같이 암청색 빛을 내고 있었다.
루나는 한숨을 쉬며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셀레스티아가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루나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거뒀다.
“잘 안 됐니?”
“완전히 망쳤어.”
루나는 셀레스티아를 지나치며 말했다.
“이러다 성인식까지 한 번이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몰라.”
“물론, 그때까지 잘 할 수 있을 거야.”
“아냐. 성공하는 걸로는 안 돼는 거 알잖아. 그때는 정말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단 말야.”
그리곤 루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언니면 좋을 텐데.”
셀레스티아가 루나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말했잖니. 너는 언젠가 언니보다 훨씬 훌륭한 공주가 될 거라고.”
“언젠가가 아니라, 난 당장 훌륭한 공주가 되어야 된다구.”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나는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당연한 걸 말했을 뿐인걸.”
두 자매는 루나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럼 언니, 이제……,”
“루나.”
셀레스티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었지만, 루나는 그게 진짜 진지하게 말할 때만 내는 목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내가 아는 거리면.”
“왕궁을 나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니?”
그 한 마디에 루나는 얼굴이 파래졌다.
“루나, 말하기 힘들면…….”
“아냐, 말할게.”
루나는 심호흡 후 말을 이었다.
“난 디스코드와 함께 있었어.”
“디스코드?”
“응, 내가 이름 지어줬어. 어쨌든, 걔는 드라고니쿠스인데, 내가 에버프리 숲에서 목각늑대들에게 쫓길 때 도와줬어.”
“목각늑대?”
“괜찮아, 다친 덴 하나도 없었어. 어쨌든 걘 솜사탕 구름도 만들 줄 알고, 못 하는 거 말고는 다 할 줄 아는 거 같아. 같이 나무로 성도 지었는데, 그러고 보니 거기 언니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좀 짓궂은 거 빼고는, 굉장히 좋은 친구야.”
“그럼 디스코드란 자와 함께 지냈다는 거니?”
“응. 더 자세히 말해줄까?”
“아니, 네가 위험한 일이 없었단 걸 알았으니 됐어……. 이따보자, 루나.”
“응.”
루나가 방에 들어가자 셀레스티아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책상을 반이나 덮는 거대한 책. 그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에버프리 숲의 고대생물]은 단 하나의 생명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쿠스.
셀레스티아는 서론을 넘기고 본론부터 보기 시작했다.
[이들의 모습은 단지 혼돈스럽다는 것 빼고는 그 모습이 개체마다 현격히 다르며, 과거, 이 변덕스러운 생명체는 이퀘스트리아를 잠시나마 지배했던 경력이 있다. 그들의 힘은 마법과는 다르며, 단지 혼돈을 대변하여 드라고니쿠스들의 소망을, 그러니까 내키는대로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약점이란 것이 거의 없는 종족이지만, 조화에는 특히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여러 번 관찰되어왔다. 특히 우정, 신뢰 등을 싫어하여 그것이 눈에 띌 때마다 쓸데없을 정도로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속마음을 읽는데 능숙하다는 것이 그들이 싫어하는 우정, 신뢰를 해체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정, 신뢰, 조화를 사랑하는 포니들이여, 그러나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종족들은 이미 오래 전 알리콘들에 의해 멸종했다. 요새도 종종 목격담이 들려오는 경우는 있으나, 대부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종족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 뒷부분은 왕국 서적 특유의 지루한 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이 종족 중 하나가 생존해 있다면……?’
그녀는‘종종 들려오는 목격담’이라는 부분을 주목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하나같이 유치한 목격담이었지만, 목격처가 하나같이 에버프리 숲이라는 것이 신경 쓰였다.
스타스월, 그녀의 스승은 무엇은 말하고 싶어 한 것일까.
하지만 셀레스티아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었다. 웬만한 알리콘 수준의 세월을 살아온 그녀의 스승의 의중을 생각한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셀레스티아는 루나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점에만 무게를 두기로 했다. 게다가, 루나에게 중요한 성인식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 주인공이 루나라고 해서, 그녀의 언니인 셀레스티아가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셀레스티아는 자신의 스케쥴표를 흘긋 보고는 방을 나설 준비를 했다. 스티프 글라스에게 한 소리 듣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오.
그러고 보니. 하고 셀레스티아는 속으로 쿡쿡 거렸다. 하긴 과거의 혼돈의 지배자일지도 모르는 루나의 비밀친구보다, 당장 그 빳빳한 태도의 참정의 콧대를 꺾어 놓는 게 더 중요할 텐데 말이다.
한결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셀레스티아는 기쁨의 한숨을 내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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