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천년전 영국 잉글랜드 중부에 위치한 코벤트리 마을.
시끌벅적해야 할 마을의 광장은 개미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정적에 휩싸였다.
춥지 않은 날씨인데도 마을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고 커튼은 무겁게 내려져 있었다.
누구 하나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처럼...
그때 마을의 중심가를 향해 말 한 필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말 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여인이 타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몸 위로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흩어졌다.
그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달려 마을을 한바퀴 다 돌 동안
누구 하나 그녀의 몸을 보기위해 창을 열지 않았다.
벌거벗은 나체로 말을 달려온 그녀는 이름난 창녀도 아니었고 타고난 바람둥이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버였다.
레이디 고다이버가 벌거벗고 말을 탄 11세기 영국은 복잡한 정치, 경제적 변화를 맞고 있었다.
영국은 8세기부터 바이킹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억압적인 통치를 받고 있었다.
당시 그들의 통치는 영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농민계층의 몰락을 야기시켰다.
이전에는 자유 농민이었던 그들의 신분이 가혹한 세금징수에 의해
노예상태나 다름없는 농노의 신분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농민들은 자고 나면 오르는 세금의 무게에 허덕이며
신분적으로는 영주에게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속박되었다.
런던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인 코벤트리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영주인 레오프릭은 날이면 날마다 농민에게 징수하는 세금을 올려 대고 있었다.
그의 가혹하고 잔인한 성격과는 다르게 마음씨가 고운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레이디 고다이버이다.
고다이버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의 과중한 세금정책을 비판했다.
마음 착한 고다이버는 가난한 농민들이 남편의 세금 때문에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 영주와 농민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계속 충고한다.
그러나 영주는 그녀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버리고 오히려 비웃었다.
영주는 고다이버의 읍소가 그칠 줄 모르자 그녀에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고다이버의 농민에 대한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몸으로 직접 보이라는 것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바퀴 돈 다면
그녀가 그토록 호소하는 세금감면을 고려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고다이버는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남편의 폭정를 막고 죽어가는 농민들을 구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다이버는 남편의 제안을수락한다.
이 일이 코벤트리의 농민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 레이디 고다이버가 오는지도 알려졌다.
농민들은 영주의 부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농민 스스로도 큰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녀가 벌거벗고 마을을 도는 동안, 그 누구도 그녀의 몸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레이디 고다이버가 벌거벗고 마을로 내려온 날.
마을 전체는 무거운 정적 속에서 은혜로운 영주부인이 빨리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사냥터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영주가 황급히 달려왔지만
그녀는 이미 마을을 한바퀴 돈 뒤 저택에 들어와 있었다.
이때 레이디 고다이버의 나이는 겨우 16세였습니다.
그 뒤 영주는 얼음처럼 차가웠던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주간한국 칼럼니스트 김정미
하지만 단 한사람 훔쳐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훔쳐보기 좋아하던 재단사 톰(Tom).그는 그녀를 지켜보았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장님이 되었다(죽었다는 설도 있음). 그 이후 피핑톰 [peeping tom]은 관음증이라 불린다.
전해내려오는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 행동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당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역설논리로 시위했던 고다이버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