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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선동글이 있으니 이른바 '47억 짜리 지도'이다.
http://www.pikicast.com/#!/menu=landing&content_id=140675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민의 혈세를 47억이나 들여 역사 지도를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독도는 누락시키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어처구니 없는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글이 소개된 각 사이트의 반응은 매우 험악하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역사학자들에 대한 욕설이 난무하고 있으니, 선동치고는 아주 성공적인 선동인 셈이다.
사실 인터넷에 퍼진 해당 글은 이덕일이 최근 출판한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만권당, 2015)의 내용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처음 등장한 것은 피키캐스트인 것 같은데, 작성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이덕일의 팬일 수도 있겠고, 이덕일이 밑에 부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이런 건 다 접어 두고, 과연 이 내용이 타당한가를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해당 글을 보면 동북아역사재단 및 지도 작성에 관여했다는 역사학자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국가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저명한 학자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일반 국민들이 봐도 명명백백하고 자명한 것을 과연 동북아역사재단과 학자들이 몰랐을까? 혹시 사실을 전달하는 중간 과정에서 정보의 왜곡이나 과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그렇다. 해당 내용은 이덕일이 자행한 사기극이자 낚시질에 불과하다. 이덕일이 과연 어떻게 사기를 치고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시작부터 '47억 원'짜리 역사 지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도대체 지도 그리는데 47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일이 있겠느냐는 문제 제기인 셈이다. 그런데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드는 동북아역사지도는 현재의 지도에다 대충 옛날 지명을 써 넣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에 걸친 모든 역사 지리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화해 구축한 후 GIS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화해 구현하는 방대한 작업이다(김유철, 2010 '동북아역사지도의 편찬 현황과 방법', "문화역사지리" 제22권 제3호 통권42호. 참조).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한 방식이기 때문에 연 단위, 혹은 월 단위까지 역사 지리적 변화가 다 반영된다. 원래 사업 기간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개년이었으나, 3년 정도 연장되어서 지금에 이르렀다. 따라서 사업의 적정 예산이 얼마인가에 대해서 따져볼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돈이 많이 들었다고 뭐라 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 그럼 이렇게 방대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왜 독도를 빼먹었을까. 이덕일의 주장은 이게 의도적이라는 것인데, 그가 뭐라고 하는지 보자.
"동북아역사지도"는 독도를 절대 '실수'로 누락시킨 것이 아니다. 100퍼센트 의도된 것이다. ......이들에게 독도는 일본 시마네 현 소속의 섬이지 대한민국 강역이 아니다.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07-308쪽)
100퍼센트 의도된 것이라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선, 이덕일이 문제 삼고 있는 동북아역사지도 자체가 완성본이 아니다. 이것은 내부 검토용으로 지명의 위치 비정이나 경계선 등의 타당성을 자문받거나 작업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한 용도로 수십 장을 임의 출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내부 자료를 이덕일이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덕일과 선이 닿아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 누군가이거나 국회의원 누군가가 넘겨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 지도는 GIS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화한 지도이고, 따라서 원하는만큼 출력 범위를 지정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지도가 사실상 하나의 덩어리로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고, 종이 출력물을 만들 때는 필요에 따라 위도와 경도 수치를 입력해 구역을 지정하여 출력하는 방식이다. 그 중 하나의 지도가 출력 당시 경도 설정에 실수가 있어 독도 서쪽에서 잘려서 표기되지 않게 된 것일 뿐 데이터베이스 상에는 멀쩡히 존재하고 있으니, 독도를 지웠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덕일이 문제 삼은 지도가 바로 다음 지도이다.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03쪽.
이덕일은 동북아역사지도를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자기 책에 이 지도를 실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지도 상에는 지금 한반도 중 경상도와 강원도 일부만 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필요에 따라 임의로 다른 부분을 잘라내고 특정 지역만 나타낸 탓이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경상도만 남기고 한반도 서부와 북부를 누락시켜서 우리 영토에서 지워버린 망동으로 보아야 할까. 당연히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실상을 알고 보면 허무한 이야기이지만, 이덕일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이덕일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동북아역사재단과 사업에 참여한 역사학자들에게 흠집을 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지도뿐 아니라 다른 시대의 지도들을 보아도 모두 독도가 누락되고 지워져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인지 한 번 살펴보자.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06-307쪽.
위의 지도는 모두 이덕일의 책에 소개된 것을 스캔한 것이다.
만약 동북아 역사지도가 의도성을 가지고 일부러 독도를 누락시킨 것이라면, 당연히 다른 시대의 지도에도 독도가 누락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도들에는 사실 독도가 멀쩡히 있다. 책에 흐릿하게 인쇄된 그림을 다시 스캔한 것이다보니 해상도가 떨어져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붉은 색 원으로 표시한 부분에 멀쩡하게 독도가 그려져 있다.
놀라운 점은 저렇게 지도상에 확실하게 표시된 것을 보고도 이덕일은 독도가 지워졌고 누락되어 있다고 끝까지 우기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그림 아래 빨간 박스 안의 글을 보라. 이덕일은 독도가 이 지도상에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독도 부근의 흐릿한 점'이니, 이것은 'GIS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표기된 것에 불과'하다느니 하면서 얼버무리며 넘어가고 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물론 이 지도 상에 '독도'라는 지명은 표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도가 굉장히 작은 섬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위의 지도 22를 보라. 경상남도 일대의 작은 섬들은 모두 독도와 마찬가지로 섬의 형태만 표시되고 있을 뿐 이름까지 표기되지는 않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동북아역사지도는 데이터베이스화한 정보를 지도 상에 뿌려 주는 방식이라 설정값에 따라 지명이 다른 층위로 표시된다. 예컨데 '레벨 1'은 시군구, '레벨 2'는 읍면동, '레벨 3'은 리 같은 식이다. 이중 레벨 1만 표시하도록 선택하면 지도상에 '시군구' 단위의 지명만 표기되는 방식이다. 독도는 매우 작은 섬이기 때문에 아마도 가장 낮은 레벨 값을 부여받았을 것이고, 이 지도 상에서 설정한 지명 표기 레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독도는 상징성이 있는 섬인만큼 레벨 값을 무시하고 모든 축척 지도에 지명이 표기되도록 하자고 제안할 수는 있다.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충분히 논의가 가능한 건설적인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덕일의 지적은 그런 수위가 아니다.
이덕일은 위 지도들이 "검은 상자를 만들어 울릉도를 표기해놓고는 독도를 누락시켰다. 우리의 강역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망상이고 어거지이다. 지도 작성자가 독도를 우리 강역에서 제외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검은 박스 자체를 직사각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독도 따위 무시하고 그냥 울릉도만 표기하면 되기 때문이다(아래 지도에서 본인이 그려 넣은 빨간 색 네모 박스 참조). 그러나 해당 지도들은 모두 박스를 직사각형으로 좌우로 길게 만들어 놓고 있다. 왜 그랬을까. 박스 안에 동일한 축척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보이는가. 독도가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잘려져 안 보이게 해놨다. 그야말로 악의적인 편집이 아닐 수 없다. '의도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그리고 밑에 떡하니 박혀 있는 '출처: 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바로 이덕일의 책을 출판한 회사이다.
이번 해프닝의 결론은 이렇다. 다시 한번 이덕일의 망상과 낚시질에 세상 사람들이 놀아났다는 것이다. 이덕일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달리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는 있다. 오히려 없는 것은 이덕일의 양심이다.
또 한가지 지적할 점. 8년간 47억 원을 투입해 진행했던 국가 연구 프로젝트가 한 얼치기 사기꾼의 농간에 놀아나며 무산되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게 다 사기꾼의 말에 사리판단 못하고 놀아나는 무능한 국회의원들 탓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 탓이기도 하다. 이덕일의 해악이 이렇게 크다.
출처 | http://kirang.tistory.com/m/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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