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플라자에서 화제가 되었던 글
외제차 타는 분 보세요
- 서정은 죽고 뜨거운 검은피만 남았다.
나는 소위 명문(?)대학을 마치고 22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그곳에서 나는 6개월을 병든 개처럼 누런 눈을 위로 굴리며 다녔다. 무엇 때문에 한참 나이에 이 꼬라지로 변했을까? 이유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갔었다. 다들 창구와 1m의 간격을 두고 띄엄 띄엄 한가하게들 서있는 것이 아닌가. 난 생각했다. 다들 뭔가를 기다리거나 별로 바쁘지가 않은 모양이다. 난 찬스!라고 느끼고 얼른 창구 앞에 다가가 편지지를 내밀었다. 그 순간 우체국 직원은 나를 향해 못마땅한 목소리로 뭐라 한마디를 던졌다. 기습적인 한마디에 난 잘 알아 듣지를 못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내 자리를 지켰다. 그러자 이제는 직원이 일어나 손가락으로 내 뒤쪽를 가리키며 '저리로 가서 기다려라' 말을하는데 뒤를 돌아보니 경멸의 눈초리, 호기심의 눈초리... 마치 희귀 동물을 보는듯한 시선이 내게 마구 박히고 있었다. 난 꼬리를 내리고... 그래도 내깐에는 한국인의 긍지를 잃지 않으려 태연한 척 했지만 내 차례가 올때까지 벽전체가 노란 느낌이었다. 모두들 창구로부터 떨어져 줄을 서있다가 호명을 하면 한사람씩 일을 보는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난 살기위해 먹을 것을 사러 수퍼마켓에 갔다. 난 한국인의 긍지를 세워 위풍당당하게 문을 열어 제치고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몇걸음도 내 디디기전에 뒤에서 한 여자의 짧은 외마디가 들렸다. 난 뭔가하고 돌아다 보니 내 뒤를 따라 들어오던 여자가 되돌아오는 문을 손으로 받으며 지르는 소리였다. 그러자 근처 남자 가운데 하나가 문을 열어주고 그 여자는 들어왔다. 주변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꽂히고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어리둥절 한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잠시 생각했다.
'맞다, 이건 인종차별이야, 내가 동양인이라고 이것들이 내게 시비 아닌 시비를 거는가 보다.'
난 슬그머니 피어 오르는 적개심을 전의로 바꾸며 그들을 쳐다 보았다. 한가지 알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 여자의 문을 잡아 주었던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남편이나 친적 혹은 남자친구로 생각했는데 서로가 전혀 남남처럼 제 갈길을 가는게 아닌가. 왜 쓸데없이 모르는 여자에게 문까지 잡아주는지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 그 남자는 호텔 도어맨이 아닐까. 직업의식에 젖어 그런 짓거리를 했구만. 그런데 이상한 일은 늙고 젊고를 떠나 모든 남자가 여자까지도 자기 뒤에 사람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문까지 잡아주고 나에게도 그러는게 아닌가. 참 이상했다. 그후 나도 따라 흉내를 냈더니 뒷사람이 친근감있게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재미있어 그후부터는 늘 뒤에 사람이 있는가 보고 문을 잡아 주었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살수가 없다나. 말 그대로여서 1천2백불(70만원)을 주고 중고차를 샀다. 그런데 심심하면 경찰차가 세우고는 딱지를 떼는게 아닌가. 이유는 스탑싸인(멈춤) 표지에서 멈추지를 않았다고 한다. 난 박박 우겼다. 분명히 멈췄는데 뭔 소리냐, 이거 인종차별 아냐! 그러자 경찰은 멈춤 표지 앞에서는 3초간 완전히 정차 한 후 출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깐에는 완전히 섰고 물론 3초까지는 아니지만 사방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하고 출발 했건만, 게다가 좁다란 골목길 정도에서 무슨 놈의 딱지를 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더 버티다가는 불리할 것 같아 딱지를 받았다. 그후부터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모두가 완전히 정차할 뿐만 아니라 누가 있건 없건간에 무조건 멈춤에서는 멈추는게 아닌가. 난 생각했다.
'양키들은 역시 덩치만 컸지 미련해, 적당히 융통성이 있어야지!'
그래도 딱지 뗄까봐 눈치 봐가며 3초를 섰다가는데 나는 역시 한국인이라서 3초를 세는데 왜 그렇게도 긴 지 등에서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한번은 네거리 교차로에서였다. 신호등도 없는 교차로에 양쪽에서 차가 거의 동시에 섰다. 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양키에게 절대 양보를 할 수가 없어 잽싸게 엑세레이타를 밟고 먼저 통과를 했다. 역시 어느 사거리에서든 난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늘 먼저 통과를 거듭했다. 그런데 기분 나쁜 일이 생겼다. 하루는 덩치가 제법있는 양키가 탔는데 나보다 조금 먼저 도착을 했다. 난 에잇 어쩔수 없다, 이놈 먼저 보낼수밖에... 하고 있는데 글쎄 이놈이 내게 손짓을 해가며 너부터 가라는게 아닌가. 난 '야! 이 양키도 내가 자랑스런 한국인임을 알아 뫼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얼마 오래 가지를 않았다. 교차로에서 보니 양키녀석들이 여자나 노인같은 약해빠진 보호대상자(?)들에게 선심을 쓰는 것으로 내게도 이런 취급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참 이상하다. '미국에서는 약자에게 양보를 하는게 강자로 보이는 거라나' 난 그후부터 교차로만큼은 틀림없이 양보를 했다. 그런데 한 맹랑한 꼬마 녀석에게 당했다. 나이는 이제 고교를 다닐 것 같아 보이는 놈이 내게 먼저 가라고 엄지를 펴들고 흔드는게 아닌가. 나도 '야! 이놈아 네가 먼저 가라'고 엄지를 휘둘렀더니 글세 딴데를 보면서 못본척 하는 것이다. 난 어쩔수 없이 강의 시간에 쫓겨 먼저 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상한 나라다. 우리 한국에서는 약자가 강자에게 양보를 하는게 전통이며 당연한 것으로 여겨 '서로 먼저가려고 싸움질 하고 죽음의 사고로까지 이어지는데 이나라에서는 약자에게 양보하는게 강자라니...' 그래서인가 이제 x알에 털도 안났을 어린 녀석들이 여자아이들에게 기사도를 발휘하고...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보는데... 역시 우리나라는 역사와 전통있는 나라다. 예의와 법도가 있지 어찌 여자에게 남자가... 힘으로 보나 머리로 보나.
점심을 먹으러 맥도널드에 갔다. 주문을 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한 중년 여자가 한입 베어물다만 햄버거를 가지고 카운터로 와서 식은걸 줬으니 신선한 것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그 순간 왜 근처에 앉아있던 내가 긴장이 되는지. 난 '이거 볼만한 일이 벌어지겠구나, 아마 저 중년 여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일거야'라는 생각에 먹던 작업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왠일인가 카운터 종업원은 웃으면서 친절하게 새로 만든 햄버거를 주면서, 뭐가 좋다고 맛있게 드시라는 말까지 덧붙이는 것이다. 난 이거 둘이 짠 것 아니면 둘다 정신이 이상한 것이라 결론 지었다.
그런데 1년후 파트타임으로 내가 그곳에서 용돈을 벌면서 안 사실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손님에게 식은 음식이나 시간이 지난 것은 주면 안된다며 만들어 포장을 해놓은 햄버거를 모두 버리는게 아닌가. 너무도 아까워 '이것들 이러다 천벌받지 저 아까운것을...' 일이 끝난후 버린 햄버거를 슬쩍 몇 개씩 가져 가다가 어느날은 걸려서 해고 당했다. 부자 나라여서 마구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차후, 역시 '인간을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원칙 때문에 그러는구나'하고 바뀌었으며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부강한 나라의 힘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당장의 이익 챙기기에 눈이 어두워지는 근시안 적인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작금 IMF 시대에 절감한다.
처음 미국에서의 학업은 죽을 맛이었다. 공부의 방법이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한국에서의 대학시절에 강의는 대충 출석이나 하고 어떤때는 제끼는 것을 하나의 낭만으로 여겨왔었다. 대부분의 교수님도 열정은 있을지 몰라도 강의법이 늘 같았다. 시험은 예상문제와 답을 외우고 그것도 버겨워... 학점도 그것에 따라 대충... 시험이 끝나면 막걸리 집에서 담배 꼬라물고 시국토론이나 하고 그 핑계로 가슴아파하며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고 미팅나가 여학생 앞에 심각 근엄한 얼굴로 전공얘기에 열올려 꼬시고... 4년이란 세월이 이처럼 흘러갔다. 그러다가 미국에 도착 할때만해도 괜한 낭만도 기대하며, 그동안 한국에서 익히 들었던 '공부는 세계에서 한국 학생이 제일이야, 머리는 어떻고 유대인 다음일 것이야' 게다가 공부만큼은 자신감있게 해왔으므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착후 자식까지 주렁주렁 달린 선배 유학생들의 얘기를 들으니 석사하나 받는데도 3년이 넘거나 혹은 받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옮겼다는 말도 들리고 제일 빠르게 받은 기록이 2년 6개월이라는 말도 들리는데 모두 토플도 거의 600에 가깝고 누구는 GRE 성적도 기록적이라는데 출신학교도 S, Y대등 모두 만만치않은 사람들이 왜 이처럼 문드러졌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첫 강의부터 난 만만치 않음을 절실히 느꼈다. 교수가 왠 카드를 가지고 들어와 포카처럼 섞더니 이름을 호명하고 호명된 사람은 미리 준비해 온 것을 발표하지 않는가. 이거 뭔가 크게 잘못되어감을 느꼈지만 때는 늦었다. '킴'을 호명해 난 출석 부를때처럼 응답만 했을뿐 얼굴이 빨게져 아무말도 못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첫 강의를 자기 소개등등으로 그냥 지나치는게 보통인데... 이거 혹시 기죽일려고 그러는거 아냐? 강의 일정표를 보니 강의중에 이처럼 하는 테스트, 매주 쪽지시험, 리포트등이 각각 몇%씩 점수로 배정되어 있었다. 난 콧방귀를 뀌었다. 한국에서는 이것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매주 내주는 리포트가 누구것을 베끼지도, 아니 참고하지도 못할 정도로 사람마다 다른데다가 적당히 하기에는 보통 벅찬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금요일부터가 주말이라 연 3일을 푹 쉴 수 있을 것을 기대했었는데 도서실에서 자료 찾느라 살다시피해도 버겨울 정도였다. 주말이 악몽이었다. 주말이 이처럼 싫어지기도 처음이었다. 매주 보는 시험도 냉정할 정도로 한번도 빼먹지 않는데다가 무지막지하게 점수를 메기는데 결국 위드드로우(철회)시키는 과목이 생겨났고 정말 살벌함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대학생들을 가리켜 어른들이 '시계추 학생' 즉 세월 보내다 때가 되면 모두 졸업한다고 말하지 않은가. 그런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은 정(?)이 많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숨쉴틈을 주지 않는 환경때문인가, 한국 유학생은 모두 한국인 교수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심지어 한국인 교수밑에 들어가기 위해 전공까지 바꾸는 경우도 많다. 대충 보낸 과거 한국에서의 대학 시절이 그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융통성이란 말을 앞세워 대충대충 적당히 하던 습관을 고치자니 고생도 많았다. 캠퍼스외에도 한국인과 다른 동양인을 구별하기란 쉽다. 한국인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인상이 굳어진채 다니면 거의 틀림이 없다. 한국인은 왁자지껄 잘 몰려 다녀 어디서든 쉽게 구별된다.
또 하나 고치기 어려웠던 습관은 대학 주변 환경때문이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생긴 작은 도시건만 주변에 쉴곳(?)이 없었다. 술집은 씨가 말랐는지 찾을수가 없었고 기타 위락시설이 없었다. 유흥을 즐기려면 타 도시로 나가야 한다나. 물론 즐길 여유가 없어서 유흥업소가 들어서봤자이지만 이거 너무하는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유흥을 즐기려면 도리어 대학가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래서 그동안 먹고 즐기고 좋았는데 이건 심산유곡에 수도하러 온 셈이었다. 그래도 미국에서 10위안에 드는 중부 최고 명문대라는 곳이 이래서야 어디 말이 되는가. 도대체 이들은 머리를 어떻게 식히는가 봤더니 고작 테니스를 치던가 조깅을 하는거 외에는 책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 유학생들은 가끔 주말이면 모여 술도 사다가 거나하게 취하고 관악인의 자랑 포커도 치며 서글픔을 달랬다. 형수님들이 해주시는 바비큐로 외로움도 달랬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한국인은 파벌을 안 나누면 재미가 없어서인지 교회를 다니고 안 다니고 교회도 어느 종파인지... 별것도 아닌 것으로 알력도 많았다.
미국인은 다인종이 모여서 이룩된 나라여서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학생회장 선거로부터 시장, 주지사, 하원선거까지 모두 '연'을 무시한채 자기와 뜻이 일치하는 사람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누가 당선이 되건 축제분위기를 만든다. 마치 축제를 위해 선거가 있는 것 같아 진한 맛이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우리는 '연'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지향하던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건 상관하지 않는다. 고로 낙선되면 곧 나도 망한것 같은 허탈감이 들며 당선이 되면 그의 정책이 당선된 것이 아니라 내가 당선된 것으로 난 이제 바야흐로 '뜬'것이나 다름없다. 이 얼마나 스릴 넘치고 긴박감이 있는가. 인간 사는 맛이 절로 난다.
미국에서 첫 일년은 생활 습관에서 당혹스럽고 황당했다. 원칙에 무조건 철저한 것이 처음에는 매우 불편했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편안하고 합리적인가도 알게 됐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가 보다' 깨달으며 인종적인 것을 떠나 생명체를 가진 인간은 이런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동안 무조건 편견을 가지고 생각하려는 자세도 완벽하게 뜯어 고쳤다. 그랬더니 정말 피부색은 달라도 정직하고 성실하면 나의 편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듯 완벽한 미국인이 되는데 3년이 걸렸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용기가 무엇이며 큰사람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5년이 지나 귀국을 해서 모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귀국을 하는 공항에서 어머니의 말씀이 '어째 네가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하나같이 꼬지지 하냐?' 난 뭔 말씀인지 몰랐지만 거리를 나가보고는 알 수 있었다. 남녀 모두가 패션 모델이며 옷이 무척이나 화려하다는 것을. 편안함 보다는 화려함을 쫓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임을 알았다.
난 연구소에서 또다시 당황스런 일들을 겪게 된다. 연구소라기 보다는 요술방망이를 가진 마술쇼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포진해 있는 것이다. 금방 결정하고 무조건 밀어부치다 금세 바꾸고 적당히 요령껏 베끼기를 해야 살아남는 막말로 야바위꾼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학자는 고사하고 장사꾼을 요구하는 곳임을 알았고 그런 것이 결국 유능한 사람들을 도로 외국으로 내몰고 나처럼 돈에 팔려 눈치를 보는 사람들만 그럭저럭 모여있게 되는 집합소였다. 차라리 되돌아가 포스트닥으로라도 있을까 하는 갈등에 몇 년동안 잠을 설쳤다.
황당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30초도 되지 않은 여점원의 설명을 듣고는 맘에 들지 않아 돌아서면서 그래도 설명이 고마워 혹은 의례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고마와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네요'하며 돌아서는 뒤통수에서 그녀의 '쳇'하는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했지만 곧 원인을 알았다. 내가 했던 '고마와요'가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 마음의 티꺼움이 입을 통해 뱉어졌던 것이다. 차라리 인상 구기며 돌아섰다면 그 소리는 안들었을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중앙선에 한 젊은 아기엄마가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는 차 사이에서 아슬아슬 서 있었다. 나는 차를 멈추고 그 여자가 아이와 건너기를 기다렸지만 내 옆을 지나는 어떤 차도 서지를 않았다. 도리어 내 뒤에 있던 택시운전사가 옆으로 차를 거칠게 빼며 '야 이 x끼야 똑바로 운전해'라며 욕설을 하고는 횡하니 달아났다. 나도 무안하며 한편으로는 괘씸한 마음에 그냥 갈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였다면 모든 차가 멈춰서서 그 아기엄마와 아이를 건너 주었을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누가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마음으로 동감하는 일이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교육만 제대로 되면 우리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경꾼의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교육받은 자는 착한 사람 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의 위험을 보고도 몰인정한 것을 교육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한번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파란불인데도 버스가 밀고 나오는 것이다. 위협을 느꼈고 화가났지만, 일찌감치 뛰어 건너지 않은 나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뒷사람을 챙겨 문을 잡아주었더니 어떤 사람은 나를 불쾌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혹은 웃는 얼굴로 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상하게 보아주었다.
우리 한국인은 '먹고 살기위해서'라면 모든 것에 면죄부 내지는 법 위에 서있게 된다. 그러다보니 운전을 하더라도 버스, 트럭, 택시에게는 무조건 절대 양보를 해야 사고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사람에게는 자세를 낮추고 무조건 죄인처럼 굴어야 굳맨(좋은사람)으로 인정받는다.
한국에서는 남보다 잘살면 일단 죄인 취급을 받는다. 그가 어떤 노력을 했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건 간에 무조건 '그러면 안되지~~안되여~~~' ...... 학교에서도 실력있는 학생은 그저 알아서 기던가 입조심, 행동조심을 하지 않으면 곧 공격받게 된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앞에 나와 힙합 춤을 추면 멋있다 개성있다라는 소릴 들어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나와서 춤을 추면 저거 또 잘난척 한다는 소리밖에는 들을게 없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평소에 아이들에게 슬쩍 답안도 보여주고 그들과 어울려 하기 싫더라도 그들과 동질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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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프로농구가 용병을 수입하여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하여 농구의 참맛을 보여 주어도 농구장의 열기는 도리어 식어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빠부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농구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농구하는 잘 생긴 오빠들에게 성적인 대상으로서만 즐깁니다. 그 오빠가 잘 생겼으면 반칙을 해도 열렬히 응원을 하고 오빠가 퇴장을 당하면 심판을 저주하며 울부짖게 됩니다. 농구협회에서는 장사가 안된다며 비싼 돈 주면서 용병 사들이는 것을 IMF 시대이니 고려해 봐야 한다고 합니다. 실력보다는 키크고 잘생기고 섹시한 아이들을 뽑아서 농구를 시켜야 연일 농구장이 매진사태 행진을 할거라나.
직장에서도 진정 실력있는 사람은 매장되게 되고, 처세력이 있는 자가 실력자가 되는 것이 지금까지 현실입니다. 이 얘기에 내 직장은 그렇지 않다 내 주변은 그렇지 않다고 볼멘 소리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확실히 행복한 직장과 동료들을 가진 분일겁니다.
모두가 평등하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마음을 나쁘게만 보지 맙시다. 어찌보면 '하늘아래 만인은 평등하다'를 몸소 실천하는 유일한(?) 민족일 수도 있지요. 선거때 보니 정책 같은 것 관심가지고 투표하는 사람 드뭅디다. 말은 관심이 있다고 해도 TV토론도 지켜보고 어쩌구 하지만 막상 찍을 사람 정할때에는 '그래도 xx이니 xx를 찍어줘야 하지 않겠나.' '그 사람 어디 사람이니 찍어줘야 않겠나.'가 대부분입니다. 그게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절대 안바뀝니다. 가문 혈통 능력 따지며 부모들이 장가 보낼때까지 우리 새끼하며 치마폭에 넣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일본인들이 36년 일제하에서도 민족성을 빼앗지 못했던 한국인의 정서. 일본인들에 비해 문화생활이 뒤떨어지고 그들보다 추접해서 '한국인은 더럽다'고 외치며 심지어 자신들과 동질성까지 내세워 창씨개명을 하였어도 바뀌지 않았던 '한국혼'이 바로 이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술에 취한채 비틀거리면 잡혀가기 때문에 술도 집에서 곱게 마셔야 했지만, 우리 한국인은 식당에서 떠들며 왁자지껄 먹고 술에 취해 길에서 방뇨도 하고 먹은 것 궤기도 해야 술마신 기분이 드는 것, 바로 그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원칙보다는 대충 꿰어 맞춰도 그런대로 돌아가고 그러다가 거덜나면 또 죽어라 일해서 일어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차분히 감정을 억누르고 논리로 풀어 나가기보다는 일단 'x팔 놈아'부터 내뱉고 눈을 부라리는게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그러다가도 경찰서에 가면 손이 파리손이 되어 살살 부비는게 바로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결혼하기전과 결혼후에 모습이 싹~ 바뀌는 것 그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 와서는 먼저 계산하려고 남을 떠미는 것, 줄서기보다는 먼저 창구에 슬그머니 들이밀어 운 좋으면 내것 먼저 하게 하는 도박근성, 스릴을 좋아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반만년 역사의 뒷장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지금까지 한결같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지 변치않는 근성, 바로 그것이 한국인의 근성입니다.
미국에서 미국인이 되는데는 3년이 걸렸지만, 귀국해서 이것을 운명적으로 깨닫고 다시 한국인으로 거듭나기까지는 7년이 걸렸습니다. 미국인의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면, 그것으로 오늘날 부강한 국가가 되고, 수많은 인종이 섞여있어도 단합되는 저력이 부러워도,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뭐가 좋은 것인지 그래서는 되고 안되고를 다 압니다. 그러나 한국인이기에 안되는 것을 어찌합니까?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되는 것을 어찌할까요?
님의 글에 당장은 동감을 하고 또한 한국인 특유의 흥분에 의해서 격려를 할 지라도 엄마가 주는 용돈이 끊어지고 사회의 냉정함속에 추위를 느끼게 되면 님을 욕하게 됩니다. 어이가 없어도 아무리 설득을 한다해도 그들은 갖가지 주장을 펼치면서 '님의 외제차를 타는 모습'에 이빨을 드러낼 것입니다. 참으로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죠? 그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평소에 외제차를 타고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대놓고 따지러드는 종업원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위기에 몰려 사장님이 말그대로 '끈떨어져 나간 연 신세'가 되면 종업원들은 바로 돌변 합니다. 험악한 얼굴로 밀린 임금 주지 않으면 집에 불을 콱 싸지르겠다고 덤벼들겁니다. 그동안 좋은차에 좋은 음식 먹으며 자식들을 잘 교육시켰으니 이제는 당해 보라고 소리칠 겁니다. 평소에 작은 차에, 종업원들과 같은 식당에서 먹으며 월세내지는 작은 집에 세들어 살며, 종업원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며, 지적인 말투를 버리고 그들이 쓰는,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배열한 말을 하는등, 최소한의 외양만이라도 바꿔 준다면 그들은 월급도 마다하고 보너스도 반납하는 등 회사를 살리겠다고 분주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지역구민들에게 나설때면 더러운 땅바닥도 마다않고 넙죽넙죽 큰절을 합니다. 시장통에 새우젖 국물이 묻은 손도 더럽다 마다않고 덥썩덥썩 잡아 줍니다. 그러나 당선이 되면 얼굴에는 개기름, 목에는 시멘트로 기부스를 한채 고급차에 앉아 다닙니다. 모두가 속았다고 느끼지만 어쩔 도리가 없을수밖에. 그러다가 또 선거철이 오면 잠바를 입고 다시 전으로 돌아가며 구민들은 그에게 한표를 던져 줍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서 입니다.
젊었을 때 부정부패를 개탄하다 사회에 나오면 바로 부정부패의 주역이 되는 두얼굴을 가진 것이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젊은이들을 보면 희망이 솟고 기성세대를 보면 절망이 드는 마치 아침에 태양이 솟을때와 노을이 질때의 태양이 다르듯이 태양의 얼굴을 한, 태양같은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은 모두가 신념에 찬 지적인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위치에 있건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한국인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국산차는 겉은 화려하고 매력적이라도 실상 속은 무른 호박같은, 한번 부딪혔다하면 자동차인지 휴지조각인지 구분이 안가게 되는것도 이러한 한국인의 바램을 잘 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인이기에 한국인의 근성을 뿌리 깊게 가지고 있고 피속에서 흐르고 있기에 결코 변할 수 없고 변하지도 않을것이기에 한국인의 정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국에서 산다면 로버트 할리도 이한우도 이다도시도 모두 한국인의 정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랑스런 한국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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