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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 선생은 1911년에 쓴 〈대동민족사론〉에서 “영평부 지경 안에 조선성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영평부는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을 뜻하는데, 명·청시대에는 영평부永平府였다. 영평부에 조선성이 있었다는 중국 사료는 많지만 여기에서는 청나라 역사지리학자 고조우(顧祖禹 ;1631~1692)가 역대 역사지리지를 참고로 편찬한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만 살펴보자.
고조우는 “조선성이 영평부 북쪽 40리에 있는데,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다.”라고 썼다.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 북쪽 40리 지역이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 자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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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죠? 중국 하북성에 평양이 있다는 말 아닙니까? 이하 식민사학의 주구들 지금까지 이런걸 숨기다니...
근데 아래 원문링크를 따라가 보면 나오지만, 그 뒤에 "교치"가 나옵니다.
교치는 한반도에 있던 한사군이 망한다음 그 지명과 주민들을 하북성 노룡현으로 이주시키고 옮겨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해당 지역이 조선성이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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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조우가 쓴 글은 '한나라 때 낙랑군 속현 조선현'은 지금의 조선 경내 즉 평양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지, 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곳이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는 걸 입증해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설명이 됐을지 모르겠다. 사실 소장께서 이야기하시는 1차 사료(?)에 나오는 하북성 근처의 '낙랑', '조선' 관련 지명들은 거의 대부분 위에서 말한 '교치' 때문에 생긴 후대의 산물들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을 잘 이해 못하셔서 '사료가 있는데 왜 믿질 못하니'라며 뒤늦게 설렁탕 사온 김첨지 같은 말을 되풀이하시고 있는거 같은데 이제라도 좀 더 꼼꼼하게 사료를 보셨음 좋겟다. 그리고 고조우는 이제 그만 들먹거리시면 좋겠다. 저승에서 고조우가 화내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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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앞에 말만 인용하고 뒤는 쏙 빼먹은 거죠.
보너스로 박은식선생의 저서제목은 "대동민족사론"이 아니라 "대동고대사론"입니다.
민족사학자 이덕씨께서는 이런 사소한 팩트에 대범하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틀리시더군요.
심지어 앞에 고조우 원문 인용조차 뒷말을 빼놓은걸 지적당하면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엄청나게 큰 배포를 자랑하시죠.
이런 인간이 이렇게 나대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걸 보면,
절 포함해서 세상사람 대부분이 바보인게 맞아요.
출처 | https://www.facebook.com/kaya.wee/posts/1399666546794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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