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헤드폰 게시판이 생기면 꼭 올리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우선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음악 프로듀싱을 공부하는 대학생임을 먼저 밝힙니다...!
10~30만원대 이어폰으로 충분히 귀 호강하고 나시면, 슬슬 더 비싸고 크고 아름답고 한 단계 높은 이어폰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누구나 그럴겁니다 왜냐면 제가 그랬거든요 헿
나도 이제 슬슬 귀 뒤로 거는 이어폰 함 써 볼까... 아이유찡이 무대에서 쓰는 535가 그렇게 좋다던데... 하며
인터넷을 뒤적뒤적이던 당신, 잠깐만요! 마우스 잠깐 놓고 얘기해봅시다. 혹시 모니터링 이어폰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모니터링 이어폰을 사용하는 목적은 말 그대로 '모니터링'입니다.
음악감상용 이어폰과 달리 상대적으로 더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청음하기 위해, 음감용과는 다른 방식으로 튜닝된 이어폰들입니다.
이어폰 성향이 매우 플랫합니다. 스테이지 모니터링 이어폰은 보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잘 캐치하기 위해 중음이 약간 강조될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음감용 이어폰이 각 브랜드와 제품군에 따른 특유의 튜닝 방식으로 음악을 더욱 맛깔나게 뽑아내기 위함을 목적으로 개발된다면,
모니터링 이어폰은 얼마나 음악을 보다 사실적으로, 마치 울엄마의 쌩얼같이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고 보여주는가에 있어 그 역량을 평가받게 됩니다.
음감용이 로우, 미들, 하이의 출력을 각각 높이거나 낮춰서 이어폰 특유의 성향을 만들어 음악을 예쁘게 꾸민다면,
모니터링 이어폰은 최대한 음악을 플랫하게 만듭니다. 조미료나 소금이 안 들어간 곰탕만큼 심심할 수도 있어요.
언젠가 아버지께 SE425 모델을 사 드린 적이 있습니다. 쓰고 계시는 이어폰보다 좋은 놈을 찾으시길래 이만하면 좋겠다 싶어서 사다 드렸는데,
며칠 안 돼서 이전에 사 드렸던 얼티밋이어의 10만원대 이어폰으로 컴백하셨습니다.
소리가 너무 심심하다, 오히려 음질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저음이 강조되어 있는 이어폰을 쓰시던 아버지께 상대적으로 저음이 약하게 들리는 SE425는 뭔가 둥둥둥둥둥둥하고
귓고막을 울리는 그런 짜릿함! 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제 필력의 한계네요.
음질이 안 좋아진 것 같다는 이유는 음원 압축 방식에서 찾았습니다. 192kb mp3를 듣고 계셨네요.
wav는 아니어도 최소한 320kb mp3는 들어야 괜찮은 음질로 들을 수 있다고 설명드리긴 했습니다.
기존 이어폰에서 말끔하게 들리지 않았던 저용량 압축파일에서 나오는 중고음의 치찰음 등이 모니터링 이어폰으로는 단번에 들리니,
아버지께서 더 비싼 이어폰 꼈는데 소리가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라고 하신 것도 이해가 갔었습니다.
지금 SE425는 제 세컨드그런 거 아닙니다로 지금까지 현역으로 잘 뛰어주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꼭 음감용이나 모니터링용 둘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정의내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둘의 용도가 확연히 다르고, 또 개인의 성향에 따라 살짝 색이 입혀진 쪽이 좋거나 아예 플랫한 음색이 좋거나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청음도 한 번 해 보지 않고 슈어가 좋다던데, 535가 국민이어폰이라던데, 846이 120만원 값어치를 한다던데 하면서
비싸면 좋다! 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채로 카드를 긁었다가 후회하시거나 환불하시는 케이스를 많이 봐 왔습니다.
BA드라이버에 귀 뒤로 줄을 넘기는 그런 하이엔드스러워 보이는 이어폰에도 음감용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청음해보시고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이어폰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모니터링 이어폰을 쓴다, 아니면 그쪽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모니터링 이어폰을 쓴다고 해서
음악을 소비하는 소비자까지 꼭 모니터링 이어폰을 씀으로써 음악생활에 꼭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혹시 압니까? 모니터링용은 어떤지 함 들어보자 하고 청음해봤는데 플랫한 음색이 딱 내 타입이네! 할 줄이야 누가 알겠습니까?
비싼 돈 주고 좋은 이어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모니터링 이어폰이라는 명칭에 맹목적으로 현혹되시기보다
자신의 청음생활에 있어서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를 먼저 잘 고민하시고, 최대한 많은 이어폰을 사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저음 풍부한 이어폰 헤드폰 참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보스 이어폰이 좋습니다.
다만 음악을 프로듀싱과 엔지니어링의 개념에서 연구하는 학생으로서 보다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접하는 걸 습관화하기 위해
이쪽 분야로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음감용 이어폰은 웬만하면 귀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주력으로 사용하는 Westone사의 UMPro50을 구매할 때에도, W60까지 갈 예산이 충분히 있었지만 모니터링 용도에 맞추어
한 단계 아랫 등급으로 분류되는 엄프로를 골랐습니다. W60에 내장된 드라이버가 엄프로보다 양쪽 한 개씩 더 많다고 해도
제가 추구하는 청음적 부가가치는 더 많은 드라이버 갯수가 아닌 플랫하고 사실적인 튜닝이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SRH846 꼭 사고 싶었는데 귓구녕이 작아서 30분만 착용하고 있어도 귀가 얼얼해옵니다.)
저처럼 평범한 가요를 듣더라도 스튜디오에서 갓 나온 작업의 결과를 듣는 습관을 들이듯이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소비하는 음악을 나의 스타일에 맞게 꾸며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본인들께서 추구하는 스타일대로 청음 라이프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모니터링 이어폰을 뭔가 까내리는 듯한 어투로 글을 작성한 것 같은데...
이 참에 모니터링 이어폰 구매하셔서 가감없이 플랫한 음악의 묘미에 빠져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제가 보증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