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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2819
    작성자 : 눈비비고
    추천 : 12
    조회수 : 1746
    IP : 122.128.***.142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1/10/15 16:28:38
    http://todayhumor.com/?history_2819 모바일
    어심을 읽어라 - 조선의 왕들


    이전에 쓴 글 몇 개 올립니다. 찾아보니 이 얘기는 악진님이 여러 차례 해 주셨네요. (- - );;
    -----------------------------
    이전 절사손장자 편을 기억하실 겁니다. 조선시대에 많은,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정통성이 부족했다구요. 때문에 그들은 신하들에게 끌려다녔고, 그것이 당쟁이며, 왕권 강화를 꾀한 왕들은 따로 역사에 남았죠.

    헌데, 뒤집어 보면 어떨까요?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건 그만큼 정통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아버지를 추숭한다든가, 어머니가 후궁이면 왕후로 추숭한다는가 하며 온갖 애를 썼습니다. 이 과정에서 얻는 경험치가 하나도 없었을까요? 안 받은 사람도 많지만, 그들이 받았던 세자 수업, 대리 청정까진 아니더라도 아버지가 하는 걸 보며 얻었던 실습 경험, 이것들이 단지 유교 윤리 뿐이었을까요?

    능력은 천성 외에도 필요에 의한 노력으로 얻어집니다. 그렇다면?

    정치력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흔히 이 두 가지를 엮어서 말하기 때문에 애매하지만, 두 개 사이에는 큰 선이 있죠. 하나는 실무 능력,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권력을 잡는 능력이죠.

    정통성이 부족했던 조선 왕들, 그렇다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정치력에서만큼은 최고여야 하지 않았을까요?

    시작하겠습니다.

    1. 태정태세문단세
    - 태조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망국의 군주 공양왕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애처롭네요. -_-;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새로 왕위에 오른, 이씨의 새로운 나라를 만든 이성계의 취임 연설입니다.

    "내가 만약 몸만 건강하다면, 필마로도 피할 수 있지마는, 마침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태조 이성계는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는데, 신하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도 거듭 거듭 사양하다가 한 말이 이거였죠. 몸만 건강했으면 말 타고 도망갔을 건데 -_-;

    유교가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안 이렇겠습니까. 조선도 시작은 이랬습니다. 뭐 서양도 비슷할 걸요. 왕관을 스스로 머리에 쓴 나폴레옹 정도나 다르겠죠.

    - 태종
    일일이 보면 길어집니다. 태종은 정말 이런 일의 대표주자거든요. 몇 번이고 벌인 선위 쇼. 신하들은 무조건 반대해야 했습니다. 대체 왕의 마음이 어떤 건지 모르니까요. 공신들을 숙청할 때도 그랬습니다. 신나게 누구를 처벌하라고 하자 태종은 절대 안 된다고 했고, 물러납니다. 그럼 태종은 "탄핵하라는 청을 하지 않은 자"들을 불충한 무리라며 처벌하라고 했죠. -_-; 당연히 더 달려들어야 했습니다.

    조선 시대, 직접적인 역모가 아닌 이상 거의 모든 일들은 [처벌 요구] -> [왕이 안 된다고 함] -> [더 큰 처벌 요구] -> [왕은 또 거부] -> [이젠 아예 죽이라고 함] -> [왕은 유배만 보냄] -> [아나 죽이라니까] -> [이응이응 가슴 아프지만 신하들의 말에 따르겠음] 이런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신하들의 반대가 줄면 자기가 다시 그 얘기를 꺼냈고, 또 그 짓거리를 해야 했죠.

    나중에 세종대왕에게 선위할 때, 이번에도 몇 일 동안 신하들은 반대합니다. 태종이 세종대왕에게 곤룡포를 입힌 걸 보고서야 그만두죠.

    - 시간 관계상 정종, 세종대왕, 문종, 단종 생략

    - 세조
    단종애사 편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언제나 주장한 건 다른 사람이었고, 그의 적들이 그를 없애고 임금마저 해하려고 했기에 벌인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단종에 충성했지만 단종은 "천명"을 알아서 그에게 선위했고, 세조는 울면서 안 된다고 계속 싫다고 하다가 강제로 받았습니다.

    2. 중간정리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원문은 무시하고 "순임금은 천하를 가졌으면서도 관여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높고 높은가"
    삼국지의 유비를 봅시다. 삼국지연의는 유비의 공까지도 모두 관장조(-_-)와 제갈량에게 줬습니다. 지금 보면 이게 과소평가지만, 유교에서는 이게 당연한 겁니다. 군주는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그저 신하들의 말을 잘 듣고, 어진 신하는 삼고초려로 등용해야 했죠. 그 자신은 아무것도 하면 안 됩니다.

    이에 따라 그가 잘 한 것도, 잘 못 한 것도 모두 신하의 공과 과로 돌립니다. 공이야 어차피 신하 공이라 해도 결정한 왕의 공 + 신하에게 맡긴 공으로 찬양받고, 못 한 거야 책임회피죠. 태조 이성계는 잘~ 하다가 정도전이랑만 엮이면 그에게 이용만 당하는 우유부단한 왕이 됩니다. 태종이 공신을 내친 것은 그가 한 게 아니라 신하들이 너무 강력하게 요구해서 눈물을 머금고 한 거였죠. 다 이런 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직접 만들었다는 건 강력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가 공을 자랑하려고 한 거였다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세종대왕의 업적 중에 훈민정음 창제가 들어 있는 사료가 거의 없고, 있더라도 한두줄입니다.

    특히 유교의 최종진화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에선 더 그랬습니다. 신하는, 왕을 까야 충신으로 대접 받습니다. 왕은 신하의 말을 정말 잘 들어야 하고, 신하의 말에 따라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3. 예성연중인명선
    - 예종 패스.
    - 성종, 연산군
    그런 면에서 성종은 대신과 대간에게 꽤나 휘둘렸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대신들에 대해서는 나름 할 만큼 했습니다. 그가 즉위하자마자 한명회를 디스했고, (여인천하 정희왕후편 참조) 이후에도 한명회를 제법 견제했습니다. 아예 내치지 않은 것은, 한명회가 공신이기도 했지만 절대 왕좌를 노릴 사람은 아니어서였죠.
    반면 대간들에겐 신나게 휘둘립니다. 그게 유교였거든요. 정통성이 부족한 성종은 유교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폐비 같이 자기가 밀어붙인 일에는 반대도 아랑곳 않고 처리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연산군. 그의 재위 초는 대간들과의 힘싸움만 계속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꼬신 간신들이 바로 유자광과 임사홍. 특히 임사홍은 폐비 윤씨의 진실을 그에게 알려주어 일을 키웠다고 하죠.

    하지만... 연산군이 그렇게 크도록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그는 정작 어머니의 기일에도 그 짓거리(-_-;)를 했습니다. 그는 숙청 과정과 후에 신하들에게 "입 열지 마라 -_-"라든가 충성이라든가 하는 패를 걸게 하고 모자에 적게 했습니다. 그는 몇 년이나 기다리면서 그걸 이루었죠. 그가 미쳤다 해도, 정말 치밀하게 미친 겁니다. 목표는 왕권 강화.

    - 중종
    남곤 등의 간신들에 휘둘렸다는 중종. 유명한 게 주초위왕이죠. 하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_-a
    그가 신하들에게 휘둘린 건 사실입니다. 연산군 때의 절대왕권 때문에 중종에게 아주 심한 견제를 했죠. 중종 역시 이들에게 손을 거의 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종 때 중용된 조광조. 그는 임금을 누를 정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의 요구는 무조건 받아들여졌고, 대간은 물론 대신들도 그의 말에 동조할 정도였죠.

    기묘사화 그 날, 중종은 남곤 등에게 밀지를 내려 조광조를 탄핵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그것을 따랐고, 조광조 등은 일망타진 됩니다. 사관조차 바뀌어서 그 날의 일이 적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일사천리로 조광조를 죽입니다. 이 때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 받은 남곤조차도 그를 죽이는 걸 반대했습니다. 원래라면 반대의 상황이 벌어져야 되죠. 남곤 등의 계속되는 반대 끝에 죽이는 수가 계속 줄었지만, 조광조는 마지막까지 남았습니다. 조광조를 죽인 건 그라는 거죠.

    후에 권력을 잡은 김안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도 동원된 건 밀지, 왕의 뜻이 아니라 신하들의 요구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거였습니다.

    일관성은 있어요. 자기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실제 마음은 어떻든) 권력이 컸던 자들에게 그는 어김없이 철퇴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밀지를 통해 신하들의 요청 때문이라는 명분을 만들었죠. 그가 허용한 건 자기를 위협하지 않는 자들 뿐이었습니다.

    - 인종 명종 패스

    - 선조
    그리고 선조. 당쟁의 피해자라 지목받는 그. 하지만... 그는 기축옥사 때 사건의 확대를 계속 명 합니다. 정철은 그의 명령을 받은 것일 뿐이죠. 그러면서 이산해, 정인홍, 류성룡, 김성일 등 동인의 영수급 인물들에게는 절대 퍼지지 않게 막았습니다. 키운 것도 그였고, 그 정도 선에서 막은 것도 그였습니다. 그의 정치력은 실로 훌륭했습니다. 한 명에게 절대 권력을 주지 않고 심심하면 바꿨죠. 양쪽을 견제했고, 그 덕에 왕권을 키웠습니다. 그러면서 동인서인 싸우는 것을 이용, 모든 잘못은 그들이 싸운 탓이라 돌렸죠.

    4. 광인효현숙경영
    - 광해군
    광해군은 좀 흔들렸죠. 허나 그 과정의 일들 역시 모두 그가 의도한 일들. 영창대군이 죽었을 떄 그는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덕이 없어서 애를 죽게 했구나. 대군의 에로 장사지내라."

    임해군도 영창대군도 직접 죽인 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명령 없었죠. 하지만 영창대군을 비호하던 이들은 쫓겨났습니다. 그의 뜻이 명료해진 거죠. 결국 그는 그들을 죽인 자를 벌하지 않았습니다.

    - 인조 효현 패스.

    - 숙종
    이거야 뭐 다른 말 할 필요 있나요. 수 차례의 환국. -_-; 그게 당파 견제든 지가 좋아하는 여자랑 살고 싶어서든 모든 건 그가 주도한 거죠. 즉위하자마자 송시열 욕 하고 그 송시열을 마침내 죽였으며, 나중엔 노론의 손을 들어 송시열 신격화를 가능하게 해 준 게 그입니다.

    - 영조
    사도세자가 죽은 후 후회했다는 영조. 이건 영창대군이 죽은 후 광해군이 한 말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예요. 영조 때는 권력이 정말 막강해져서 사관도 제대로 기를 못 썼습니다.

    5. 총평
    - 신권
    조선의 왕들은 대신, 대간들에게 많이 휘둘리긴 했습니다. 근데 그건 왕권이 강하고 약하고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조선의 시스템이 그랬던 겁니다. 왕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포기한 적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왕이 아니라 간신들이 꾸몄다는 많은 일들은 사실 왕이 주도했던 거였습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왕입니다. 신권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가장 발언권이 강한 건 그죠.

    어릴 때는 좀 휘둘렸을 겁니다. 커서도 휘둘린 적은 많았겠죠. 하지만 거기엔 결정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자기 왕권을 위협하느냐 아니냐. 위협하는 자는 없앱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조광조가 한 물 간 대신들 몇 명의 꼰지름으로 쉽게 죽을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왕이 그걸 주도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특히 사람의 죽음, 옥사나 사화 수준의 떼죽음이라는 큰 일에 있어서 신하의 뜻에 왕이 휘둘린 건 정말 몇 개 안 될 겁니다.

    - 당파
    그런 면에서 당파 싸움은 왕을 흔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파가 생긴 선조 때부터 당파를 마음대로 갖고 놀았습니다. 광해군은 그게 약해서 대북 천하를 만들어줬지만, 그가 좀 더 살았다면 이이첨이 멀쩡히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인조는 남들이 다 욕하는 가운데서도 김자점을 중용했습니다. 선비들이 산림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그는 친청파로 살아남았죠. 김상헌 등 척화파들에 끌려다녔으면서 나중엔 그들을 욕 하고, 최명길 덕분에 살았는데 최명길을 홀대했습니다.

    효종은 그런 산림들을 부르는 데만 재위를 다 바쳐서 예외로 하고, 현종은 그렇게 강력해진 산림, 송시열을 대표로 한 서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남인들을 끌어들입니다. 숙종은 그런 남인과 서인을 번갈아 내치면서 왕권을 강화했고, 그러면서 양 쪽은 완전히 원수가 됐습니다. 그 결과가 소론은 경종을 밀고 노론은 영조를 미는, 신하가 왕을 선택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 거였죠.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인재 풀은 더 줄 수밖에 없었고, 사회가 변하면서 동서남북 어디든 서울 출신만 등용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지방에서 올라올 새로운 물길은 끊겼고, 영조 때의 탕평, 나름 의미가 깊었던 그 정책의 부작용으로 외척들 앞에 나란히 줄 서게 됩니다.

    정조는 그걸 없애려고 외척들을 다 없애고 벽파와 남인을 키워서 당파를 다시 만들지만, 그 자신의 한계와 인재 풀이 말라버려서 더 이상 효과가 없었습니다. 밟아도 밟아도 올라왔던 남인은 벽파가 한 번 몰아내자 씨가 말랐고, 재기하지 못 합니다. 서인은 의리를 외치던 이들은 이제 다 죽었고, 김씨와 박씨, 조씨 집 앞에서 얼굴 도장 찍은 이들만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순조는 분명 이걸 방임했고, 헌종, 철종은 이 때 와서 바꾸래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상대가 달라졌으니까요. 각 당파는 아무리 싸워도 절대 변하지 않는 방침이 있었습니다. 왕을 까는 건 충신이니까 그런 거지만, 왕을 부정할 순 없었죠. 숙종이 죽은 후 경종, 영조를 서로 밀 때부터 망조를 보인 겁니다. 어쨌든 그들은 왕에 충성하면서, 유교의 논리대로 싸웠습니다. 하지만 외척의 세도 정치는 이런 논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당쟁은 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선조 때부터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쪽이 너무 크는 걸 막기 위해 일어난 것들이 각종 사화와 옥사였고, 그건 모두 왕의 의지였습니다. 왕권 강화의 수단이었구요.

    뭐 당쟁이 심하긴 했습니다. 서로를 죽이고 죽이고 죽였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숙종 때 이미 당쟁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조선의 모습은 주로 숙종 때입니다. 비현실적이고 따분한 선비들, 당쟁 속에 어우러지는 음모들, 허구헌 날 벌어지는 궁 안의 싸움들, 당쟁 때문에 쭈그러드는 왕... 동전이 유통된 것도 이 때였죠.

    숙종이 한 건 그의 최선일 수 있습니다. 너무 격화되긴 했으니까요. 그래서 자기 손으로 조종하려고 했던 건데... 그 숙종이 죽자 당 사이의 대립은 더 심해졌죠. 영조의 방법도 그런 면에서 좋긴 했습니다. 어쨌든 왕의 뜻을 따를 신하가 필요했고, 외척 중심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었죠. 그들이 세도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영조의 힘이 너무 막강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막강한 왕이 없어진다면?

    정조가 대리 청정 과정에서 받은 홍씨의 견제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스템을 무너뜨린 이상, 그 강력한 왕이 죽으면 뒤의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정조는 그래서 당파를 다시 만듭니다. 하지만... 그 역시 홍국영의 세도 정치를 만들었고 왕권을 너무 휘두른 면이 있습니다. 이 강력한 왕권으로 한 것이 시스템의 복원이었고 그 점에서 그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능력으로 봉합한 상처는 그가 죽은 후 다시 터질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파 싸움이 옳았느냐, 그 양반들이 아무 사심 없이 옳은 것을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왕을 휘둘렀느냐가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서로에 대한 견제, 그리고 왕이 이것을 조율하는 시스템이죠. 세도 정치 때는 이게 완전히 무너집니다. 헌종-철종은 조선 시대에서 확실히 "허수아비였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왕들입니다. 이게 생긴 것은 당파 싸움으로 나라가 혼란해져서가 아니라, 당파가 없어져서입니다.

    뭔가 얘기가 샜지만... 당파 싸움은 결국 유교 시스템에 걸맞는 것이었고, 전쟁 같은 게 아니라 그게 무너질 무렵에 조선이 기울기 시작했으며, 그게 없어지자 조선이 망해 간 겁니다.

    +) 얘기 샌 김에 본편에서 안 했던 얘기 하나 더. 정조가 보낸 어찰은 그 자신이 그렇게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구어체 투성이에 엉망에 이두는 물론 한글도 썼었습니다. 그것까지 생각한다면 그가 문체반정을 외치며 조선 전기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그리고 어릴 때부터 영조 앞에서 똑바른 모습만 보인 건) 그 천성과는 조금 다른,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조선은 회생할 수 없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입장에서야 틀려도 한참 틀리지만... 그 때의 입장에서 그는 정말 필사적이었던 거죠. 그 반대급부로 몰래 하는 얘기에서는 저런 쌍스러운 말들을 쓴 거구요.

    어떤 서양 외교관이 이랬다고 하죠.
    "깨끗한 룰과 확실한 금기가 존재하는 정치방식으로, 이면에서의 정치공작이 벌어지는 유럽의 정치보다 더 깨끗하고 깔끔하다"

    뭐 엔하위키발 카더라지만 확인하진 않겠습니다. 이렇게 깨끗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정말 좋았습니다. 현대의 민주주의와도 비교할 만한 거였죠. (에 뭐 상것들의 생각 따윈 없이 사대부들간의 문제라는 치명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그리고, 당파 싸움으로 나온 옥사들은 모두 왕의 뜻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역모가 아닌 이상 왕은 집권 당에 맞서서라도 자기 편을 지키려 했죠. 반대로 왕이 집권 당에 휘둘려서 눈물로 숙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정말 아닌 경우 (효현 때의 송시열의 반대파라든가) 야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왕의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조선 시대에 벌어진 거의 모든 문제에서 왕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건 왕 탓이라 하면서 어떤 건 간신 탓이라고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모든 일은 왕이 아닌 간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휘둘린 죄밖에 없죠. 그렇기에 이거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다시 봐야 됩니다. 그리고 왕이 일인자인 이상 기본적으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되구요. 이건 고종조차도 예외가 아닙니다. 흥선대원군은 비판받을 부분도 많지만 할 만큼 했습니다. 반면 고종의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죠. 근대에 대한 무지는 넘어가더라도 그가 했던 사치와 부패, 절대 왕권만 노리던 모습은 비판 받아 마땅하며, 망국의 원인 역시 그에게 제일 먼저 물어야 됩니다.
    흥선대원군이 세도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은 남인과 종친, 그리고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던 북인이었습니다. 반면, 고종이 흥선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해 끌어들인 세력은 민씨 집안, 이건 세도 정치 시즌 2 만 불렀을 뿐이죠.

    6. 어심
    기본적으로 왕을 까는 신하가 충신이고, 벼슬을 거부해야 깨끗한 신하이며, 왕은 가만히 있어야 되고 신하들의 말을 잘 들어줘야 되는 시스템... 때문에 왕들은 지가 싫다는 걸 몇 번이고 불러야 좋은 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뭐 이게 좀 극단적으로 된 게 문제였지만...
    반대로 신하들은 "어심"을 죽어라 읽어야 했습니다. 왕이 앞으로 이 말 하더라도 최대한 반대해야 했고, 어심을 잘 못 읽으면 왕의 말을 따랐다가 죽고 반대했다가 죽었습니다. -_-; 시범 격으로 죽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능력 좀 있다고 죽은 사람은요? 절대 왕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가면 안 됐던 겁니다.

    신하들은 정말 어려웠을 겁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써야 했고, 그것과 또 다른 얘기를 하더라도 왕을 욕 하면 안 됐습니다. 모든 건 신하들의 잘못이었죠. (그 세조조차도 그를 직접 욕 하는 사료는 없습니다. -_-;;; 모든 잘못은 신숙주와 한명회, 정인지 등등) 이것 때문에 현대에서 연구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여도 안 되고, 아예 반대로 해석해도 안 되며, 그 사이의 어딘가의 접점을 찾아야 되죠. 이 점에서 실록은 정말 훌륭한 사료입니다. 그들의 대화가 거의 그대로 들어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모든 책임은 기본적으로 왕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간신들에게 휘둘렸다는 그 왕들은, (정통성이 부족할수록 오히려) 그 시대 최고의 정치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 방면에서 명언을 남긴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심을 읽으시게"
    눈비비고의 꼬릿말입니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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