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노회찬 지지하지만 한명숙 후보 잘 싸웠고, 아쉽게 졌습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었고 그래서 잠시 설레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해서 한명숙의 패배가 노회찬 탓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명숙이 오세훈에게 뒤진 1만여표는, 노회찬이 뺏어간 것이 아니라 한명숙이 벌어내지 못한 표입니다. 노회찬의 표는 노회찬이 벌어낸 표이고, 진보신당이 벌어낸 표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을 살펴보고 지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표입니다. 한명숙 본인의 한계로 인해 벌어내지 못한 1만개의 표를 노회찬이 대신 넘겨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이건 노회찬을 곱씹어보고 살펴보고 연구하고 고민해 그에게 표를 던지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에 불과합니다. 한명숙 패배를 노회찬 탓으로 돌리는 분들게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표는 신중하게 고민한, 신념이 담긴 '옳은 선택'이고 노회찬에게 표를 던진 우리의 표는 성급하고 생각짧은, 현실감없는 '그른 선택'이라고 보십니까? 당신들의 신념만이 옳고, 우리의 신념은 그른것입니까?
민주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계속해서 주장해온 것은, 그저 '한나라당이 나쁘니까 우리를 찍어달라'는 말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정동영은 대선에서 여지없는 참패를 겪었고 이어진 총선에서도 박살이 났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보여준 태도는 "내가 당선되면 어떠한 것을 하겠다"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되면 안되니까 우리가 당선해야 한다"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민주당도 그들 나름의 정책과 공약을 준비하기는 했었지요. 하지만 전 그들보다 진보신당이 준비한 정책이 더 현실성있고 구체적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의 과정에는 노회찬과 한명숙이 토론회 등에서 보여준 면모들도 작용했었구요. 토론에서 옳든 그르든 자신들이 준비한 공약과 정책을 설명하고 밀어붙이는 노회찬과, 그저 오세훈 깎아내리며 그에 대한 반명제로서 반사이익만 얻으려 드는 한명숙이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노회찬을 더 지지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선거에서 이기도록 세력 불리는 것만이 '현실감각'이고, 각 당의 정책과 노선에 대한 유권자 개개인의 분석과 판단은 '현실감 떨어지는 헛된 이상주의'라고 생각 되십니까?(제 판단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명숙 지지자분들께서도 한명숙을 지지하는데에 본인의 소신과 고민과 판단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한 고민들과, 제가 한 고민들 간에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드리는 겁니다.)
물론 저도 한명숙 본인은 어느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당선되면 안된다'는 명제에 따라 붙어야 할 주장은 '그러니까 한나라당 아닌 나를 뽑아라'가 아니라 '내가 당선되면 이러저러한 일들을 추진해 한나라당의 실정에 맞서겠다'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에선 그런게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로 거기에서 결정적으로 그 부족한 만여표가 발생한것이라 봅니다. 바로 거기가 한명숙 캠프의 한계였구요. 노회찬을 지지한 표들도 역시, 의미없이 생각도 없이 버리는 목적으로 던진 표가 아닙니다. 현실감각 없이 잘난척 이상주의를 쫓아 던진 표도 아니구요. 유권자로서, 이사람이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펼친다고 판단할 자유조차 없습니까? 여러분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그런 것입니까?
한나라당을 꺾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을 악이라 규정하고 꺾어야겠다고 나섰으면, 그들을 밀어낸 후에 어떤 세상을 만들지가 더 중요한 겁니다. 이에 대한 비전제시조차 못하고 그저 한나라당 안티테제로만 존재하는데 만족하는 민주당에게서 저는 그닥 희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서울시장에서 밀려났다고해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시장은 오세훈이지만 서울시의원 100명 중 민주당이 60여명을 넘게 차지했습니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20여명을 넘긴 수준이죠. 구청장 자리도 민주당이 대부분을 차지해버렸습니다. 이로서 오세훈은 자신이 벌려둔 빚잔치를 남에게 떠넘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자기가 떠안아야할 입장에 처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심시티 놀이를 하고 싶을지 몰라도, 뭐 하나 하려 할때마다 시의회와 구청장들이 들고 일어날겁니다. '빚부터 갚고 말해'라고 말이죠.
민주당은 시장자리에 오세훈을 줬다고는 하나 그의 독주를 억제하고, 오히려 그를 옭아맬 수 있을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지켜봐야 할 것은 오세훈이 또 어떤 뻘짓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그건 어차피 기정사실이었으니까요) 민주당이 그것을 어찌 막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향후 4년간 얼마나 잘 해주느냐에 따라 민주당은 선거유세기간에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들의 '비전'을 증명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민주당과 한명숙은 잘 싸워냈습니다. 제가 생각한 그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매우 선전을 펼쳐냈고, 이는 모두 그들을 열성으로 지지한 지지자분들의 공이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명숙이 얻어내지 못한 마지막 만여표를 진보신당이 채워줄수는 없습니다. 그 만여표는 진보신당이 한명숙에게서 '빼앗아 간' 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명숙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고, 그럼으로 인해서 그들의 '마음을 빼앗아 오지 못한' 표이지요.
지금 한명숙과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만여표의 부족을 다른 당에게서 뺏어 오지 못한 것을 탓할게 아니라, 만여명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더 빼앗지 못한 것에 대한 분석과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정치검찰의 표적수사를 이겨낸 대목에서 좀더 맹렬히 반격을 펼쳐 역풍을 일으켰더라면, 천안함 관련 이슈에서 눈치보지 말고 좀더 소신껏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주장했더라면, 토론회를 좀더 세밀하게 준비해 상대 후보에게 밀리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을 만여표라 생각하기에 다음 선거에서 이런 점들을 어찌 고쳐나갈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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