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역사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기 이전에는 역사는 믿는 거였을 겁니다. 땅이 한반도에 있으니 고조선의 왠만한 일들은 (사실 여부는 둘째 치고) 한반도 안으로 밀어넣었죠. 중국의 전설을 끌어들여 기자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연구는 믿는 게 아니라 알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게 되었죠.
1. 한국 역사 5000년
이것도 근대 이전에 "믿은"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삼국유사 등에서 나오죠. 객관적인 연대가 없을 시점인데도 5000년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진 과정은 이렇습니다.
[단군은 요, 순이랑 같은 해에 고조선 세움] -> [중국에서는 요, 순 시대를 5000년 전으로 잡고 있음] -> [요, 순이 나라 세울 때를 자세히 계산해 보고 단군 신화랑 맞춤] -> 이렇게 나온 게 BC 2333입니다.
사료에 따라서 몇 년 단위로 왔다 갔다 하고, BC 2509년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애초에 과거 여러 나라들의 건국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연대도 그렇고, 그 때의 왕들도 그렇죠.
사대주의 때문에 한국 역사를 왜곡했다는 삼국사기,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커다란 왜곡이 발견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지배했다는 지역에서 다른 나라의 유물들이 발견되는 거죠. 마한, 진한, 변한 이른바 삼한의 다른 소국들이 살아 있었고 (삼국사기에는 이미 정복했다는 시점에) 그 세 나라들이 큰 건 한참 나중이라는 거죠. 대표적으로 백제가 초기에 정복했다는 마한은 4세기가 넘어서도 전라도 지역에 세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역사서들은 이런 식입니다. 고고학 발견과 다른 사료와의 교차검증을 통해 그 오류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이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내용 자체를 보면 BC 2333년으로 딱 맞습니다. 문제는... 고고학이랑 비교해도 맞는 게 하나도 없고, 이런 식의 사료 비판이 없다는 겁니다.
- 아래 널븐연못님이 말씀하신 건 비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히 해야 되는 질문입니다. 역사서는 후대에 보고 교훈을 얻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축소 과정, 멸망 과정이 자세하게 적혀 있어야 하죠. 환단고기에는 그게 없습니다. 그냥 나라 컸다, 나라가 이만큼이었다 이런 식이죠.
- 문제는 그것도 내용 안에서 맞는 게 없는 것입니다. BC 2333년에 딱 맞추면서 그 시기를 보면 100년 단위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재야 사학]측의 사료 비판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환단고기에도 없는 내용을 지어냈습니다. 가령 수밀이국은 조공을 바쳤다 정도만 있는데, 환국이 지배했다고 하고 있죠. 지금 돌아다니는 거대한 지도들은 환단고기에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대륙삼국설 역시 환단고기와 다르죠. 환단고기에서 백제, 신라는 한반도 내에 있었습니다.
2. 믿는 게 아니다.
더 자세하게 나가면 안 될 거고... 이 글을 쓴 목적은 다른 것이니...
역사는 믿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검증된 역사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 하는 말이죠.
고조선은 기록상 부여계를 비롯한 여러 나라로 갈라졌습니다. 부여는 고구려가 흡수했죠. 현재 전라도, 금강 유역에서는 고조선이 쇠퇴할 무렵의 기록과 일치하게 새로운 문물을 가진, 하지만 중국과는 다른 이주 집단이 건너온 것이 확인됐습니다.
고조선 - 부여 - 고구려로 정통성이 이어진 상황 고구려는 확실히 의심해 볼 만 합니다. 문제는... 다들 만주만 생각하지 평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가 있을 경우, 특히 고대에 인구는 수도와 농사가 잘 되는 곳에 집중적으로 분포했습니다. 고조선의 수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멸망 당시에는 평양이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 말이 맞춰졌고, 고구려 역시 수도는 평양이었습니다. 영토가 넓었다지만 고구려의 중심지는 평양이었죠. 이외에 요동, 흑룡강 등이 주 인구 밀집 구역이었습니다. 이 중에 중국의 손에 들어간 것은 요동 뿐이죠.
요동 등 만주에 살았던 사람들이야 이리저리 흩어지고, 당나라에 흡수됐겠죠. 하지만 평양은? 신라가 통일하고 발해가 생긴 이후로 평양이 버려지긴 했지만, 신라에서 지속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발해로 간 이들도 있겠죠. 그리고 발해 멸망 후 그들은 신라에 흡수됐습니다.
고려는 스스로 고구려의 후예라 칭했고, 중국은 조선 때까지도 우리를 고구려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거란은 자기가 "영토"를 가지고 있으니 고구려 후예랬는데, 서희에게 말 한 방에 밀렸습니다.
간단한 문제예요. 워낙에 역사가 오래됐으니 큰 변화도 많았겠죠. 비슷한 질문을 이탈리아와 그리스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이탈리아 역사고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그리스의 역사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이어졌는가, 문화와 계승 의식이 어떻게 이어졌느냐가 계승을 말 해 주죠.
이 정도로 연구가 진행됐으고, 사료들에 그게 명백하게 나와 있으니 고조선과 고구려를 우리가 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걸 믿어서가 아니죠.
3. 고조선 부정?
예. 우리 역사 5000년이라는 건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의심해 볼 만한 겁니다. 하지만 그게 고조선 부정으로 이어질 순 없습니다. 고고학적 증거가 명백하거든요. 기록이 부실하기에 그 정확한 연대를 계속 추측만 하는 것일 뿐이구요. 중국과 대비되는 유물들이 만주와 한반도에 있고, 만주와 한반도에 있는 것들의 유사점이 있으며, 그 시점이 기록에 나와 있는 고조선의 시점과 일치하기에 고조선은 우리 역사입니다.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있고, 그 시기는 계속 올라가겠죠. 고조선의 건국이 BC 2333년이다는 걸 부정하는 것과, 고조선을 이루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고, 공동체 의식을 느꼈냐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렇게 고조선을 부정한다는 말을 퍼뜨린 게 바로 환단고기 추종자들이죠.
식민사학자 중 그 누구도 고조선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만선일체론을 통해 "고조선이 니네 땅이었으니 우리는 만주를 먹어야 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일제가 고조선을 부정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입니다.
최남선을 비롯한 친일파들 역시 고조선을 몇 차례고 강조했습니다. 일제 당시, 해방 직후 나온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고조선을 부정한 사람은 없고, 그 시기 역시 BC 2333년이었습니다. 고조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정된 적 없습니다.
이병도는 단군 신화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비이성적"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며 신나게 비난했습니다. 신화를 염두에 두고 역사를 연구하고, 신화와 역사의 연관성을 연구해야 된다는 거죠.
고조선을 부정했다는 식의 말은 이후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퍼뜨린 겁니다. 하지만, 이병도의 책은 지금도 도서관에서 볼 수 있죠. 다 만들어진 말입니다.
환단고기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학계에서 연구를 안 했다는 것인데, 수십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의 결과가 위서라는 거구요. 그리고,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하니까 "연구를 안 하니까 그런 거다"고 욕 했고, 없는 말을 마구 지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재야 사학 쪽에서 환단고기를 제대로 연구한 사례는 없습니다. "맞지 않을까"라는 추측과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 뿐이었죠. 환단고기 내의 명백한 오타조차도 60년이 지났는데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한창 배우는 사람들한테는 정확한 연대와 "이게 맞다"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그 때는 "믿는" 게 중요하죠. 거기서 끝난다면 역사는 "교양"이 되고, "고조선과 고구려가 우리 역사다"라는 사실을 아는 정도로 충분하죠.
하지만 일단 여기가 역사게시판이면, 그 이상으로 나가야 되지 않을까요? "고조선이 우리 역사일까?" "고구려가 우리 역사일까?" 라는 의문은 충분히 가져야 됩니다. 그걸 통해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는 "우리 역사 맞다"입니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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