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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75746
    작성자 : 회갑성
    추천 : 16
    조회수 : 2575
    IP : 59.19.***.159
    댓글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05/15 02:00:48
    원글작성시간 : 2010/05/10 22:48:39
    http://todayhumor.com/?humorbest_275746 모바일
    벌레(끝)
    약 40여분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손가락 까닥 할 힘 조차 남아 있지 않아 몇분을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잠시 후 정신이 맑아지더니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몸의 통제력이 돌아왔다.

    통제력이 돌아온 순간 난 바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코쪽이 얼얼해서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자 투박한 감촉의 붕대가 느껴졌다. 

    의사는 아무래도 고급붕대가 아닌싸구려 붕대를 사용한 것 같았다.  

    보건소가 그렇지 뭐. 나는 밑입술을 씹으며 간호사에게 약을 처방받은 뒤 털레 털레 계단을 내려왔다. 차에 탔다. 후진 엔진소리를 들으

    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버지 어머닌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도대체 언제 쯤 이 집에서 나 홀로 저녘을 먹지 않는 날이 올 것인가. 여행을 떠난지 3주가 넘어가는데도 여지껏 돌아오지 않는 두 분

    이 퍽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혼자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내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왔다. 코에 붕대를 감은 걸 깜박하고 시내를 걷다가 왠 꼬마

    하나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웃어댔기 때문이다. 딱밤이라도 한대 먹여주고 싶었건만 옆에 우락부락한 인상의 꼬마 부모가 있어 그러지

    못했다. 벽을 한대 세게쳤다.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코에서 지근 지근 거리는 은은한 아픔도 그랬고 약을 먹은 뒤에 몰

    려오는 이상한 미식거림이 내 신경을 살살 긁어댔다. 거기다 tv에서는 고루한 시사프로나 틀어주고 있었고 방 벽지에선 퀴퀴한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 까지 한다.

    그리고 난 혼자다. 혼자란 말이다. 사실 그 무엇보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짜증났다. 친구란게 있기는 있다만 그 놈들은 죄다 

    제 할일이 바빠 집에 놀러오라고 해도 놀러오지도 않는다. 

    처음의 심심함은 서서히 깊어져가더니 우울함으로 변했고 난 극도의 우울함에 잠긴 채 오후를 보냈다. 서서히 공기가 식어가더니 싸늘해졌

    다. 잠시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었다.

    "맴...맴...맴."

    번뜩 눈이 뜨이는 순간 매미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이 들어 소름이 돋아났다. 마치 오한이 든 듯 오들 오들 

    몸이 떨린다. 숨죽이고 방문을 연 뒤 마당이 보이는 통유리앞으로 다가갔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시끄럽게 커져왔고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벌레들이 미쳐가고 있는 듯 했다. 날파리 같은 것들이 통유리로 달라붙어서 꿈틀 꿈틀 대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이름조차 모를 잡다한

    곤충들이 펄쩍 펄쩍 뛰거나 날아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종말직전에 놓인 사람들을 보는 듯 했다.

    내 직감에 그리고 우스운 공상에 불과할진 몰라도 벌레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집단적인 공포.

    만일 내 생각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이 벌레들은 무엇이 그리도 두려워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얼굴을 딱딱히 굳힌 채 창밖을 주시했다. 집에서 뿜어져나온 불빛이 밖을 비춰줬지만 가시거리는 고작 해야 10m 남짓이다. 정신

    을 집중하지 않고선 무언가를 찾아보기도 힘든 수준. 난 숨을 죽인 채 벌레들의 집단발작을 살폈다.

    "까드득"

    돌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까드득. 뭐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벌레 우는 소리 같다. 헌데 이런 소리는 지금 껏 살아오며 들어본 적이 없

    는 아주 독특한 소리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짐작되는 오른쪽을 자세히 살펴봤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

    지만 서서히 주먹만한게 윙윙 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이 눈에 잡혔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벌레는 상상이상의 크기였다. 윙윙대는 

    날개짓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벌레는 유리창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서서히 커져오는 벌레의 모습이 몹시 공포스러웠

    다. 누가 심장에 못질이라도 하는 걸까? 쿵쾅 쿵쾅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벌레는 통유리 앞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히곤 비틀거리며 살짝 추락하더니 다시 기세를 회복해 날아올랐다. 겁에 잔뜩 질려있었지만 

    도망치지 않고 벌레의 모습을 살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벌레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온통 노란 눈알에 탁색의 몸통. 게다가 번들거리는 기름기.

    벌레에 대한 나의 느낌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역겨움 자체였다.

    도대체 이 괴상한 벌레가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이 벌레를 빨리 죽여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난 어제 사다둔 해충

    약을 찾아 움직였다. 살충원액을 비롯해 여러가지 도구들을 집안 창고에 처 박아 뒀기에 난 바로 창고에 들어가 도구들이 든 봉지를 

    가지고 나왔다. 나의 눈에 거실의 통유리엔 딱 달라붙은 벌레가 보였다.

    잘하면 쉽게 죽일수도 있을 듯 했다. 일단 큰방에 아무렇게나 벗어둔 파카를 껴입은 뒤 손에 살충원액이 든 작은 통 두개를 쥐었다. 

    하나는 파카 주머니에 넣은 뒤 나머지 하나는 뚜겅을 땄다. 현관으로 다가가 소리없이 문을 열었고 벌레가 있는 곳을 향해 통안의 

    원액을 뿌렸다. 

    "까득 까드득"

    괴상한 소리와 동시에 벌레의 뜽겁질이 열리며 촤악 날개가 펴졌다. 윙윙소리와 함께 날개짓을 하더니 빠르게 솟구쳐 날아올라 몸을 회전시키며 자신을 공격한 나를 찾았다.

    그러나 놈의 몸엔 찐득 찐득한 살충원액이 들러붙어 있어서 모르긴 몰라도 조만간 힘을 잃고 땅에 떨어질 것이 틀림없어보였다.

    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날개짓이 느려지더니 서서히 땅으로 내려앉았다. 여의치 않아 놈이 죽지 않으면 통 한병을 더 부을

    생각이었는데 놈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그 자리에 뻗어버렸다. 

    잠시 놈을 지켜보다 죽었다는 확신이 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놈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진 채 굳어있었다. 침을 꿀걱 삼킨 뒤

    놈의 시체를 발로 살짝 걷어찼다. 놈의 시체가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다시 발라당 뒤집혀진 채 멈췄다. 확실히 죽은 게 틀림없다. 

    껄끄럽기 그지 없었지만 놈의 희한한 모습과 그 크기로 보건 대 어딘가에 팔면 제법 돈을 받을 수 있을 듯 했다. 내가 잘은 몰라도 요

    런 희귀한 종류의 벌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마 이 벌레를 그런 놈들이나 대학교의 곤충학과 교수?

    들에게 넘긴다면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으리라. 

    집에 들어가 라텍스 장갑을 끼고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나왔다.

    벌레를 잡았을 때 살충원액이 몸에 몹시 해로우니 조심하라고 했던 대머리 아저씨의 말이 뇌리를 스쳤지만 무시하고 검은 봉지에 집어

    넣었다. 

    혹시 이런 벌레가 더 없으려나 하고 마당으로 나갔지만 다시 들어왔다.귀뚜라미 같은 것들이 펄쩍 펄쩍 뛰어대며 지랄 발광을 하니 겁이 나서 마당을 살피기도 뭣 했다.

    도대체 이 벌레들이 왜 이리 지랄일까? 엊그제 한바탕 했던 것이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인가.

    온갖 생각속에서 난 집으로 들어와 라텍스 장갑을 벗었다. 꽁꽁 묶은 봉지와 함께 화장실 구석에 둔 뒤 다시 거실로 나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벌레들이 저토록 울어대고 움직이는 것이 방금 죽여서 봉지에 넣어둔 저 괴상한 벌레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그런데 그렇다고 치면 모순되는게 하나 있다. 난 방금 그 벌레를 잡아 죽였고 위협요소가 사라졌으니 벌레들은 울음을 멈추고 다시 조용해져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벌레들은 지랄스럽게 울어대며 돌아다닌다. 왜일까? 벌레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 다른 이유는 내 상식내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벌레 때문일거라고 가정하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고심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방금 전에 잡아 죽인 벌레 이외에 몇마리가 더 마당안에 숨어들었을 거란 것이였다.

    다른 벌레. 넓지 않은 우리 집 마당에 괴상하기 짝이 없는 그 큼지막한 벌레가 또 있을 꺼라 생각하니 여간 찜찜한게 아니었다. 

    빨리 저 벌레들을 잡아 없애고 집안을 방역해 이 지긋지긋한 소음과 찝찝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난 119에 전화를 걸어 집안에 이상한 벌레가 들어왔다고 신고했다. 처음 전화를 받은 여자소방관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 계속 예?예?를 거듭

    말해와서 짜증이 치밀었다.

    위잉위잉 사이렌 소리를 내며 우리 집 앞에 도착한 건 제법 큰 119차량이었다. 안에서 세명 정도의 소방관들이 옷을 입은 채 내리더니

    집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펄쩍 펄쩍 대던 귀뚜라미 하나가 소방관의 몸에 들러붙었다.

    "엇!"

    소방관이 비명을 지르며 어깨위로 뛰어오른 귀뚜라미를 손으로 내쳤다. 귀뚜라미는 맥없이 손에 맞아 튕겨져 나갔고 소방관은 찝찝한

    얼굴로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그가 막 우리 집 문 앞에 다가왔을 때 였다. 난 문을 열어주기 위해 현관에 선 참이었다. 

    헌데 그 순간 무언가가 소방관의 옆에서 튀어올랐다. 주먹 두개만 한 크기였다.

    갈색을 띈 그 형체는 언뜻 콩벌레 같아 보였고 바로 소방관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소방관이 비명을 지르며 콩벌레를 잡아뜯었

    다. 끔직한 광경이었다. 콩벌레는 몸이 뜯긴 채 결국 떨어져 나갔고 난 소방관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볼수 있었다. 

    그 짧은 사이 콩벌레가 소방관의 머리가죽을 잡아 뜯었던 듯 허연 머리뼈가 보였다. 공포와 역겨움에 난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소방관을 멍하니 바라봤다. 소방관의 머리뼈쪽이 서서히 녹아들어갔다. 

    "그어억."

    소방관이 두 눈을 부릅 뜬 채 문유리에 얼굴을 붙인 채 미끄러져 내렸다. 난 소방관을 내려다보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공포로 질린 눈으

    로 죽은 소방관을 내려다보는 다른 소방관이 보였다. 

    그 소방관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까드득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 내가 방금 전 원액을 뿌려 고꾸라트렸

    던 그 벌레 소리와 똑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똑같은 벌레가 소방관의 뒷편에 나타났다. 벌컥 문을 연 뒤 외쳤다.

    "들어와요. "

    소방관은 얼떨떨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몸이 움찔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내게로 달려왔다. 그가 문 안으로 들어섰고 뒤 이어 다른 소방관이 들어왔다. 그 새 벌레가 문 지척까지 날아

    들었다. 오른손에 힘을 꽉 주어 강하게 문을 닫았고 벌레는 들어오지 못했다. 한동안 문 앞을 맴돌던 그것이 체념한 듯 다른 곳으로 날

    아갔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격하게 쉬고 있는 소방관 둘을 쳐다봤다. 

    그들도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문 앞에 쓰러져 죽은 자신들의 동료를 쳐다봤다.

    난 속으로 혀를 차며 그들과 같이 문 앞에 널브러진 남자의 시체를 바라봤다. 

    남자의 얼굴은 그 곤충의 체액에 살이 다 녹아 허연 해골이 드러나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고 뉴스를 틀었을 때 나는 이 기이한 현상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젯 밤 소방관을 죽인 그 괴상한 벌레가 유전자변형 식물을 섭취 해 그 부작용으로 생겨 난 돌연변이 종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루동안 집에 머물었던 두 소방관들이 떠나고 얼마 뒤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 찾아왔을 때 난 울컥하는 마음에 울고 말았다. 

    정부에서 파견 된 수 많은 군인들과 공익요원들이 우리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역작업을 했고 근 3달 동안 지속되었다. 그 작업이

    끝났을 때 쯤엔 마당을 휘젓고 다니던 벌레들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다.





    11월 21일 8시 30분 이상기온으로 인해 날은 가을 답지 않게 후덥지근했다. 대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그런대로 시원함을 주었다.

    난 엄마가 연유를 잔뜩 뿌려 만든 화채를 들고 마당의 나무등걸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별을 보고 계시더니 내가 가져온 화채를 떠먹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연신 화채를 퍼 먹었다. 

    우적 우적. 화채를 한참 씹어먹는데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았다. 긴장된 떨림이 손을 통해 젼해져왔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진 고개를 젖힌 채 하늘을 보고 계셨다. 나도 덩달아 하늘로 고개를 젖혔다.

    챙...

    먹던 화채 그릇을 그대로 떨어트릴 만큼 놀라운 광경이 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거의 새 크기만한 벌레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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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1 02:36:11  66.131.***.128  잔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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