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선 접수장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해설자들이 앉아 있고, 선수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해설자 이주영,박태민,김캐리,강민 합쳐서 네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이주영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선수, 앉으시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수는 어느 종족으로 하겠소?"
"테란."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이주영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선수, 테란도, 마찬가지 힘들고 고달픈 종족이오. 온갖 폭언과 욕설을 쳐먹는 낯선 종족을 골라서 어쩌자는 거요?"
"테란."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일벌레와 여왕을 왜 포기하는 거요?"
"테란."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박태민이 나앉는다.
"선수, 지금 블리자드에서는, 저그 유저들을 위한 패치 정책을 내고 있소. 선수는 누구보다도 먼저 GSL 우승의 영광을 가지게 될 것이며, 저그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저그유저들은 선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차기 확장팩인 '군단의 심장'도 선수의 개선을 반길 거요."
"테란."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이주영이, 다시 입을 연다.
"선수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래더 생활에서, 해병들의 간사한 허리돌림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선수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선수가 스타와 저그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디스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선수는……"
"테란."
박태민이,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박태민은, 증오에 찬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선수에게 옮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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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그는 해설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접수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네의 래더랭킹은 얼마나 되는가?"
"……"
"음, 그랜드마스터 정도이군."
김캐리는, 앞에 놓인 컴퓨터를 뒤적이면서,
"테란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제 종족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테란을 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종족을 바꿔 봐야 프로토스가 소중하다는 걸 안다구 뻔뻔하게 굴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프로토스가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잉여유닛들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프로토스 해봤자 먹고살기 힘들고 또한 일이 매우 고달프다는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프로토스는 당신의 적성에 맞습니다. 게이머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재미있어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죠. 당신은 래더 생활을 통해서 그걸 느꼈을 겁니다. 게이머는……"
"테란."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나라 내 종족의 한사람이, 적성과 소질에는 상관없이 테란을 하겠다고 나서서, 같은 종족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 뱅만 프로토스 동포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프로토스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테란."
"당신은 과거 WGC에서 우승까지 한 게이머입니다. 프로토스는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프로토스를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테란."
"우수한 선수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우주모함이 쓰레기라도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브론즈 유저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프로토스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프로토스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스타를 더 많이 해 보았다는 의미에서, 게이머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프로토스의 품으로 돌아와서, 프로토스를 재건하는 탐사정이 돼주십시오. 낯선 테란에 가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캐리어 컨트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프로토스를 하는 경우에, 개인적인 포장질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테란."
김캐리는, 손에 들었던 마우스로, 패드를 툭 치면서, 곁에 앉은 강민을 돌아볼 것이다. 강민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비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접수대의 책상 위에 놓인 '주종족' 란에 '테란'을 적고 접수장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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