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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27513
    작성자 : 글로배웠어요
    추천 : 18
    조회수 : 2345
    IP : 58.142.***.119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13/07/25 21:41:25
    http://todayhumor.com/?military_27513 모바일
    [해군] 육군부대에 면회를 갔더니...
    1996년 쯤이었나보다.
    인천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고등학교 동창녀석의 소식을 듣게 됐다.
    남들보다 2~3년 늦게 군대를 갔는데, 하필 송내에서 근무한다는 거였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후에 잦은 출동으로 바빠서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느 화창한 주말 퇴근길에 전철을 타고 송내역을 지나다
    문득 친구놈을 생각해내곤 충동적으로 내려버렸다.
    그놈이 근무하는 부대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사전 정보가 없었던 탓에
    많이 헤맬 것을 걱정했지만 마침 그녀석이 근무하는 부대는 송내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근무복을 입은채로 위병소에 도착하니 총을 들고 각을 잡고 있던 일병이 우물쭈물하다 제지를 한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여기 면회 좀 왔습니다?"
    "네? 면회... 말씀입니까?"
    "네. 면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 저기... 위병소에 가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해군 근무복을 입은채로 면회를 왔다는 내가 이상했던 건지,
    아니면 일병인 자신에게 깎듯하게 존댓말을 하는 해군 하사가 당황스러웠던 건지,
    그 일병 녀석은 우물쭈물하며 위병소를 안내해줬다.
    위병소에는 아까부터 병장 한 명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여기 친구 면회 좀 왔어요"
    "여기 간부 말씀이십니까?"
    "아니오. 일병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여기 신청서 작성해 주시고 신분증 좀 주세요"

    병장은 내가 면회를 온 대상이 일병이라고 하자 대번에 말투가 바뀌었다.
    괘씸한 그 병장을 골려주고 싶었다.
    나는 지갑 속에서 군인신분증을 꺼내지 않고 '비밀취급인가증'을 꺼내 내밀었다.
    해군 함정, 그것도 CIC(Combat Information Center. 전투정보실)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일병이나 이병도 비취증을 갖고 있을만큼 흔한 것이었지만
    병원생활을 하면서 다른 부대, 특히 육군에서는 비취증이 특별하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게다가 비취증에는 93으로 시작하는 내 군번도 적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취증을 받아든 병장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저... 여기...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병장은 비취증을 손에 든 채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충성! 통신보안! 위병소 병장 OOO입니다. 여기 잠깐 와보셔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 네. 뭐 그러지요"

    잠시후 나타난 사람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이분께서 면회를 오셨다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뭐?"
    "근데, 이 분 신분증이..."
    "???"

    소위는 말 없이 비취증을 바라보다 내게 말을 걸었다.

    "XXX랑은 무슨 관계십니까?"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면회는... 안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지금 바로 준비시킬테니 저쪽 면회실에 가셔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방문증을 좀..."
    "아. 방문증은 필요 없고, 이것 받아서 그냥 들어가십시오"

    소위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비취증을 돌려줬다.

    멀리서 친구녀석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위병소에 들렀다.
    소위와 병장에게 차례대로 무슨 얘긴가를 듣고는 조금 복잡하고 의아한 표정이 되어 면회실로 왔다.

    "야. 네가 면회 온 거였냐?"
    "응. 퇴근하다가..."
    "너 이새끼,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부대가 발칵 뒤집혔냐?"
    "어, 그거... ㅋㅋㅋㅋ 내가 이걸 내밀었거든 ㅋㅋㅋㅋ"

    나는 친구녀석에게 비취증을 꺼내 보여줬다.

    "너 기무대 근무하냐?"
    "아니"
    "그럼 무슨 정보부대나 특수부대 같은데 있냐?"
    "아니"
    "근데 이건 어디서 났냐?"
    "이거 우리 배에 가면 이병들도 갖고 있어"
    "엥???"
    "해군에는 발에 채이는게 비취증이야. ㅋㅋㅋㅋㅋㅋ"
    "얌마. 그러니까 부대가 난리가 나지"
    "왜? 뭐라는데?"
    "나 보고 친구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니 면회 가서 딴소리 하지 말라더라"

    내가 위병소에서 만난 소위와 병장은 마침 내 친구의 소대장과 분대장이었다.
    소위는 소위 나름대로 비취증을 들고 나타난 정체 모를 내게
    혹시나 책 잡힐 일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친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고,
    병장은 병장 나름대로 내게 실수한 일 때문에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어
    친구더러 자기 얘기를 잘 해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야. 너 외박 나가고 싶지 않냐?"
    "나 휴가 갔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외박 안될 거야"
    "그래? ... 잠깐 기다려봐"

    나는 친구녀석을 면회실에 남겨둔 채 위병소로 향했다.

    "저기...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십니까?"

    아까 그 병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깎듯하게 나를 맞았다.

    "저... 아까 그 소위님을 뵙고 싶은데요"
    "네, 저 여깄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제가 저 친구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뭘 좀 먹이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뭐, 어려울 거 없습니다. 야 OOO병장, 쟤 외출증 끊어줘라"
    "아. 감사합니다. 근데... 이왕이면 외박으로 해주시면..."
    "아. 그럼 외박으로 해드리겠습니다. O병장 외박증 하나 끊어"

    "소대장님... XX는 휴가 갔다 온지 얼마 안 됐는데 말입니다"
    "어, 그래? 그럼 어떡하지?"

    "저...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거의 5년 만에 처음 만나는 거라..."
    "아... 그러시구나... 음... 그럼...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이번만 특별히 해드리겠습니다"
    "아이구, 이거 고맙습니다."
    "아, 뭘요. 오랜만에 만나셨다는데 이정도는 해 드려야죠. 외박증 준비해놓을테니까 좀 있다가 여기로 오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나는 PX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잔뜩 사서 위병소에 건네줬다.

    "고마워서 제가 좀 준비했습니다. 이거 부대원들끼리 좀 나눠 드십시오"
    "이런거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소대장님, O병장님. 앞으로 제 친구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O병장님... 잘 좀 부탁드릴게요"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친구녀석을 데리고 나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사한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녀석을 만났다.
    알고보니 같은 건물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XXX 잘 지냈냐?"
    "그래. 덕분에 군생활도 잘 하고 잘 지냈다"
    "아 그래? ㅋㅋㅋㅋ"
    "너 왔다 가고 나서 대우가 달라지더라"
    "뭐 어떻게?"
    "소대장이랑 분대장이 내 눈치를 보더라 ㅋㅋㅋㅋㅋㅋ"
    "편하고 좋았겠네"
    "뭐, 몸은 편하고 좋았지 ㅋㅋㅋㅋㅋ"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던 우리는 녀석과 내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헤어지고
    이후 10년이 넘도록 두 번인가 만나고 소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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