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슴속에 언제나 환하게 비추어 내리던 태양
그래 넌
항상 그자리에서 변하지 않던 내 태양이었어..
내 남자친구는...
시계한번 바라보고 한숨한번 짓고..
도대체 무슨일이 생긴걸까 걱정한번 해보지만
어차피..
이런걱정 쓰잘데기 없다는거
깨달아 버린지 오래인걸
괜히 바닥에 구두굽으로 짜증한번 부려보고
벌써 열번도 넘게 버릇적으로 다 비운지 오래인 종이컵을
입술에 가져다 대고..
내가 무엇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기구하게 꺾여버린 내 팔자를 혼자 탓해보지만
후회하기는 이미 늦어버린걸.
이번에는 기필코 진담어린 사과를 받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어차피..
미안하다고 쑥쓰럽게 웃음지으며 대강대강 넘어갈걸..
"어이~ 김세희!"
멀리서부터 부끄럽지도 않은지
소리를 고래 고래 질러가며 뛰어오고있는..
덩치좋은 남자가 보인다.
얼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듯한 미소가 만연했고,
"허억..허억.. 허억.. 많이 늦었냐?"
"왜 늦었어?"
"아니.. 그러니깐.. 반장이 갑자기 서류를 맡기는거야.. 그래서"
"또 거짓말이지?"
"아니 얘는.. 내가 언제 거짓말 했다고 그러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야. 내가 맛있는거 사줄게.. 가자"
"얼마나 늦었는줄은 아니?"
"한30....분?"
".......1시간 하고 30분이야"
"
그는 시간개념이 없었다.
그러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항상 얼버무리려고만 했다.
"옷이 그게 뭐니?"
"뭐가 어때서?"
낡아서 걸레로도 쓸수 있을만큼 너덜너덜해진 남색 자켓
빤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다림질은 평생한번 안하는지
꾸깃꾸깃 때묻은 남방에
상의와 전혀 맞지 않는 색깔의 구멍뚤린 면바지.
손에는 이상한 검은봉지나 들고다니고..
"뭐 거지냐?"
"얘가 아직 패션을 모르네.."
"뭐가 패션이야?"
"으음.."
오늘 좋은 옷 입고오라고 좋은데 갈꺼라고 그렇게 부추켜서
평생한번 데이트 할때는 입어본적이 없는 정장도 쫙 빼입고 나왔는데
이녀석은 칭찬할 생각이 있는건지.. 개돼지.
남들이 보면 무슨 조폭이 부잣집 여식을 납치한줄로만 생각할 것이 아닌가.
그녀석은 패션감각또한 무지하게 무뎠다.
그리고도
자기가 항상 최고 잘난줄로만 알았다.
우리는 걷는다..
결국 오늘도 이렇게 걷다가만 끝나는 걸까?
그는 항상 저멀리서
주머니 안에 손을 쑤셔넣고선 성큼성큼 걸어간다.
"야~ 같이가"
한번 뒤돌아 보더니 퉁명스레 말한다.
"빨리 와. 뭐하니?"
"아이씨......발놈아~! 구두신고 어떻게 빨리가"
쪽팔림을 무릅쓰고선 구두를 벗고
안간힘을 다해 뛰어가 간신히 따라잡았다.
"헥..헥.."
"느리기는.."
시발 니가 졸라 빨리 걸어놓구선.. 개돼지.
"어디가는건데?"
"뭐좀 먹을까?"
"뭐먹을려고?"
"저기"
그의 손가락이 가르키는 곳은..
[종로분식]
".....또?"
"야 저기 정말 맛있게해.."
"오늘 뭐 맛난거 사준다며.. 좋은옷 입고 나오라며.."
"야.. 경찰월급에 돈이 어딨냐.. 이것도 감지덕지지.."
"그럼 왜 경찰했어?"
"야.. 또 오늘 3시간 내가 왜 경찰했는지 말해야돼?"
"됐다..됐어.. 맨날 말같지도 않은소리.."
그리고 나는 그 분식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 만두 두개 김말이 2개~ 순대 2인분이요"
"다..먹게?"
"응.. 오늘 서장이 자꾸 들들 볶았더니 배가 고프네."
"그..그래?"
그리고는 나온 음식을 우적우적 먹어치우는 그녀석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물론
귀엽지도 않았다.
"난 배 안고파.."
"그래? 그럼 이 김말이 내가 다 먹는다."
"마음대로.."
"히히 오늘 횡재했네?"
어쩜 저리도 먹을거에 집착할까..
나는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꺼억~ 잘먹었다. 아줌마 얼마죠?"
"만원이요"
"아니.. 내가 여기 단골인데.. 좀 깎아주면 안되요?"
"아니 이걸 어떻게 깎아요 우리도 다 본전으로 먹고사는건데."
"맨날 오잖아요 한번만.. 응?"
"그럼 9500원만 주슈"
"헤헤 고맙습니다."
그는 정말정말.. 가난했다.
그리고
속도 무지하게 좁았다.
근데
엄청 많이 먹는다.
저 뱃속에 도무지 뭐가 있는지..
휴..
개돼지라니깐..
우리는 또 걷는다.
"어디..가?"
"으음.. 공원 가자"
"왠 공원?"
"그냥.. 걷자"
"치.. 맨날 걷쟤.. 어디 분위기 좋은 카페라도 가지.."
"무슨 카페냐.. 내처지에"
"왜.."
그때였다.
"아이고.. 정형사님"
엄청 살벌하게 생긴.. 조폭같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어~ 에마 아니냐"
"아이고~ 잘 지내셨어요"
생긴거는 무슨 사투리라도 하나 할거 같은데..
표준말을 사용한다..
작가가 사투리를 잘 모르나보다..
"그래 요즘은 나쁜짓 안하고?"
"아이 그럼요"
"요즘 신파파는 잘 돌아가?"
"하하.. 잘 돌아가기는요 다 개과선천 했지요 허허허"
"잘돌아가면 단속하려고 했더니.. 하하 한번 봐주마"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 뿐이네요 껄껄"
"그래.. 나중에 또보자"
"네네.."
생긴거와는 다르게 무지하게 고분고분하다.
하긴
생긴건 이쪽도 만만치 않으니..
"누..누구야?"
"응? 아.. 에마 라고.. 있어 신파파 녀석인데
누구 병신만든걸 내가 예전에 한번 봐주었던 녀석"
"그..그래?"
"응.. 됐고.. 가자 빨리.."
"뭐 급한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는 머리를 긁으면서 그답지 않은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때 내 시선에 들어온건 그가 들고있던 검은 봉지.
"그거.. 뭐야?"
"뭐?"
"그 검은거"
"이거? 아.. 이거?"
"어."
"아. 이거.. 손가락 잘린거"
"왠 손가락인데.."
"으응.. 무슨 증거품이야.."
"왜 들고다니는데?"
"아.. 있어.."
"징그러.."
"징그럽기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각한 일인가보다.
또 얼버무릴려고 해서 그냥 나랑은 별상관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때..
"히히히..."
하는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내 팔에 무언가 문지르더니 잽싸게 도망간다..
뭐..뭐지?
하고 팔을 들어 자세히 보았다.
대롱대롱 달려있는.. 코..딱..지..
나는 이성을 잃고 쫓아갔다.
그녀석은 더러웠다.
아는 사람도 우연히 만나는 사람도
맨날 조폭같은 사람이고
맨날 이상한 사람 죽은얘기 같은거 하기 일쑤고..
근데.
나는 뭐가 아쉬워서 저런놈이랑 아직까지 사귀는 걸까?
"언니 언니는 뭐가 아쉬워서 그런놈이랑 아직도 사귀우?"
"몰라."
"깨버려"
"시끄러"
"좋아?"
"모른다니깐"
"답답 하네.. 돈이 많아? 잘생겼어? 잘해줘? 착해?"
"생각보다는 잘해줘.."
"아니.. 언니정도면.. 됐다.. 말을 말자."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에 그가 또 살금살금 다가온다.
"또 뭐할려고"
"삐졌냐?"
"아니.. 됐어.."
"그래?"
그러고 나는 모처럼 그와 다정히.. 걷고 싶었다..
근데 또 혼자 척하니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
걸어가는 그..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왜이러는거야?"
"멋없기는.. 팔짱이나 끼자. 이런말 내가 해야돼?"
아무말없이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분위기 좋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공원밖으로 나와서
도심을 걸어다니고 있는데..
"꺄아~ 도둑이야"
아니. 무슨 만화도 아니고.. 왜 이럴때..
"갔다 올게."
"가지마.."
"금방와.. 기다려 여기서.."
그리고.. 그는 손가락으로 나에게 브이자를 그리더니
"거기 서라!"
이러고 뛰어갔다.
바보.. 서란다면 스냐..
자기도 3초인 주제에..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그의 뛰어가는 모습이..
왠지 저러고 다시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무슨 영화를 찍는것도 아니고 만약에
저러고 가다가 아예 다른 곳으로 휭 하니 가서
또 저번처럼 도둑놈 경찰에 데려다 주고 나서 나를
완전히 잊어먹었다고 그러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십스러운 생각을 하며 또 바람맞은 기분으로
아무생각없이 그러고 서있었다.
10분..20분..
보통때 같았으면 더 일찍 왔을것을..
나는 도대체 이사람이 아직도 못잡았나..
못잡았으면 빨리 돌아나 오지 어디까지 가는건가..
궁금해서..
한발짝 한발짝씩 그가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가도 보이지는 않고...
설마..
이상태로 나를 바람맞힌건가 -_-?
만약에 진짜 그랬으면 이번에는 진짜로..
사과를 받아내야지 하고 다짐하는 나였다.
조금더 아픈 발을 무릅쓰고 걸어갔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있는건지
걱정보다는
분통이 치밀기 시작했다.
멀리서... 차도위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도
왠지 불안함에 걸음을 재촉했다.
둘레로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간신히 빠져나가
내 눈에 들어온건..
피투성이의... 그였다..
"......꺄아아악!!!"
그는.. 나를 발견했다..
"세...세희야.."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왜이래.. 응? 뭐야.. 영민씨.."
"세희야... 이거.. 받아.."
그리고 그가 내민것은.. 검은 봉지..
"이건.. 왜"
"너.. 주려고... 오늘 보석방에가서.. 최고 비싼걸루.. 산거야..
오늘.. 맛난거 먹게 해주려고.. 했는데.. 이거 때문에..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너 먹인게.. 고작 떡볶이에 순대라니.."
"왜 그런말을해.."
"너한테 딱 한마디만.. 하고싶었다..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몰라..
세희야.."
"응.."
나는.. 울고 있었다.. 그래.. 울고있었다.
"사랑한다.."
주위의 사람들은 훌쩍이기 시작했고..
그때 엠뷸런스가 와서 그를 데리고 갔다....
나는.. 그 엠뷸런스 안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며..
검은 봉지 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반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도..
세희야
이걸 보면 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내가 요즘들어 너랑 많이 만나지도 못하고.. 그러지?
조금만 참아줘..
금방..
너 행복하게 해줄게.
이런말
직접 말로하기는 쑥스러워.
편지로 쓴다.
세희야
사랑한다..
그리고.
결혼해줘...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결혼하자 영민씨.. 꼭.."
몇일이 지났다.
"아야야.. 흘리지좀 마라"
"바보 남자가 까다롭기는"
"국같은거 흘리면 뜨겁단 말야"
"바보 그러게 누가 차에 치이래?"
"누구는 치이고 싶었니?"
"차도에 그렇게 뛰어드니 치이지.. 앞좀 보고 다녀라"
"알았어"
"아무튼 이제 여기서 꼼짝을 못하니 도망도 못가겠네?"
"그렇겠지뭐."
"야 그때 나한테 했던얘기 잘 못들었는데 한번 더해봐라"
"무슨얘기?"
"아 마지막이라면서 뭐 얘기했었잖아 잘 못들었어"
"아 그거?"
"으응."
"사람살려."
내 남자친구는...
어쩔수 없는
경찰인가 보다
by X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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