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전에 본 글인데...너무 공감가는 글이어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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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랑 자는 것 밖에 몰라?
"아니, 다른 것도 알아". 라고 말하면 그녀가 믿어줄까?(기획/글 아우성)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만났으면 뭘 하려고 했던 건데?” 아무 말 못했다. 입에 바른 소리 해 봤자, 그녀나 나나 결국 우리가 모텔에 갔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년간의 길다면 긴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녀와 나는 만난 지 3일 째 되는 날 처음으로 모텔에 갔다. 토요일 오후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에서 만났는데 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DVD 방에서 송강호가 나오는 <살인의 추억>을 봤다. 어색했다. 안고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영화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 팔을 그녀의 머리 뒤로 옮겨 도브 샴푸 향기 짙은 상체를 끌어안아 주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나는 왜 그녀에게 그때의 심리에 대해 묻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이렇게 궁금한데.
짧은 시간 동안 어찌할 줄 모르는 답답한 몸짓이 그녀를 타고 넘어갔을까? 팔에 둥근 목선이 느껴졌다. 살짝 온기가 전해지다 순간 사라졌다. 그녀가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 편히 기대도 될까? 내 감정의 무게를 잘 견뎌줄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이 그녀에게도 망설임과 설렘, 불안의 시간들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길고 달콤하게 키스 했다. 내 손이 어느덧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무릎을 세우며 상체를 웅크렸다. 완강하지는 않았다. 철책 너머로 발을 밀어 넣고 낄낄대는 전방 초병처럼 재미있고 설랬다. 그녀의 몸을 젖히고 “나, 하고 싶어.”라고 속삭였다. 정신 나간 등장인물이 헤헤 웃으며 “향숙이 예쁘다. 향숙이……”를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가 승낙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낯선 종로 한 복판에서 모텔로 향하는 그 길고 긴 거리만은 아직 기억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좋아하는 여자를 안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를 안으면 그녀는 내 사람이 된다. 속된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을 만큼, 절실하게 나는 그녀를 뿅(?)가게 만들고 싶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다 더듬고 싶었다. 부인할 수 없이 그건 육식성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의 표시기도 했다.
그녀와의 설레는 첫 성관계가 시작됐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때 은회색 탁자 유리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다던 남자 친구였다. 그녀가 그와 통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그녀의 가슴에 안겨 하얀 속살을 더듬었다. 그때의 희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건 승리에 대한 도취 같은 싸구려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향한 미안함과 내 미안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흥분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그리고 나에 대한) 본능적 끌림 때문이었다. 정숙한 유부녀와 성관계를 나누는, 19세 미만 대여 금지 비디오 남자 주인공이 느끼는 의외의 발견(?)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전화를 끊고 우리는 또 정신 없이 성관계를 했다. 무릎과 팔꿈치가 까져 붉은 실핏줄이 올라오는 것도 모르고. 그날 그녀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만나면 늘 성관계를 했다. 3년을 만났는데도 기억나는 건 성관계뿐이다. 만나서 밥을 먹고 영화를 봐도 마지막은 늘 모텔이었다. 특별히 말이 필요하지 안았다. 손을 붙잡고 늘 가던 길을 걸어 골목으로 들어서면 됐으니까. 그녀는 그 길을 걷는 사이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설사 그 날이 ‘그 날’이었다고 해도. 왜냐면 그녀가 그런 사정을 얘기해도 분명 “오늘은 안고만 있자.”라고 내가 말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녀도 성관계 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날은 거부했겠지. “넌 나랑 이 짓이나 하려고 만나니? 나도 근사한 데이트 같은 걸 하고 싶다고.” 라고 말하기도 했을 테지.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그 길에서 내 손을 뿌리 친 적은 없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을 때는 꼭 모텔에 갔다. 심하게 다툰 날은 예외 없었다.
성관계를 할 때 그녀는 정말로 좋아했으니까, 그리고 천사처럼 내 모든 투정의 말들을 받아주었으니까. 졸업 하기 전, 한 밤 빈 강의실의 문을 잠그고 성관계를 한 적도 있고, M.T.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잠든 때를 틈타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거듭 말하지만 그건 내 사랑의 표현이었다. 물론, 다른 것으로도 그녀를 즐겁게 해줄 수 있었을 테지만, 포기 했다.
한 번은 내가 한강의 오리배를 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졸업을 앞두고 영어 학원을 다닐 때 7호선을 타고 뚝섬 유원지를 지나다 보면 오리배 페달을 밟는 연인들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계획을 짰지만 그녀는 결국 나와 함께 오리배를 타지 않았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른다. 그때 이후로 특별한 데이트를 모색하지 않았다. 더 속상해지기 싫었으니까.
둘 사이에 별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멀어지게 했을까? 내가 졸업을 하고 난 뒤부터는 사소한 말다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둘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지만 가끔씩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봉사(?)했다. 그야말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그 순간뿐이었다.
“헤어지자.”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했다. 돈암동 태극당 앞에서 4시간을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다. 새벽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만취한 상태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내가 여기 이렇게 취해 있는데 왜 데리러 오지 않냐고 울고 또 울고 욕을 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 지는 말하지 않았다. “안 나온 건 너잖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날 그녀가 나 대신 만나 술을 마신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건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이야기를 해준 건 그녀의 친구였다. 얼마 전에 복학한 내 후배였다고 했다. 둘은 지금 사귀고 있다고.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주룩 흘렀다. 손등으로 한 번 훔쳐내고 눈에 힘을 준 후 크게 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왜, 왜 그랬대?” 나 때문에 힘들 때마다 그가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돌아보면 분명 난 그랬다. 늘 미루어 짐작했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좋아하니까 그녀도 좋아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오리배를 타고 싶었던 것도 결국은 내가 원했던 일이었다. 분명 그녀도 성관계이외에 다른 것을 원했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물어본 적이 없다. 그녀도 나와 성관계를 하는 게 좋기는 했겠지. 그런데 한 편으로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을 거다. ‘이 사람에게 다 줘도 되는 걸까? 고작 이런 거나 하려고 우리가 만나는 걸까? 조금 더 아름답고 조금 더 절실하게,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귀 기울이지 못했다. 어쩌면 만나는 동안 내가 그녀에게 궁금했던 건 과연 오늘 성관계를 해도 되는 날이냐 아니냐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부터 가끔씩 내 육식성에 환멸을 느낄 때가 있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 어느새 20대의 중반을 훌쩍 넘어버렸기 때문일까? 소개팅을 나가거나 마음에 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을 꼬시더라도 세네 살 정도 어려 보이지 않으면 눈에 안 들어 온다. 여자를 고르는 기준의 상위 리스트에는 ‘SIZE’라는 항목이 들어섰다. 그리고 정말 본능적으로 이 여자는 나와 성관계를 할까? 혹 고리타분한 강박주의자는 아닐까?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정말로 웃기고 환장하는 일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예전의 그녀가 그리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녀와 함께 모텔 침대에서 다시 한 번 뒹굴고 싶다는 거다. 그 커다랗고 뜨겁던 엉덩이를 찰싹 치고 싶다는 거다. 더 예쁘고 더 어리고 더 탱탱한 여자들도 많을 텐데… 그런데 꼭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이제 와서 정작 더 그리운 건 그녀와 함께 살을 맞대던 행위, 그 자체다. DVD방에서 <살인의 추억>을 보던 날, 내 팔뚝에 느껴지던 목선의 온기처럼, 그 따뜻하고 부드럽고 호의적인 숨결이 그리운 것이다. 어린 아이가 모성을 갈구하는 감정이랄까? 분명 당시에 그녀와 모텔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성관계였겠지만, 그 과정을 더 좋아하게 됐던 건 그녀가 내게 주는 따뜻한 온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녀도 좁은 골목으로 향하던 손길을 뿌리 치지 않았던 건(하물며 ‘그 날’에도) 나를 안고 있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관계를 하고 나면 나는 그녀 품에 안겨 잠 드는 습관이 있었다. 눈을 뜨면 어린 아이 어르듯 나를 안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그때 그녀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그 미소가 참 예뻤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만났으면 뭘 하려고 했던 건데?” 마지막 그녀의 말에 여전히 아무 답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모텔에 갔을 테니까. 그리고 성관계를 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 육식성 행위 뒤에 가려져 있는 것들, 어쩌면 지극히 서정적이고 ‘사랑’의 속성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행위에 대한 감정은, 기회가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믿을까? 사실은 성관계 못지 않게 당신의 따뜻한 품 속이 좋았다는 거, 그 품 속에서 지금도 가끔 단잠을 자고 싶다는 걸, 믿어줄까? 아마 그녀나 이 땅의 적지 않은 그녀들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그렇게 수작 걸면 넘어가 줄 지 아니?” 라고.
출처 :
http://imakeit.tistory.com/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