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환상적인 언덕 마을 러시안 힐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러시안 힐이라는 곳이었다.
러시안 힐은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거리 연변에 위치한 고급 주거지역이다. 이곳은 전망대에서 멀지않은 곳 언덕 위에 있었데,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멋지게 꾸며진 언덕 도로였다.
경사면이 대략 30도 정도 되어 보이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도로는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눈으로 가늠하기로는 원래는 4차선 도로로 보였다.
언덕 위에서 사방으로 이어지는 도로 역시 4차선 도로였다. 그런 도로가 경사가 급하다보니 사고 위험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는 짐직은 쉽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자칫 덜 밟거나 소홀히 했다가는 여지없이 앞 차의 뒤꽁무니를 까닭도 없이 헤치게 될 것도 같았다. 더구나 언덕 위에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 때문에 길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길 아래 상황을 모르고 내달리는 꼴이 되므로 위험을 늘 안고 다니는 셈이다. 이런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길을 일방도로로 그것도 1차선으로 줄여놓았을 법하다. 그리고 1차선 도로는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속도롤 올릴 수 없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 3차선에 해당하는 그 여분의 도로는 아름답게 정원처럼 가꾸고 다양한 꽃나무들을 심어놓아 길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올린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곳에 심은 화초는 거의 대부분 수국이었는데 수국의 꽃이 굵직굵직한 것이 꼭 미국인들의 성향을 닮아보였다. 우리 같으면 온갖 계절을 고려해 이것저것 심었을 법한데 이곳은 수종은 수국으로 단출하고 선이 굵어보였다. 어떻든 언덕을 오르는 길이 꽃으로 단장이 되고 구불한 일차선만 남게 되자 자동차들은 자연 거북이걸음을 할 수밖에 없어 교통사고는 전혀 없을 것 같았다. 누가 처음에 제안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놀라운 혜안이다.
그런데 이곳을 왜 러시안 힐이라고 할까? 러시안 힐은 서부개척시대에 이곳에 자리했던 러시아인 모피거래상들과 선원들의 묘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본래 녹직한 언덕이다보니 아마 자연스럽게 묘지로 활용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곳이 기가 막힌 전망으로 인해 아래에서부터 차츰 고급스런 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 올라오면서 오늘의 이런 기막힌 장면을 연출하게 된 모양이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이곳이 샌프란시스코 부자들의 동네인 이유를 알만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지역의 땅값이 비싸지만 이 마을이야 말로 굉장히 고가의 주택가격을 자랑한다고 한다. 길 양옆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줄지어선 집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그림 같았다.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젖히면 매일 너른 바다를 볼 것이고, 그 아래로 펼쳐진 샌프란시스코를 내려다 볼 것이다. 옥상 어디쯤에 탁자를 올려두고 차 한 잔을 마시면 그 보다 더 멋진 카페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실제로도 언덕 주위에 들어선 집들의 옥상에서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곳이 여럿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문을 열면 차들이 꼬불꼬불 내려가는데 정말 살기 좋을까 싶은 괜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늘 차량이 꼬리를 길게 물고 느릿느릿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내려오고, 관광객들은 하루 종일 몰려들어서 좀 괴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북촌이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사람들의 관광객에 대한 몸서리가 생각이 났다. 실제로 주택가 벽에는 거주지이니 집 사진은 찍지 말라는 경고문과 제발 조용히 해달라는 문구도 이곳저곳 눈에 띈다.
그런데 하나 의아스러운 건 이곳이 부자 동네여서 그런지 구불한 길 주변은 작은 오솔길 같은 언덕을 오르는 통로만 덩그러니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니 그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의아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비슷한 곳과 견주었을 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특별한 공간에 사람들이 들끓으면 십중팔구는 온갖 장사치가 다 몰려들게 마련이다. 떡볶이 집이며 순댓집은 아마도 단골일 것이고, 그 외에도 온갖 종류의 길거리 음식이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앉아 오가는 이들을 불편하기 일쑤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그건 그 때 뿐이기 십상이다. 단속도 상시적이지가 않다. 누군가가 불편을 신고하면 그때에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듯 단속 흉내를 낸다. 그런 그들이 하는 말이 참 싱겁다.
“법대로 하자면 당연히 단속을 해야지요. 그런데 단속을 제대로 하려면 현재의 우리 인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겨우 단속반 서넛이 일상 업무도 힘든데 현장까지 나오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요.”공무원을 보고 철밥통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일 테다. 결국 단속은 있으나 마나 하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혹시라도 단속에 적발이 되면 왜 자기만 단속을 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일이 일상으로 벌어진다. 공무원이 혹시라도 단속을 엄격하게 하면 인권을 무시하는 공무원들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왜 거기에 인권이라는 말이 개입되는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인권>이라는 말은 위급할 때 사용하는 호신용 무기와도 같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있어 인권이라는 말은 사법(私法)의 영역이며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다. 어느 때는 헌법보다 상위의 개념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희한한 일이 인권이라는 이름에 매달릴 때도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삶을 중재하려 든다. 그걸 이해 못하면 주변머리 없는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기도 십상이다. 그러니 누가 법을 지키려 하는가? 방문객이 몰려드는 곳이면 어디든 상인들이 목 좋은 곳에 좌판을 벌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는 셈이다.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러시안 힐 정상에서는 베이브리지, 금문교, 알카트래즈, <The Rock>을 촬영한 섬 등을 포함해서 샌프란시스코 만 전역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전에 공부를 충실히 하지 못한 탓에 그저 언덕 위에 조성된 정원에만 눈이 팔려 그런 멋진 곳은 그저 멀리 아래를 내려다볼 때 슬그머니 본 것이 전부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 아쉽다. 그저 그 아래를 본 것 중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그 위에 걸쳐진 다리(아마도 아침에 우리가 건너왔을 다리일 것이다) 정도였다. 공부를 게을리 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손해를 보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