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내리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의 첫인상은 동남아의 여느 공항 같은 분위기였다. 세계의 첨단을 걷는 국가의 공항이니만큼 외양은 물론이고 내부 역시 화려함의 극에 달할 것이라는 내 기대는 무참히 부서졌다. 보안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뿐 그저 공항으로서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련미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도 그런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아들 내외를 만나러 간다고 나름대로 영어 회화 공부도 했는데 어쩐 일인지 공항에서부터 듣는 영어는 내가 공부한 것과는 전혀 별개인 듯 했다. 그 동안 영어가 변했나 싶다. 책상 앞 서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한 해 동안 나름대로 틈틈이 따라하고 외우고 한 그 모든 것이 허사였다, 다시 십년공부를 하러 입산을 해야 될 모양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모두가 외계어 같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공항에서 두리번거리며 앞 사람을 따라 가는데 공항 직원이 출국 수속을 하는 곳을 가리켰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여권을 인식시키고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는 등의 절차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처음 겪는 것이라 다소 조심스럽게 시작을 했으나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결국 몇 번의 에러를 냈고 마침내 반복되는 에러로 인해 자동 인식기는 더 이상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사람이 할 때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공항 직원을 찾았고 그 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분의 덕분에 우리 두 사람이 무사히 첫 관문을 통과는 했으나 나는 조금 전의 에러로 인해 정밀 보안 검색대를 통해야 한다고 별도의 보안검색대 쪽으로 가란다. 이미 그곳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코앞의 문만 나서면 아들 식구를 만날 수 있는데 줄은 줄어들 줄 모른다. 여행객이 몰려 있어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라는 듯 공항 직원들의 일처리는 도무지 바쁜 척도 않는다. 그저 오늘 하다 남은 일은 내일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곳에 줄을 서기 싫으면 다음부터 잘 하시오’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속에서 열불이 날 정도였으나 어쩌겠는가?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수밖에 -
한참을 더 지나 겨우 검색대를 통과하고 짐을 찾으러 갔다. 우리나라 국제공항의 서비스 수준이 왜 최고인지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바깥으로 나오자 바로 앞에서 아들 내외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아들 내외를 보자 오랜 비행에도 불구하고 피곤은 눈 녹듯 사라졌다.
“어머니, 여기예요.”
반갑게 맞이하는 며느리의 손에는 장남이 부모님을 애타게 찾는다는 다소 거창한 종이 피켓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려는 배려 같아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종이 피켓을 보자 갑자기 한동안 전국을 숙연하게 했던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생각이 났다. 이산가족 찾기는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는데 분단국가만의 핏빛 기억이 그 속에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되었으나 서로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서로 떨어져 살았다. 그러던 사람들이 방송 덕분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 부둥켰다. 그런 극적인 장면은 매일 이어졌고 전 국민은 TV 앞에서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순간부터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일은 삶의 전부인 것처럼 되어 버렸고, 가족을 찾는 일은 모든 일에 우선 하게 되었다. 원래 광장 한쪽에 전단지를 붙이는 게시판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그곳은 순식간에 전단지로 빼곡했다. 방송국 앞 너른 광장은 이산가족을 찾는 온갖 전단지가 손길이 닿고 눈길이 닿은 곳은 빠짐없이 걸렸다. 나무 기둥은 물론이고 심지어 보도블록도 예외가 아니었다. 질서는 어디에도 없는 그야말로 무질서의 극치였다. 그래도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절절함에 그 정도는 양보되었다. 이산가족을 만나는 일만이 모두의 관심사였다. 방송은 연일 그런 모습과 함께 극적인 상봉 장면을 비추었다. 그런 장면들은 무질서보다는 절절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다.
‘오죽 했으면 저리할까?’
무질서는 모두의 넓은 아량으로 무한 양보되었다. 사람들은 그때 무질서의 위대함을 경험했다. 수단이야 어떻든 목적의 정당성만 확보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목적의 정당성은 군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목적이 정당성을 확보하면 그까짓 무질서쯤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은 뿌리 깊게 스며들었다. 그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지금도 길거리 보도블록에는 상점에서 붙여놓은 전단지며 안내 스티커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대학가의 축제 풍경은 그 극점이라 할만하다. 마침내 궁극의 목적만이 전부인 사회가 되 버렸다. 그러므로 때로 목적이 적의를 숨겨도 군중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회의 이곳저곳에서는 무질서가 정당화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그걸 위정자들이 놓칠 리가 없다. 우리는 그러는 동안 조금씩 중우정치에 물들어 갔다. 광화문은 목적의 정당성을 내건 정치술수에 휘둘리더니 어느 순간 민주주의의 성지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광화문의 뿌리는 이산가족 찾기에 있는 셈이다.
“잘 지냈어?”
“예,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오시느라 힘드셨지요?”
집 사람의 안부에 며느리가 싹싹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안위를 확인한 후, 무질서의 원천인 이산가족 찾기 피켓도 무슨 기념이다 싶어 사진을 찍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을 나서자 더운 바람이 훅 하고 달려든다.
우리는 렌트해 온 자동차를 타고 며느리가 몇 날을 고심해서 마련해 놓은 관광 코스를 향해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온통 음울해 보였는데 막상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유럽의 여느 도시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아마도 문화적 열등의식을 그렇게라도 씻어내려는 그들의 속내가 숨겨져 있는 듯도 했다. 2백년이 조금 넘는 역사는 그야말로 세계사의 관점에서는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불과할 것이다. 세계에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그들이지만 지성사에서만큼은 도무지 긴 역사를 가진 나라를 따라갈 수 없을 터이다. 그러다보니 그 흉내라도 내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들의 뿌리가 대체로 유럽인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첫발을 디뎠다.
내 첫인상과 달리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하나란다. 그 넓은 나라에서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으므로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태평양 사이의 경사진 곳에 있는 자리하고 있는데 모든 집들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집들은 넉넉한 국토를 가진 나라답게 여유로웠다. 시내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집들이 그저 5층을 넘지 않는 듯했다. 시내 이곳저곳에는 개척 초기의 흔적들이 현대와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내 첫인상은 바뀌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내 곳곳에는 건축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건물들을 흩어져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미국을 방문한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도시는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서 늘 바다 저 너머를 향해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도시의 뒤쪽으로는 사막의 한 끝을 짐작케 할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었다. 산은 사막의 끝답게 짙은 녹음보다는 더러 거칠게 헐벗고 있었다. 더운 바람은 그 헐벗은 땅위에서 살고 있었다.
출처 : 인터넷